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받아들이라"

기사승인 2020-12-16 15: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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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쿠키뉴스] 윤은식 기자 =산업재해는 인재(人災)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 다수는 우연한 죽음이 아니다. 필시 사전에 막을 수 있었고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다.

2년 전 꽃다운 청춘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숨진 태안발전소 24살 청년과 4년 전 홀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열차에 치여 숨을 거둔 청년의 사고는 선진국들만 가입한다는 OECD 가입 국가치고는 극빈(極貧)한 우리 산업 현장의 민낯을 고발했다.

하지만 노동자 사망에 사업주는 뒷 짐 졌고 여론에 등 떠밀려 '재발방지 안전'의 모범답안만 날려댔다. 정치권과 당국도 노동자가 죽어 나갈 때마다 '안전'을 외쳐대며 언제 될지도 모를 법안만 쏟아냈다. 정치인들에겐 노동자의 목숨은 표심을 잡을 도구에 불과했다.

얼마 전까지 라디오 광고에선 안전보건공단의 '조심조심 코리아' 공익광고가 흘러나왔다. 위험한 작업장에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안전보건공단은 10년 전쯤 부터 안전문화 캠페인을 벌이며 "안전 앞에 겸손한 문화 조성"을 독려했다.

그러나 2012년 경남 창원 두산건설 작업장 추락사, 2015년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질소 누출 3명 사망, 한화케미칼 울산 공장 폐수처리장 저장조 폭발 6명 사망, 한국타이어 1996년부터 최근까지 144명 사망, 올해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창고 화재 38명 사망 등 수없이 많은 노동자가 죽어 나갔다. 이것이 우리 산업 현장의 모습이다.

원청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고 선을 긋고 일거리를 받아야 하는 하청업체는 원청 눈칫밥에 '꿀먹은 벙어리'다. 사망 사고에도 책임은 어느 누구도 지지 않았다. 검찰이 칼을 들이밀어야 책임 주체를 가려낼 수 있었다. 그렇게 사업주에 책임을 물어도 처벌은 고작 벌금 또는 집행유예. 노동자 목숨값을 고작 돈 몇푼으로 사업주에 면죄부를 손에 쥐여줬다.

기업은 날로 발전해가는 산업환경에 앞다퉈 최신 기술을 내놓고 개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노동자 목숨을 지켜줄 노력 따위는 없다. 이른바 경제민주화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경제계는 '기업 죽이는 법'이라며 연일 국회에 외치고 있다. 제발 경제인 목소리를 법에 반영해 달라며 목메고 있다.

국회가 추진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경제계는 입법 저지를 위한 총력전에 들어갔다. 이유는 대기업은 차치하고 중소기업의 경우 수억원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되면 기업 존립이 위험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 위법행위가 아닌 기업 내 위험관리 시스템 부재, 안전불감 조직문화 등으로 사망 사고 등이 발생하면 사업주 책임과 이에 따른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간단한 셈법 아닌가. 수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안 내려면 이보다 덜 들어갈 노동자 작업환경을 안전하게 바꾸면 되는 일이 아닌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벌써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원래 '도둑이 제발저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묻고 싶다. 그들은 안전한 환경을 마련해 달라는 노동자 외침에는 귀 기울여 봤는지, 최소한 듣는 척은 해봤는지. 몇해 전 타이어 생산공장에서 100명이 넘게 노동자가 죽어 나갔는데도 "노동자가 죽어 나간다는 소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잡아뗀 한국타이어처럼 그들은 노동자의 목숨은 '그저 돈 벌어주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중견기업연합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반대를 외치면서 기업가를 지휘관으로 빗댔다. 그러면서 전투에서 중대한 사고를 겪었다고 지휘관을 감옥에 넣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전쟁을 빗대서 한 말이겠지만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건 목숨 바쳐 전쟁에 임한 병사들이다. 지휘관은 병사들 목숨 팔아 훈장을 받고 영웅 대접을 받는다. 노동자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만화에서 나오는 담배 물고 배 나온 악덕 사업주가 떠오른건 우연만은 아니지 싶다.

일자리의 70%가 기업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기업을 지탱하는 것은 노동자다. 그래서 기업과 노동자는 수직관계가 아닌 공생관계다. 따라서 기업의 위기는 오너 리스크, 국제 정세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근무하는 것도 기업의 위험이 된다는 사고의 변화를 우리 경제계가 했으면 한다. 그 첫 단추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제정이라고 생각한다. 

eunsik8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