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근절은 언제...“예비남편이 제 곁을 떠났습니다”

정진용 / 기사승인 : 2021-03-05 15: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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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기념하는 캠페인. 한성주 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고인은 출근하는 아침이 오는 것을 두려워해 하루 3~4시간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약 보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체중이 4kg 감소하는 등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규정에도 없는 그들만의 문화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5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통영해양경찰서 내 갑질로 예비남편이 사망하였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동의 8000명을 넘었다. 글이 등록된 지 사흘 만이다.

자신을 고인과 미래를 약속한 예비신부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고인은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해양경찰관이었다”면서 “직장내 지독한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지난달 24일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영원히 제 곁을 떠났다”고 적었다.

청원인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008년 해군부사관으로 지원하여 4년 동안 직업군인 생활을 거친 뒤 지난 2014년 해양경찰관이 됐다. 이후 수사업무를 배우고자 지난달 8일부터 통영해양경찰서 수사과 형사계에 배치받아 근무했다.

그런데 부서 내 존재하는 ‘태움’ 문화로 인해 사망하기 직전까지 정상적인 업무를 배당받지 못했다는 것이 청원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고인은 경찰 업무와 관련 없는 허드렛일을 하는 등 심적, 정신적 고충을 토로했다. 고인은 “나에게 업무를 주지 않는다”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비참하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또 “내가 출근해서 제일 잘하는 것은 사무실 거울 닦기, 후배들 쓰레기통 비우기, 커피 타기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통영해양경찰관 A씨는 지난달 25일 오전 10시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주변인 진술을 토대로 A씨가 통영 해경으로 전출된 이후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달 12일 A씨는 경찰관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A씨는 “아침 되면 눈뜨기 싫을 정도로 출근하기 싫다”며 “출근해서도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니 업무는 당연히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했다.

해경 측은 “내부적으로 직장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확인 중”이라는 입장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제공

청원인이 주장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A씨가 겪었던 업무미부여와 따돌림은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된 지 1년6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직장내 괴롭힘은 줄기는커녕 이전해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부에 접수된 직장내 괴롭힙 사건은 5823건(월평균 485건)이었다. 이는 지난 2019년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6개월 동안 접수된 2130건(월평균 335건) 보다 63%(월평균 37%) 가량 증가한 수치다.

괴롭힘 유형별로는 폭언이 45.18%(3571건)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부당인사와 따돌림·험담이 각각 21.19%(1675건), 14.97%(1183건)로 확인됐다.

이밖에 Δ차별 4.14%(327건) Δ업무미부여 3.61%(285건) Δ폭행 2.94%(232건) Δ감시 2.11%(167건) Δ사적 용무지시 2.04%(161건) Δ강요 2.02%(160건) Δ기타 1.81%(143건) 등이다.

가해자 처벌도 요원하다. 법 시행 후 접수된 전체 사건 7935건 중 송치된 사건은 94건으로 1.2%에 불과하다. 검찰이 최종 기소한 사건은 29건이었다. 실제 재판으로 이어진 건수가 전체의 0.3%에 불과한 셈이다.

직장내 괴롭힘 신고 건수에 비해 기소 비율이 낮은 것은 법에 명확한 처벌 조항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돼 골프장 캐디나 공동주택 경비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 조항을 신설하고, 노동부 신고를 확대하라고 요구했으나 국회는 직장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임이자 의원은 △제3자(도급인, 고객, 사업주 친족) 법 적용 △의무사항 불이행 과태료 1000만원 부과 등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송옥주 의원은 △가해자가 사용자 또는 사용자 친인척일 경우 과태료 1000만원 △의무사항 불이행 과태료 500만원의 처벌조항을 발의했다. 반드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