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강길우 “온전히 ‘정말 먼 곳’에 존재하고 싶었어요”

기사승인 2021-03-17 06: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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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강길우 “온전히 ‘정말 먼 곳’에 존재하고 싶었어요”
사진=배우 강길우. 그린나래미디어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조용히 양털을 깎는 진우(강길우)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 ‘정말 먼 곳’(감독 박근영)은 강원도 화천이 배경이다. 짧은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묵묵히 목장일을 해내는 진우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강원도 출신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에겐 사연이 있다. 동성 연인 현민(홍경)과 쌍둥이 동생 은영(이상희)이 차례로 찾아오면서 목장의 평화로운 일상에 금이 간다. 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중에도 진우는 아름다운 화천 풍경과 줄곧 하나가 되어 영화와 호흡한다.

‘정말 먼 곳’은 배우 강길우에게도 지분이 있는 영화다. 박근영 감독의 전작 ‘한강에게’를 함께한 강길우는 지방 영화제를 다니면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된다. 박 감독의 후배가 보낸 사진엔 은행나무와 호수 등 평화로운 화천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그 공간에선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대화를 나누며 영화의 뼈대를 만들어갔다. 자신이 나눈 이야기가 어떻게 글로 완성됐을지 궁금해 하며 대본을 읽었다. 최근 쿠키뉴스와 화상 인터뷰로 만난 강길우는 진우를 연기한 소감을 전했다.

“진우는 문제가 있을 때 속내를 드러내거나 부딪쳐서 해결하는 편이 아니에요. 속에 가득 담아두고 피한다고 할까요. 그렇게 피해서 들어온 게 화천이기도 하죠. 진우는 말하지 못하는 성소수자의 아픔과 고통이 있어도 늘 속에 품고 티내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성소수자로서의 접근보다는 인물의 성격과 사람간의 사랑에 집중했어요. 진우가 어떤 사연이 있어서 이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됐는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차별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는지, 어떤 성격이라 어떻게 차별에 대처했는지에 대해 감독님과 홍경 배우와 얘길 많이 나눴어요.”

[쿠키인터뷰] 강길우 “온전히 ‘정말 먼 곳’에 존재하고 싶었어요”
영화 '정말 먼 곳' 스틸컷

‘정말 먼 곳’을 만들어가는 것과 배우로서 진우를 연기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영화에서 진우는 한복판에서 모든 인물과 관계를 맺는다. 상대 인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미세한 차이점을 연기하기 쉽지 않았다. 또 현실의 강길우와 영화 속 진우의 차이점도 많았다.

“진우는 산에 사는 인물이잖아요. 전 산에 살지 않고, 아이를 키우지 않고, 성소수자도 아니에요. 진우라는 인물과 많은 면에서 달랐기 때문에 외형부터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진짜가 아니지만 진짜처럼 보여야 하고 2시간 동안 관객에게 진우라는 신뢰를 줘야 하잖아요. 체중을 10㎏ 정도 늘렸고, 5~6개월 정도 머리를 마구 길렀어요. 긴 머리가 화천의 진우와 어울릴까 감독님과 고민하다가 완전히 밀기도 하고 어느 정도 길이가 좋을까 생각하면서 맞췄어요. 햇빛에 노출돼 노동하는 인물이라 장시간 태닝도 하며 준비했어요. 아이와 함께 있는 인물이니까, 아이들이 다니는 스포츠센터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최대한 다 해봤어요.”

86년생인 강길우는 배우로 늦게 알려진 편이다. 처음부터 배우의 길을 걷진 않았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자연스럽게 미대에 들어갔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기 위해 영화미술에 뛰어들었다. 젊을 때 빨리 해보고 접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해본 배우가 너무 재밌었다. 그때 느낀 재미가 2015년 연극 ‘아모르파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강길우를 배우의 길로 이끌었다.

[쿠키인터뷰] 강길우 “온전히 ‘정말 먼 곳’에 존재하고 싶었어요”
사진=배우 강길우. 그린나래미디어

“낯도 많이 가리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꺼리는 편이에요. 그땐 지금보다 더 그랬겠죠. 첫 연극의 첫 공연을 올리는 날 첫 장면에서 제가 암전 속 무대에 있다가 조명이 켜지는 순간이 정말 따뜻했어요. 조명이 실제 따뜻하기도 하고, 조명 뒤에 많은 관객들이 절 보고 있잖아요. 제가 웃으면 같이 웃고 제가 울면 같이 우는 재미를 그때 느꼈어요. 이건 어떤 느낌이지 싶고 새롭더라고요. 첫 연극에서 느낀 따뜻함을 더 느끼고 싶어서 계속 쉬지 않고 출연했고 할수록 더 즐거워졌어요. 맡은 인물을 더 잘 표현하고 싶은 욕심과 목표들이 생기면서 연기한 지 11년 됐어요. 첫 공연 때 순수한 마음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더 잘 하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요. 지금은 잘 보이고 싶은 마음보다 온전히 작품 속에 존재하고 싶은 욕심이 들어요. ‘정말 먼 곳’도 그런 마음으로 연기했고요.”

강길우는 ‘정말 먼 곳’을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고 소개했다. 처음 제작할 때부터 큰 스크린으로 볼 영화라 생각하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정말 먼 곳’은 큰 스크린으로 만났을 때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극장용 영화라고 생각하며 극장에서 감상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독립영화의 예산과 규모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완성도와 퀄리티를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또 저에게 ‘정말 먼 곳’은 최선을 다한 영화예요. 촬영하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더 이상은 힘들다’ ‘이게 끝이구나’ ‘내가 더 잘할 수 없다’는 생각들을 했어요. 더 잘하려고 하면 욕심이고, 내 연기가 닿지 않고 아쉬운 평가로 남는다면 그게 지금 내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겐 최선을 다했고 능력치를 다 보여준 의미의 작품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요. 2021년 배우 강길우에겐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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