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에 국민·의료계 모두 공분 “엄정 수사 촉구, 책임자 문책 필요”

정부, 양형기준 상향 필요 검토

기사승인 2021-01-05 15: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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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에 국민·의료계 모두 공분 “엄정 수사 촉구, 책임자 문책 필요”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최근 방송을 통해 알려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하고 숨지게 한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해 국민과 의료계 모두 피의자에 대한 엄정 수사 및 책임자 문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인 양은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온몸에 멍이든 상태로 병원에 실려 온 정인 양은 당시 머리와 복부에 큰 상처가 있었으며 이를 본 병원 관계자가 아동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가 사망한 이후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생후 7개월 때 아이를 입양한 양모 A씨가 1개월 뒤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학대를 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의심 신고가 거듭 접수됐지만, 정인 양의 죽음을 막지 못해 경찰에 대한 비판도 지속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어린이집 교사, 의사 등으로부터 정인 양에 대한 학대 의심 신고를 세 차례나 받았지만, 내사 종결하거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사건 담당 경찰관 상당수가 경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해당 사건에 대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다수의 글이 올라왔다. ‘아동학대 방조한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합니다’라는 글에는 17만9900명이 동의했고, ‘정인아 미안해, 아동학대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관련자 강력한 처벌을 청원합니다’ 라는 글에는 7만2000명이 참여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청원이 올라온 상황이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정인아미안해’ 해시태그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다. 이 챌린지는 정인이의 죽음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동참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5일 오후 1시 기준으로 7만개 이상의 게시물이 달렸다.

정인이의 입양모 A씨의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심리하는 서울남부지법에 접수된 진정서는 전날 오후 5시 기준으로 500건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는 ‘강력 처벌 진정서’, ‘엄벌 진정서’, ‘엄벌 탄원서’ 등이 포함됐다. 또 서울남부지검 앞에는 지난달 14일 50여개의 근조 화환이 설치됐다. 여기에는 ‘어떻게 죽여야 살인입니까’, ‘늦게 알아서 미안해 사랑해’ 등의 정인이 추모 메시지와 A씨에 대한 살인죄 기소를 요청하는 문구들이 적혔다. 화환 행렬은 50여개가 추가된 2차까지 진행됐다.

의료계도 공분의 목소리를 함께 냈다. 대한의사협회는 “참혹한 정인이 사건, 또다시 반복할 것인가”라며 “사망을 선언한 의료진에 의해 신고된 양부모들은 아동학대치사 및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와 방임 혐의로 경찰에 송치된 상태다. 사망 하루 전 어린이집 CCTV에 잡힌 피해 아동의 모습은 비참했다. 이때 정인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이미 폭행으로 인해 장이 파열되어 복막염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한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잔인한 폭력이 부모와 주변의 사랑만 받기에도 부족한 앳된 어린 아이의 생명을 앗아가는 동안, 어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라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건의 과정을 복기하고 어느 부분,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가려 제도를 정비하고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세 차례나 아동학대 의심으로 경찰에 신고가 되었음에도 매번 혐의없음으로 처리해 아이를 끝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당국의 실책에 대해서는 양천경찰서의 담당자뿐만 아니라 경찰서장은 물론, 경찰청장까지 무겁게 책임져야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생후 16개월 아이의 뼈에 금이 가고 전신이 멍으로 얼룩지는 동안에도 아이를 양부모와 분리하지 않고 방치한 것은 경찰당국이 나태함이나 직무유기를 넘어, 아동학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갖추지 못한 불감증 상태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사건의 피의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최고수준의 처벌과 함께, 반복된 신고가 무혐의 처분된 경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 및 책임자의 문책과 경찰청장 사퇴를 포함한 경찰당국의 뼈를 깎는 쇄신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제2의 정인이 사건에 발생하지 않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의료기관 피해 아동 알림 시스템 구축 ▲아동학대 의학적 선별도구 활용 활성화 ▲아동학대 전담 의료지원 체계 확립 등으로 아동학대 사례에 대한 조기 발견과 재발방지를 위한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지난해 12월3일 발의한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도입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필수근무기간을 정해 전문성을 제고하도록 하고, 지자체별 적정한 인원이 배치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이 담겨 있다. 권 의원은 “2019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행위자의 75.6%가 부모로, 여전히 가정 내 또는 양육자에 의한 아동학대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아동 발견율은 3.81%에 불과하다. 재학대 발생 건수도 3431건으로 5년 만에 약 3배가 증가하는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시민들의 관심을 반영해 아동학대를 막는 효과적인 제도를 수립하겠다고 입장을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정인이 사건을 두고 “매우 안타깝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입양 아동을 사후에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해 달라.보 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는 입양의 전 절차에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철저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입장을 내놨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가 입양가정을 방문하는 횟수를 늘리고 내실화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주변인 방문과 조사를 의무화하고, 양부모의 양육부담감 측정을 위한 양육 스트레스 검사를 실시하는 등 가정 내 위기 검증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아동학대 대응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짧았던 삶 내내 가정과 국가 그 어디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난 정인이를 생각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며 “충격적인 아동학대 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어 총리로서 송구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동학대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해 양형기준 상향을 법원에 요청하고, 입양 절차 전반에 걸쳐 공적 책임을 한층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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