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동학개미가 애국자면 서학개미는 매국노인가

기사승인 2021-01-15 06:10:01
- + 인쇄
[기자수첩] 동학개미가 애국자면 서학개미는 매국노인가

[쿠키뉴스] 지영의 기자 = ‘동학개미’ 프레임은 주식시장의 유머성 비유에서 시작됐다. 개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3월 급락장에서 외국인의 매도물량을 받아내며 지수를 방어하는 모습을 외세에 맞섰던 동학농민운동에 비유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는 인식 속에 나선 저가매수 행보였다. 일각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의 경제적인 이윤추구를 ‘동학’의 희생과 헌신이 전제된 애국에 빗대는 것이 썩 적절하지는 않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유쾌하게 웃어보자고 넘길 수 있을 듯하다. 말 그대로 유머의 선상에서는 말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 유머가 담긴 프레임을 포퓰리즘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과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회자되는 유쾌한 농담을 향유하는 것과,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주식투자자의 폭발적 증가를 지켜본 정치권은 표심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동학개미를 애국자로 추켜세우며 투자자 여론 저항이 거센 제도와 정책에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여론 편을 든다는 그 발언들이 고스란히 정책당국에 압박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주식투자자 여론에 휘둘린 정치권과 정부 행보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에 기반하는 주식 양도세, 시장 버블을 조정하는 가격조정 기능이 있는 공매도 모두 타격을 받았다. 대주주에 해당돼 양도세를 내야 했을 이들이 세금 부담을 면했고, 금융투자소득 면세범위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9월 재개 예정이었던 공매도 금지조치도 추가 연장됐다. 이제는 3월로 예정된 공매도 재개를 또 다시 미루려는 움직임이 나온다.

무언가를 반대하는 여론의 이면에는 항상 주도하는 이들이 있다. 대체로 가장 크게, 열렬히 부르짖는 이들은 가장 부담을 많이 지는 범주에 속하는 이들이다. 주식투자자들에게 적용해보면 기본 수억에서 평균 수십, 수백억대의 투자자금을 운용하는 고액투자자들인 셈이다. 많이 투자해 이윤이 큰 만큼, 내야할 세금도 높아진다. 세금에 거세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들인 셈이다. 고액투자자들의 여론 주도에 주식투자를 갓 시작한 초보 투자자들도 주식 관련 세금과 공매도를 ‘막연히’ 해악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느는 듯하다. 초보투자자들 대부분은 해당되는 사안이 없음에도.

주식으로 큰 이익을 보는 일부가 미는 논리에 정치권이 휘둘리는 까닭에 주식 양도세 대상 확대가 사실상 고액투자자들에게만 유의미한 영향이 있다는 점, 공매도가 시장 영향이 크지 않고 가격 조정 기능이 있을 뿐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 등은 힘을 얻기 힘들다. 주가가 끝없이 오르면 마냥 좋을 주식투자자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으나,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동조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시장 운영의 합리성, 조세 형평성이 최하위로 밀려나면서 생기는 부작용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행위를 국내 자본 유출이라는 이유로 매국이라 부를수 없듯, 국내 주식 투자 행위도 애국이라부를 이유가 없다. 정치권에서 동학개미 애국자 프레임을 강화하고, 주식투자자를 위한 정책을 서민 정책처럼 여길수록 결국 자승자박이 될 테다. 비합리적으로 변하는 시장을 책임질 정책을 내놔야할 것은 결국 국회가 아닌가. 국내기업에 투자해 소득을 내더라도 국가에 세금은 내고 싶지 않다는 조세저항은 사실상 애국과는 상충관계다. 과열을 조정하는 공매도를 막아놓아 생기는 버블의 연장은, 결국 지금 터질 폭탄을 조금 더 미룰 뿐이다. 과도한 개입과 포퓰리즘성 행보를 이제 그만 멈춰야 할 때다.

ysyu1015@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