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막으랬더니...집단 성희롱·2차 가해한 경찰

기사승인 2021-06-25 15: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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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막으랬더니...집단 성희롱·2차 가해한 경찰
쿠키뉴스DB.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성범죄 단속 주체인 경찰 내부에서 성비위가 잇따르고 있다. 조직 구성원, 특히 간부급을 대상으로 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강원 태백경찰서 소속 경찰관 16명이 신입 여경을 성희롱한 당시 지휘권자인 태백경찰서장(A총경)도 2차 가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은 피해자 측에 “지난 1월26일 피해자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다른 경찰 직원들 앞에서 ‘할 말은 해야겠다’면서 피해자를 나무라는 취지의 언행을 한 A총경의 행동은 2차 가해 부분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징계 내용을 통보했다. A총경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청은 가해자 16명 중 12명에게 징계를, 4명에게는 직권 경고를 하도록 강원경찰청에 지시했다. A총경에게는 지휘 책임을 물어 문책성 인사 발령을 냈다.

피해자는 지난 2019년 순경 임용 후 동료 경찰들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과 허위 소문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지난해 9월 태백서 청문감사실에 알렸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가슴을 들이밀며 일을 배우더라’, ‘얼굴이 음란하게 생겼다’ 등 성희롱을 일삼았다. 피해자의 성관계 횟수에 대한 소문을 공유하고 이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불법으로 숙박업소 CCTV를 조회하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아무런 보호조치도 이뤄지지 않자 피해자는 지난 3월 경찰 내부망에 피해사실을 주장하는 폭로글을 올린 데 이어 5월에는 해당 경찰서장과 감사 관련 부서 직원 등을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소했다.
성범죄 막으랬더니...집단 성희롱·2차 가해한 경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뿐만 아니다. 서울지역에서도 경찰 간부의 성비위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22일 경찰청 감사담당관실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서울지역 경찰서 간부 B씨의 성 비위 의혹 관련 징계를 심의했다. B씨는 중앙언론사 수습 기자에게 성희롱 소지가 있는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경찰 조직 내 성비위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태백경찰서 집단폭력 가해 남경들의 파면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이번 사건은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경찰 조직에서 발생한 집단성폭력 사건이며, 사건 대응 과정에서의 미흡한 조치와 2차 가해로 피해자는 큰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며 “이렇듯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가해 남경들에게는 파면 조치가 마땅하다”고 촉구했다. 이 청원은 올라온 지 하루 만인 25일 동의 1만9000여명을 기록했다.

경찰 조직 내부 성비위 징계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경찰 조직 내부 성비위 징계 건수는 42건으로 지난 2019년(27건) 보다 56% 늘었다. 3년 새 가장 많은 징계 건수 이기도 하다. 이 중 파면과 해임, 강등, 정직에 해당하는 중징계는 33건에 달했다. 감봉과 견책 등 경징계는 9건이었다. 

또한 최근 5년간 경찰 조직 내 성비위 가해자 80% 이상이 경위 이상의 간부로 드러났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지난 4월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경찰 조직 내 성비위 징계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찰조직 내에서 발생한 성비위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총 194명으로 집계됐다. 계급별로 살펴보면 경위(86명), 경감(44명), 경정(20명), 총경(4명)으로 등 경위 이상 간부급이 79.4%를 차지했다.

앞서 지난 2019년에는 경찰 총경 및 공공기관 임원 승진 예정자들이 성평등 교육에 반발해 강의실을 이탈하거나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여자가 일을 잘하면 구태여 남녀 가려서 뽑을 일이 있겠느냐” 등 이의를 제기하며 수업을 거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 조직 전체의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경희 원광대학교 경찰학연구소 연구 교수는 “핵심은 관리자의 성평등 인식”이라며 “성비위 사건을 인지하고 제대로 대처 하는 역할을 관리자가 중간에서 제대로 해줘야 한다. 은폐, 종용, 방관하게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짚었다.

이어 “과거에는 성비위 사건이 개인의 도덕성과 연결됐다면 지금은 조직 전체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며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성평등 교육 강화, 승진 시 성인지 감수성을 평가 기준에 포함시키는 등 방안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