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재기NO"…K-유통에 감사하다

이번만큼은, K유통에 감사하다

기사승인 2020-12-23 05: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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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쿠키뉴스] 한전진 기자 = 매대가 모두 텅 비었다. 휴지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욕설을 섞어가며 몸싸움을 벌인다. 전국의 대형마트, 슈퍼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물건을 박스째 사재기해 나오는 이들의 두 손엔 생존만 있을 뿐, 타인에 대한 배려란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지 어언 1년째.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선진국들의 흔한 모습이다. 

한국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첫 발생한 이후 마스크 수급 대란 당시를 제외하면 사재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 갑작스런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사재기 조짐과 배송 지연 등 사태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잠시였다. 신규 확진자가 1000명대로 늘어난 현 상황에도 마트, 편의점, 온라인몰 등 물건 구입은 어디서든 무리가 없다. 

실제로 현장의 소비자들도 사재기라는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물건이 동나 구매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사재기 걱정 전혀 안 한다. 물건 살 곳이 널린 우리나라에서 사재기가 웬 말인가. 문 앞으로 배송도 해주는 세상이다. 오히려 사재기를 한다는 게 우습지 않는가,” 취재차 대형마트에서 만난 한 중년 주부의 말이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일부 언론사들만 야단법석이었다. 집안 체류가 늘며 자연스레 증가한 식료품 수요를 ‘사재기’라고 해석했고, 일부 창고형 매장에서 부분적으로 찍힌 텅 빈 매대를 들어 ‘사재기의 전조’로 규정했다.

오히려 시민들이 나서 위기 조장을 그만두라며 언론사를 질타했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위기 속에서도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일 터다.

물론 그 밑바탕엔 성숙한 공동체 의식과 함께 한국 유통산업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평소 입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의 생산‧판매는 이전과 변함이 없을 것이란 믿음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도 현재까지 사재기 조짐은 없다고 단언한다, 

유통업계는 사재기가 없는 한국에 대해 촘촘한 유통망을 그 근거로 든다. 미국과 호주 등 해외에는 지역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물건 살 곳이 마땅치 않은 반면, 한국은 주거지 근처에 시장, 편의점, 슈퍼, 마트 등이 즐비하다. 마치 거미줄에 비유될 만큼 촘촘하다. 집 밖에 편의점이 곧 나의 냉장고라는 느낌일까. 분명 해외와 다른 한국의 특수성으로 꼽힌다. 

고도로 발달한 한국의 배송 서비스도 사재기를 없앤 주요인이다. 이미 쿠팡, 마켓컬리를 필두로 주요 이커머스들은 배송 속도전을 벌이고 있고, 이 전장은 새벽까지 확대했다. 오히려 배송 시스템은 코로나19 계기로 더 견고해 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제는 오프라인 매장인 대형마트 백화점까지 ‘당일배송’에 뛰어들어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해 졌다는 것이다.  

지난 1‧2차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성숙해진 시민 의식도 한몫했다. 시민들은 마스크 수급 대란 등을 거치며 ‘사재기’가 공동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다. ‘필요한 만큼만, 소용량으로 다양하게’ 구입하는 것이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다. 문 앞의 택배 상자를 도난당하지 않을 만큼, 시민 의식이 성숙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위기 속에서도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 새삼 K-유통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엄밀히 말하면 생산과 진열, 배송까지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종사자들에 대한 감사함이다. 물론 과로사, 하청갑질 등 K-유통의 어두운 이면도 잊어선 안 되겠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K-유통에 감사하다.

[기자수첩]
▲사재기로 텅 빈 미국 월마트. 사진=AP연합뉴스
ist1076@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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