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예능 프로그램 속 '최악의 순간들'

기사승인 2021-04-17 0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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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건강한 웃음’을 기대해도 되는 걸까. ‘막장 드라마’만큼 질 낮은 예능 프로그램이 안방극장에 속속 침투하고 있다. 아래 사례들을 살펴보며, 만드는 이와 보는 이의 책임을 다시 생각해보자.

TV 예능 프로그램 속 '최악의 순간들'
■ TV조선 ‘아내의 맛’
: 조작 논란으로 막 내리다

중국인인 시부모는 부자다. 아들 부부가 사는 한국 집이 좁아 보이자 ‘큰 집을 장만해주자’며 부동산을 찾고(91화), 하얼빈에 10만 평짜리 옥수수 농장과 크고 화려한 별장도 갖고 있다(67화). ‘아내의 맛’ 측은 방송을 시작한 2018년부터 줄곧 함소원 시가의 재력을 ‘대륙 스케일’이라며 과시해왔다. 절약이 몸에 배 ‘짠소원’으로 불리는 함소원이 씀씀이가 큰 남편·시가와 갈등을 빚는 에피소드도 단골 소재였다. 그런데 최근 이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시부모가 사줬다는 집은 원래 함소원 소유였고, 시부모 별장으로 나온 곳은 에어비앤비 숙소란다. 시청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했다. 함소원의 SNS 댓글 창은 그를 옹호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으로 나뉘어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제작진은 “함소원 씨와 관련한 일부 에피소드에 과장된 연출이 있었음을 뒤늦게 파악했다”며 시즌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함소원도 SNS에서 “과장된 연출 하에 촬영했다”고 말했다. 양쪽 모두 잘못이 ‘있었다’는 건 인정했는데, ‘누가’ ‘왜’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입을 다물었다. 제작진은 마지막 방송에서 ‘다시 또 찾아올게요’라는 자막으로 시즌2를 예고한 상태다.

TV 예능 프로그램 속 '최악의 순간들'
■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 시즌2’
: 우는 어린이를 전시하다

“합격자는…전원입니다!” 심사위원 장윤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초등부 참가자 7명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린다. 극도로 높아졌던 불안감이 일순 해소된 탓이다. 자신만 ‘올 하트’를 받지 못한 속상함에 눈물 흘리던 참가자는 아예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한다. 지난해 12월 방영한 ‘내일은 미스트롯2’(이하 미스트롯2) 첫 회에 나온 이 장면은 프로그램이 종영할 때까지 거의 매회 반복됐다.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경쟁의 세계, 오직 합격과 불합격만이 존재하는 이분법의 세계로 어린이를 끌어들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더 나쁜 건 어린이를 보는 어른의 시선이다. 4회에서 경연에서 탈락한 최연소 탈락자가 바닥에 엎드려 울자, 제작진은 과장된 배경음악과 함께 방청객 웃음소리를 삽입했다. 어린이의 극적인 감정표현을 볼거리로 이용한 혐의가 짙다.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자극적인 편집 때문에 어린이 참가자가 악성댓글을 받게 됐다면서 방송통신위원회에 민원을 넣었다. 방통위는 ‘TV조선이 아동·청소년 권익보호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행정 지도했다”고 밝혔다.

TV 예능 프로그램 속 '최악의 순간들'
■ 채널A ‘프렌즈’
: 출연자 검증을 하지 않다

해가 다 뜨지 않은 새벽, 남자가 잠에서 깬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을 뿐인데, 그를 보던 연예인 패널들은 “멋있다” “분위기 있다”며 호들갑이다. 감탄을 한 몸에 받는 이는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2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던 김현우. ‘오랜만’이라는 제작진 인사에 그는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현우는 ‘하트시그널2’가 방송 중이던 2018년 4월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세 번째 음주운전이었다. ‘하트시그널2’ 제작진이 그의 음주운전 사실을 알았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프렌즈’ 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출연자 검증을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은 셈이다. ‘하트시그널3’ 출신인 이가흔은 방송 당시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지금까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지만, 그 역시 ‘프렌즈’에 출연 중이다. 채널A는 앞서도 음주운전으로 연예활동을 중단한 가수 길을 ‘아빠본색’과 ‘아이콘택트’에 출연시켰고, ‘풍문으로 들었SHOW’를 통해 마약 파문을 일으키고 연예계를 떠난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의 심경 고백 인터뷰를 다루기도 했다.

TV 예능 프로그램 속 '최악의 순간들'
■ KBS조이 ‘무엇이든 물어보살’
: 가정폭력을 사적 영역으로 다루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은 집착이 심한 아빠 때문에 고민이 많다.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웠던 오빠와 달리, 자신은 오후 7시30분까지 집에 들어가야 해서다. 한 번은 아빠가 정한 통금시간을 어겼다가 삭발을 당하기도 했다. 고민 상담을 해주겠다는 두 ‘보살’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동시에 얘기해줄게. 네가 너무 예뻐서 그래.” 삭발 ‘당한’ 딸의 사진을 보고도 보살들은 “삭발한 아빠 마음도 찢어졌을 것”이라며 이해를 강요한다.(96회) 서장훈과 이수근이 일반인 출연자의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무엇이든 물어보살’은 회를 거듭할수록 2년 전 종영한 KBS2 ‘안녕하세요’와 비슷해지고 있다. ‘혼외자를 남편 호적에 올린 채 잠적한 아내’, ‘수술 동의를 해줄 보호자가 사라져 암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싱글맘’ 등 자극적인 사연들로 시청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공적 개입이 필요한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다는 점이 그렇다. KBS조이 ‘썰바이벌’, 채널A ‘애로부부’ 등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시청자의 뇌를 마비시키는 막장 예능의 시대가 지금 여기에 와 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각 방송 화면 캡처.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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