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양시장 부정선거 의혹과 이행각서 그리고 본질

정수익 / 기사승인 : 2021-02-08 17:4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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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2월 국회 정론관에서 고양시장 부정선거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고양=쿠키뉴스 정수익 기자]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정인이 사건’ 재발방지 대책으로 입양 문제를 언급해 역공을 맞았다. 국민의힘 김미애 국회의원은 “그게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아동학대”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 자신이 입양모로서 누구보다 관련 문제를 잘 알고 있는 터라 많은 공감을 샀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의 정치권 눈치보기 발언과 거짓말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임성근 부장판사의 녹취가 문제시되자 본질 흐리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 부장판사의 처신도 부적절하지만, 본질은 김 대법원장의 사법권 훼손과 비윤리성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건이나 사안을 보는 시각에는 본질과 비본질이 혼재된 경우가 많다. 오히려 본질보다 비본질이 더 부각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지난 3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권기백 판사의 심리로 열린 한 재판을 지켜보면서 답답함과 혼란스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본질은 따로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고양시장 부정선거 의혹’의 중요한 단서인 이행각서를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모씨에 대한 세 번째 심리였던 이날 재판 과정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여느 형사재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피고인 김씨는 이날 자신의 범죄혐의를 부인하긴커녕 되레 이런저런 거짓진술까지 하면서 시인하기에 바빴다. 검사의 경우 피고인이 한사코 혐의를 인정하는 마당에 뭘 하겠냐는 듯 그야말로 학업에 뜻이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권 판사는 심리 도중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등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김씨에게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대한 빚이 쌓인다’는 격언까지 소개하면서 연이은 거짓진술을 질타했다. 검사를 향해서도 소극적인 수사 의지를 지적하면서 이행각서에 날인된 지문과 김씨의 실제 지문에 대한 감정조차 하지 않은 점을 다그쳤다.

전현직 고양시장 측 사이의 거래 의혹을 사고 있는 이행각서


그 연장선에서 권 판사는 이행각서 위조 여부를 가리는 그 재판에 별 의미를 두지 않을 뿐더러 어떤 계략이 있을지 모른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는 지난 두 번째 심리에서 김씨에게 “스스로 범인이라고 하는데 무죄 받으면 안 될 사정이 있나”고 따져묻기도 했다.

또 하나 권 판사에게서 받은 느낌이 있다. 그도 이 사건의 본질은 따로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심리에서 “많은 사람은 피고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최성과 이재준 사이에 모략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권 판사 직권으로 이행각서 지문에 대한 국과수 감정을 신청하기로 결론 짓고 심리를 마친 이날 재판은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바로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비본질에 매달리다 보면 정작 본질이 퇴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고양시장 부정선거 의혹’이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고양시장 후보경선 때 전·현직 고양시장 측이 불법·부당한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다.

물론 이행각서의 존재와 위조 여부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본질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이행각서는 본질인 부정선거 과정에서 이뤄진 전·현직 시장 간 거래의 한 증거물일 뿐이다. 위조 여부는 그 이행각서를 놓고 벌어진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장난질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누가 뭐래도 고양시장 부정선거 의혹의 규명이다. 많은 고양시민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이행각서가 있든 없든, 이행각서 위조본이 있든 없든 그건 본질이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사실을 밝히면 될 일이고, 그에 앞서 부정선거 의혹을 푸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고양시장 부정선거 의혹은 지역의 해묵은 논란거리다. 지난 지방선거 직후부터 큰 이슈로 부각된 이 논란은 꾸준히 시민들의 관심권 안에 있었다. 특히 지난 2019년 5월 부정선거 두 핵심 당사자의 양심고백 번복사태가 벌어지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9년 5월 공개된 부정선거 관련 핵심 당사자의 문자메시지와 자필확인서


당시 부정선거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당사자들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자필 확인서도 공개됐다. 뿐만 아니라 부정선거와 돈거래 의혹을 풀어줄 만한 전화음성 녹취도 여러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좀처럼 의혹 규명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시민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지역 시민단체는 고양시청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심지어 국회의사당까지 찾아다니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도 이재준 시장 취임 이후 이뤄진 일련의 인사와 시정이 부정선거를 뒷받침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허다한 사례 가운데서 주위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극구 최성 전 시장의 비서 출신 인사를 공공자전거 운영회사 사장으로 앉힐 때는 많은 시청 공무원들과 시의회 관계자들도 부정선거를 확신했다.

이제 내년 6월이면 제8대 지방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많은 시민들은 그때까지 고양시를 뒤덮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이 풀리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행각서 위조 의혹 재판에 대해서도 관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거듭 주장하지만 그 사건의 본질은 분명 ‘고양시장 부정선거 의혹’이다.

지난 3일 재판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권 판사의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많은 시민들은 최성과 이재준 사이에 모략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법원 앞에 걸려 있는 큼지막한 현수막에 한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거기에는 “고양시장 불법선거 의혹, 진상을 규명하라”고 적혀 있었다.

sagu@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