[LCK 프랜차이즈①] 용산에서 롤파크까지

기사승인 2020-12-03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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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K 프랜차이즈①] 용산에서 롤파크까지
▲2012년 '롤 챔피언스' 서머 결승전. 우승팀인 MiG 프로스트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2012년 출범해 올해로 9년차를 맞은 ‘리그 오브 레전드(롤)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는 내년 프랜차이즈 도입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프랜차이즈 제도 속에선 리그를 통해 얻는 중계권료나 리그 스폰서 수익을 가입 팀과 선수, 리그가 골고루 나눠 가진다. 앞서 프랜차이즈를 도입한 중국(LPL), 북미(LCS), 유럽(LEC) 리그가 프랜차이즈 출범 이후 질적, 규모적인 면에서 크게 발전한 것으로 미뤄 볼 때 LCK의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높은 상황이다. LCK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것을 기념해 쿠키뉴스가 리그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선수 및 관계자들과 함께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스타크래프트 경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용산e스타디움에 팬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걸 봤어요. 추운 날씨인데도 줄이 끊이질 않더라고요. ‘무슨 경기가 있길래’라고 생각했죠.”

박정석 하이프레쉬 블레이드 단장(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전 나진 엠파이어‧CJ 엔투스 감독)은 당시 길게 늘어선 팬들의 행렬이 여전히 기억 속에 또렷하다고 전했다.

2012년 1월의 쌀쌀한 오후. 용산e스타디움 앞은 패딩 등 방한용품으로 무장한 팬들의 행렬로 북적였다. 국내 최초의 롤 e스포츠 대회가 곧 열릴 참이었다.

MiG(CJ 엔투스 프로스트의 전신)가 한국 대표로 나선 이 대회에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았던 ‘클라우드 로직 게이밍(CLG)’과 ‘월드 엘리트(현 중국 WE)’ 등이 초청돼 자리를 빛냈다.

한국 대표 MiG는 이 대회에서 ‘매드라이프’ 홍민기의 활약을 앞세워 CLG를 꺾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숱한 국제무대 정상을 휩쓸고 다닌 LCK의 전설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홍민기(전 CJ 엔투스 프로스트/ 현 한화생명e스포츠 스트리머)는 “저도 북미 서버에서 게임을 시작했거든요. 당시 북미 위상은 최고였어요. 해외 프로선수들의 방송들을 보면서 연습했고, 한 번만 만나서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죠. 그랬던 북미 선수들이 한국에 찾아와 맞붙게 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나니 몹시 떨렸어요. 막 첫 걸음을 뗀 한국 팀과 북미 팀 간의 대결이 펼쳐지다보니 정말 많은 관중 속에서 경기를 펼쳤던 게 기억나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롤 인비테이셔널이 뜨거운 화제 속에 마무리 된 후, 라이엇 게임즈는 2011년 12월 한국에 지사를 세우고 롤을 정식 서비스한다. 이듬해엔 e스포츠 리그인 ‘롤 챔피언스(현 LCK)’를 출범시킨다. 출범 첫 해엔 해외 초청팀을 포함한 16강 체제로 리그가 진행됐다. 

프로리그가 출범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홍민기는 앞선 스타크래프트 리그와 같은 인기를 누릴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인비테이셔널 이후 정규 리그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곤 그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솔직히 제가 어릴 때부터 봐 왔던 스타리그처럼 큰 대회가 될지는 저로선 예측하기 힘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직업으로 삼은 후 환경이 더 좋아지고 있다는 정도로만 받아 들였다고 할까요.”

[LCK 프랜차이즈①] 용산에서 롤파크까지
▲2013 롤 챔피언스 스프링 결승. 경기 시작을 알리는 전용준 캐스터.


롤 챔피언스는 라이엇 게임즈를 비롯한 선수‧관계자들의 예상보다 빠르게, 기대 이상으로 성장했다. 팬들이 열광하는 스타 선수와 인기 팀이 탄생했고 라이벌 구도도 생겼다. 국내 서비스 후 가속도가 붙은 롤의 인기와 더불어 리그를 향한 관심도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e스포츠 리그에서만 20년 동안 활약한, ‘국내 e스포츠의 목소리’ 전용준 캐스터는 롤 e스포츠의 성공은 출범 전부터 예견돼 있었다고 말한다. 

“국내에서 서비스가 되기 전에, 롤을 하기 위해 북미 서버를 찾을 정도로 롤의 국내 인기는 상당했습니다. 당시 많은 관계자들은 롤이 e스포츠로 성공할 가능성이 보장돼있다고 봤어요. 이미 외국에선 대회가 진행 중이었고 2011년 말에는 ‘월드챔피언십(롤드컵)’이 열리기도 했죠. 한국으로 가져 오기만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가 국내 서비스 몇 달 전부터 온게임넷(OGN)과 ‘롤 챔피언스’ 개최를 계획했어요. 저 역시 2011년 여름에 이미 캐스터로 참가하는 게 결정됐고, 북미 서버를 플레이하며 차근차근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김동준 해설도 마찬가지고요.”

“스타크래프트는 탁구대에서 첫 대회가 열렸을 정도로 인프라 자체가 전무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거죠. 반면 롤은 10년이 넘는 인프라가 쌓인 그대로의 상태로 시작했어요. 대회 운영, 팀 관리, 방송 노하우 등은 해외보다 우리가 오히려 훨씬 뛰어났죠. 들이기만 하면 성공한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성공할지는 알 수 없었죠. 당시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압박감이 심했어요. 언제 이런 게임(롤)이 다시 나올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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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나진 소드 선수단. 

과거부터 리그와 함께 해 온 관계자들은 롤 챔피언스의 출범 초기, 기대 이상의 흥행을 선도한 건 특히 나진과 MiG(CJ)를 필두로 한 라이벌 구도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리그 최초의 라이벌을 꼽자면 MiG와 나진 e-엠파이어였어요. 아마 2012년 스프링 시즌에 처음 맞붙었던 것 같은데, 이전에 많이 경기를 펼쳐봤지만 프로리그에서 붙는 건 처음이라 긴장감 속에 파묻힌 느낌이었죠. 아무 생각 없이 내 플레이만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라이벌 구도는 프로리그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시 많은 팬 분들의 재미를 충족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홍민기)

“제가 처음 나진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두 팀은 이미 엄청난 팬덤을 갖고 있었어요. 이해를 돕자면 스타크래프트 초창기 KTF와 SKT의 맞대결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선수 개개인의 개성도 뚜렷했고 도발 등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매드라이프 선수의 블리츠 크랭크, ‘막눈’ 선수의 다이브 등 화제를 몰고 다녔죠. 우리 나진 선수들은 MiG와 경기를 하면 지기 싫어했어요. 특히 ‘막눈 선수가 라이벌 의식이 강해 당시 ‘건웅’ 선수에게 지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하네요.” (박정석)
[LCK 프랜차이즈①] 용산에서 롤파크까지
▲'페이커' 이상혁이 2019 LCK 서머 결승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그리고 2013년, 롤 챔피언스는 대형 슈퍼스타를 배출해낸다. 국내, 나아가 전 세계 e스포츠를 대표하는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T1)이다. 2013년 데뷔한 그는 올해까지 LCK 우승 9회, 롤드컵 우승 3회, MSI 우승 2회, 리프트 라이벌즈 우승 1회 등 수차례 정상을 정복한 명실상부 최고의 선수다. 이상혁의 등장 뒤 국내 리그의 위상,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이상혁에 앞서 국내 최고의 스타 선수였던 홍민기를 비롯해 숱한 국내 e스포츠 관계자들은 이상혁이라는 선수의 가치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페이커 선수는 프로 선수 데뷔 이전부터 많은 분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었어요. 솔로랭크에서 피지컬과 센스 모두 탁월했기 때문에 뭔가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농구는 마이클 조던, 축구는 메시.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어도 선수 이름은 기억하게 되는 걸 페이커 선수가 해냈죠. 프로게이머 입장에선 넘어야 할 선수이면서, 존경하는 선수예요.” (홍민기)

“한국이 낸 대부분의 좋은 성적은 페이커 선수로부터 비롯됐어요. 종목은 다르지만, 한국 e스포츠의 시작이 임요환 선수라면 세계 e스포츠의 현재는 페이커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기틀을 닦고 생소한 e스포츠를 알린 선수가 임요환이라면 e스포츠를 최고의 스포츠로서 위상을 올려놓은 건 페이커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기억 될 것이고요.” (박정석)

“개인 기량이야 말할 것도 없고, 구설수도 없죠. 완벽한 자기 관리 등 여러 측면에서 페이커는 그 누구와 비교하기 어려운 선수예요. 정말 특별하죠. 어떤 다른 e스포츠 용어로도 페이커를 표현할 수 없어요. 소속팀, 소속 단체보다도 영향력 있고 대중적인 지명도를 가진 몇몇 안 되는 위대한 선수들이 몇몇 있습니다. 페이커는 현역이기 때문에 그런 비교는 아직 섣부르지만 본인이 속해있는 단체보다 지명도가 뛰어나고 대중적 영향력이 뛰어난 선수인 것은 확실합니다. 페이커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롤과 LCK를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 적어요. 저는 페이커가 대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그 대회 자체에 또 다른 권위를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향후 페이커 선수와 같은 기록을 세우는 선수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페이커가 되긴 힘들어요. 이미 페이커가 있으니까요. 페이커가 최초니까요.” (전용준)

이상혁의 등장, 뒤이어 2017년까지 국제무대를 석권하면서 LCK는 전성기를 누린다. 이 과정에서 나온 SK 텔레콤 T1(SKT‧현 T1)과 락스 타이거즈의 새로운 라이벌 구도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연상시키는 맞대결로 해외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SKT는 페이커 선수를 비롯해 13년도부터 이어온 원년 멤버들이 충성도 높은 팬들을 만들어 냈어요. 락스는 감독과 코치진을 비롯한 선수 대부분이 나진을 거쳐 왔다는 점, 더불어 개성 넘치고 활발한 성격의 선수들이 모여 큰 사랑을 받았어요.” (박정석)

[LCK 프랜차이즈①] 용산에서 롤파크까지
▲2018년 9월 개관한 종로의 롤파크.

이에 힘입어 라이엇 코리아는 2018년 9월 17일 종로에 ‘롤파크’를 개관한다. 관중 500명을 수용하면서 카페와 PC방 등 편의시설까지 갖춘 곳은 롤파크가 처음이다. 

이승현 전 라이엇 코리아 대표는 당시 “손익계산서를 두들겨보고 결정한 것이 아니”고 “한국 게임 산업과 e스포츠 발전에 기여하고픈 사명감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전용준 캐스터는 롤파크가 라이엇 게임즈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국내 e스포츠의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말한다. “롤파크는 ‘라이엇 파크’가 아니에요. ‘라이엇 아레나’도 아니죠. 이승현 전 대표님이 롤파크 개관식 때 ‘라이엇 파크로 짓지 않고 롤파크로 이름을 지은 것은 오로지 롤을 위한, 롤 선수를 위한, 롤 게임과 롤 팬들을 위한 경기장’이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납니다. 한국에서 한 게임만을 위한 전용 경기장, 그에 맞춘 방송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시도입니다. 앞서 용산과 상암 경기장을 사용했지만 OGN과의 협업이었죠. 자체 제작은 처음이었어요. 롤파크 출범 이후에 팬들의 지적도 많이 받았습니다만 추가 인력 등을 투입하면서 단점을 지속적으로 보완해왔고, 다양한 콘텐츠로 현재는 조금씩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표현보다 선도국이라는 표현이 더 좋아요. 롤파크는 e스포츠 선도국인 대한민국의 필수 견학 코스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한국의 e스포츠를 보고 느끼기 위해 오는, 상징적인 공간이 바로 롤파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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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생명e스포츠는 주에 1~2차례씩 트레이너들의 도움을 받아 선수들의 재활 훈련을 실시한다. 


이 즈음부터 선수들의 처우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대표적인 것이 숙소다. 리그 초창기 대부분의 팀들은 컴퓨터가 다닥다닥 붙은 좁은 연습실 공간을 숙소처럼 사용했다. 최근엔 숙소와 연습실을 분리해서 사용하는 건 기본이고 영양을 책임지는 쉐프도 게임단에 속해있다. 한화생명e스포츠, T1과 같은 일부 게임단의 경우 전문 트레이너를 고용해 재활 치료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선수들의 연봉도 과거에 비해 크게 올라 일반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몸값을 훌쩍 뛰어넘는다.

홍민기는 프로생활 초창기를 ‘버텨냈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 때는 합숙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혜택이었죠. 대부분의 선수들이 온라인으로 연습을 하곤 했었어요. 저희 MiG 같은 경우는 건웅 형의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 프로스트와 블레이즈팀이 번갈아가며 합숙 연습과 PC방 연습을 하며 지냈어요. 당시 감독님이셨던 강현종 감독님이 사비로 제공한 끼니로 버티면서 지냈는데, 얼른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물론 LCK가 비단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2014년부터 중국 리그로의 인재 유출이 가속화됐다. 설상가상 2018년과 2019년엔 중국과 유럽 팀에게 국제무대 정상 자리를 연달아 내주고 말았다. 해외 시청자가 전체 시청자의 절반이 넘는 LCK로선 최악의 상황이었다. 리그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계권료나 스폰서십 등에 미칠 악영향이 우려됐다.

하지만 뼈를 깎는 체질 개선의 노력 끝에 LCK는 올해 롤드컵에서 왕좌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이름 없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운집한, 작은 클랜에서 시작해 3부와 2부리그를 거쳐 LCK로 승격한 담원 게이밍은 2020년 서머 시즌을 석권했고 끝내는 세계 최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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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담원 게이밍 선수단.

전용준 캐스터는 끊임없이 새 스타가 등장하는 토양이 LCK의 저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가올 2021시즌, 해외 팬들의 사랑으로 LCK 위상을 재확인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잘 나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롤드컵 우승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억울해 할 순 없죠. 그것을 위기라고 말하기도 힘들고요.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앞으로도 해외 리그로 이적하는 선수들, 코치들 많을 겁니다. 누군가가 LCK를 떠나면 당장 아쉽고 걱정도 되죠. 하지만 전 LCK의 저력을 믿어요. 내년, 내후년에도 정상에 설 거라고 믿습니다. 누군가가 사라져도 새로운 누군가가 자리를 메울 겁니다. 그게 LCK입니다.”

[LCK 프랜차이즈②]에서 계속됩니다. 
사진=라이엇 게임즈 제공
mdc0504@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