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커졌는데… '정인이·이용구 사건'으로 잇따라 고개 숙인 경찰

정인이 사건 이어 이용구 폭행영상 '묵인'...검경 수사권 조정 한달 새 '회의론'

기사승인 2021-01-26 16: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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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 커졌는데… '정인이·이용구 사건'으로 잇따라 고개 숙인 경찰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1차 수사 종결권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부실이 잇따라 드러나며 한 달도 안 돼 회의론이 일고 있다.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 최승렬 수사국장은 25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이용구 법무부 차관 폭행 사건에 대해 “블랙박스 영상과 관련 일부 사실이 아닌 것이 확인돼 국민께 상당히 송구한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8일 최 국장은 ‘이 차관 폭행을 입증할 당시 택시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놨었다. 그러나 경찰이 초기 수사 과정에서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은 것이 사실로 확인됐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피해 택시기사는 서초경찰서 담당 수사관에게 휴대전화로 촬영한 30초 분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줬다. 수사관이 “차가 멈춰있다. 영상을 못 본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는 택시기사 주장도 나왔다.

최 국장은 “허위보고인지, 미보고인지 조사해봐야겠지만 (담당자가) 보고는 하지 않았다”면서 “(내사 결과보고서에) 휴대폰 영상 관련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11일에 택시기사를 접촉한 사실도 보고서에는 있지 않다”고 부연했다.

경찰은 서초경찰서 담당 수사관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것으로 드러나자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24일 수사부장을 단장으로 13명으로 구성된 청문·수사 합동 진상조사단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담당 수사관은 대기 발령됐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경찰을 국가·자치·수사경찰로 나눈) 법 개정으로 수사와 관련해 내가 답하는 것은 제한돼 있다”며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엄정조치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권한 커졌는데… '정인이·이용구 사건'으로 잇따라 고개 숙인 경찰
지난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박태현 기자

경찰이 부실 수사 논란에 대해 사과한 것은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다. 경찰은 ‘정인이 사건’에 대해서도 신고를 3차례나 접수하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국민적 공분을 샀다. 

김 청장은 지난 6일 16개월 입양아 정인양 사건과 관련해 “학대 피해를 본 어린아이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점에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경찰은 지휘책임을 물어 양천경찰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김 청장은 “초동 대응과 수사 과정에서 미흡했던 부분들에 대해 경찰 최고 책임자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경찰의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전면 쇄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정인양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재조명되며 분노를 샀다. 양천서는 지난해 5월25일, 6월29일, 9월23일 모두 세 차례 정인양을 입양한 부모에 대한 학대 의심 신고를 접수하고도 부실 처리했다. 정인양은 마지막 신고로부터 열흘 뒤인 지난해 10월13일 끝내 사망했다. 사망 당시 정인 양은 복강 내 출혈과 광범위한 후복막강 출혈, 전신에 피하 출혈이 발견되는 등 장기가 손상된 상태였다. 

권한 커졌는데… '정인이·이용구 사건'으로 잇따라 고개 숙인 경찰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경찰은 거센 역풍에 직면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동학대 방조한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합니다’라는 청원은 게시 하루 만에 24만70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결국 김 청장은 청원에 답변하며 또다시 사과해야 했다.

부실 수사 논란뿐만이 아니다. 경찰 비위가 전국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조직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최근 전북 전주에서는 한 현직 경찰관이 사건을 덮어주는 대가로 수사 대상자에게 거액의 금품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됐다. 또 광주에서는 20일 만에 검거된 금은방 털이범이 현직 경찰관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일각에서는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아니냐는 회의론까지 제기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부정적이었던 야당에서 특히 적극적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 검찰의 수사종결권 부활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권 의원은 정인이 사건과 이용구 폭행사건을 예를 들며 “검경 수사권 조정이 제대로 안착하도록 하되 경찰이 부실수사를 하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 차관 폭행 묵인 의혹과 관련해 “수사권 논의로 비약될 사안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황 의원은 “당시 담당 수사관이 볼 때는 평범한 사건 중 하나였을 것”이라며 “단순 폭행, 합의된 사건이고 가해자 신분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