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보들은 모르는 ‘미나리’ 속 한국 문화 [원더풀 ‘미나리’①]

이준범 / 기사승인 : 2021-03-06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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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 스틸컷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영화 ‘미나리’에서 데이빗(앨런 김)은 “할머니한테 한국 냄새나”라고 말했다가 부모님에게 혼이 난다. 한국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옛 기억을 떠올리며 데이빗이 말한 ‘한국 냄새’를 ‘할머니 냄새’로 자동 번역하게 된다. 큰 딸인 앤(노엘 케이트 조)이 ‘지영’이란 한국 이름을 갖고 있지만 둘째 아들인 데이빗은 ‘데이빗아’라고 불리듯, ‘미나리’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가족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돈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한국인에겐 자연스럽지만, 외국인에게 낯설 ‘미나리’에 등장하는 한국 문화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외국인이 실제로 한국에서 쓸 수 있는 용법도 함께 소개하지만, 듣는 한국인이 놀랄 수 있으니 주의.


△ 장남(Jang-nam) : 과거 한국은 ‘장남’으로 구성된 나라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재산은 맏아들인 장남이 물려받고, 국가와 개인의 신분 관계를 명시한 호적(Hojeok) 제도 역시 장남 중심으로 돌아가던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서 태어난 장남 중심 문화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교육받을 권리도 얻지 못하고 희생당해야 했다. ‘미나리’에서 순자(윤여정)가 맏딸인 앤이 아닌 장남인 제이콥에게만 한약을 달여주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동시에 장남은 가족과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극 중 제이콥(스티븐 연)은 “10년 동안 뼈 빠지게 일했다”고 소리치지만, “그래서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냐”는 아내 모니카(한예리)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한국 관객들은 대화 도중 등장하는 ‘장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 돈이 제이콥의 동생들에게 보내졌다는 걸 쉽게 추측할 수 있다.

→ 결혼 후 부모님과 함께 살 고민을 하는 한국인에게 외국인이 “네가 장남도 아닌데 부모님을 왜 모셔?”라고 말하면, 깊은 공감과 함께 뼛속까지 한국 사람 다됐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 한약(Hanyak) : 한국인에게 ‘한약’은 사랑(Love)의 다른 표현이다. 한의학 이론을 바탕으로 몸에 좋은 약재를 조합해 물에 끓여 진하게 만든 약이다. 쓴맛이 특징이고 몸에 특별한 질병이 없어도 더 건강해지기 위해 먹기도 한다. 과거 한국 어린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정체불명의 쓴 약을 고통스럽게 먹어야 했고,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게 부모님,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게 보통이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인의 한약을 함부로 훔쳐먹으면 평소에 온화하던 사람도 분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나리’에서 순자가 손자인 데이빗을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한약을 먹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비싼 한약을 먹는 건 데이빗에겐 세상 싫은 일이지만, 할머니 순자에겐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한국인에게 몸에 좋은 음식은 맛과 이유를 불문하고 꼭 먹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서도 담겨있다.

→ 약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외국인이 “한약 마시면 할머니가 주던 사랑방 캔디가 꿀맛이었지”라고 말하면 국적을 속인 것 아니냐는 강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스틸로 만들어진 파란 원통형의 케이스까지 설명하면 금상첨화.


△ 화투(Hwatu) : 한국인에게 ‘화투’는 일종의 민속놀이다. 명절마다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이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즐기는 치매 예방 놀이로 받아들여진다. 화투는 12달을 의미하는 화초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뜻하는 것일 뿐 게임 자체를 의미하진 않는다. 화투를 활용해 고스톱, 맞고, 민화투, 섯다 등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1점당 100원을 걸고 치는 고스톱은 반복해서 치면 대부분 한국인에게 가벼운 놀이로 받아들여지지만, 도박죄가 적용될 위험이 있으니 주의.

‘미나리’에선 순자가 손자, 손녀와 화투를 이용해 고스톱을 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정확한 룰을 설명하지 않고 일단 치면서 배우는 모습이 굉장히 현실적이다. ‘아이고’, ‘엄머’, ‘이놈아’ 등의 화려한 감탄사 역시 한국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데이빗이 미국인 친구에게 고스톱을 알려주는 장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다면 당신은 토종 한국인이다.

→ 한국인과 고스톱을 치게 될 경우 “화투 치다가 밑장 빼면 큰일 나는 거 알지?”라고 말하며 손목을 돌려주면 분위기가 더욱 달아오르게 할 수 있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 ‘데이빗아’ : 한국인은 친숙한 상대를 ‘~야, ~아’라고 부른다. 한국인에게 이 같은 호칭으로 불렸다면 당신은 가까운 사이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하지만 어른이 아이를 부르거나 또래끼리 쓰는 표현이므로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

‘미나리’에선 순자가 손자인 데이빗을 ‘데이빗아’라고 한국 이름처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데이비사’라고 부르는 배우 윤여정의 발음을 들은 한국 관객은 자막으로 보는 외국 관객보다 영화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다.

→ ‘미나리’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 외국인이 “우리 할머니는 ‘이빗아’라고 불렀을지도 몰라”라고 말한다면, 주변에 있던 한국 관객의 관심을 한몸에 받을 수 있다.


△ 회초리(Hoechori) : 모든 한국인에게 ‘회초리’는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아팠던 기억이다. 선생님 혹은 부모님에게 공식적으로 혼날 일이 생기면 회초리라고 불리는 가는 나뭇가지로 종아리를 맞는 것이 과거 일종의 가정 교육 방법을 받아들여졌다. 다른 매와 달리 회초리는 맞는 사람이 직접 가져와야 하고 “몇 대 맞을래?”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비슷한 용어로 ‘사랑의 매’가 있다.

‘미나리’에서도 잘못을 저지른 데이빗에게 제이콥이 “회초리 갖고 와”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외국 관객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 관객에겐 과거 트라우마를 일깨우는 장면이다. 이를 순자가 감싸는 장면에서 데이빗이 할머니에게 느꼈을 고마움 역시 한국인들은 부연 설명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어휴, 회초리로 맞은 건 양반이지”라고 말하는 외국인이 있다면 학창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것으로 의심받기 좋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 무용담을 늘어놓는 꼰대로 보일 수 있으니 조심할 것.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