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벗’ 故 정광훈 전 전농의장,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아스팔트 농사’ 지으며 농민 권익 보호, 민주주의 발전 기여 공로

입력 2021-07-12 13: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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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벗’ 故 정광훈 전 전농의장,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민중의 벗’ 고(故) 정광훈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에게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사진=민중의 벗 정광훈 의장 추모사업회]
[무안=쿠키뉴스] 신영삼 기자 =‘민중의 벗’ 고(故) 정광훈 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에게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10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거행된 제34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정 전 의장을 비롯한 29명에게 훈포장 등을 수여했다. 

정 전 의장은 전남기독교농민회를 창립하고 전농 광주전남연맹 초대의장, 전농 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의장, 한국진보연대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농민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며 농민 권익 보호, 사회운동가 양성 등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정 전 의장의 큰아들 경철(55)씨는 아들 주호(15)와 함께 지난달 24일 광주시청 비즈니스룸에서 이용섭 광주시장으로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훈장을 전수 받았다.

1976년 아스팔트 농사를 시작한 지 45년, 2011년 5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우리의 곁을 떠난 지 10년 만의 일이다.

‘민중의 벗’ 故 정광훈 전 전농의장,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정광훈 전 의장의 큰아들 경철(55)씨는 아들 주호(15)와 함께 지난달 24일 광주시청 비즈니스룸에서 이용섭 광주시장으로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훈장을 전수 받았다.[사진=정경철]
1970년대 후반, 김남주 시인과 황석영 소설가와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농민운동가의 길로 나선 정 전 의장은 1978년 전남기독교농민회를 창립하고 초대 총무를 맡았다.

전남기독교농민회 회장이던 1980년 5월에도 농민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18일, 광주북동성당에서‘관제농협 해체 및 민주농정실현을 위한 농민대회’를 계획했으나 계엄확대로 무산되자 무안, 해남, 영암, 강진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1982년 전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초대 교육부장과 1984년 민중교육연구소 교육부장으로 활동하며, 미국대사관 점거 투쟁을 벌이는 등 미국 농수산물 수입 반대 운동에 나섰고, 농민들의 희생만을 강요한 정부의 잘못된 농정을 바로잡기 위한 거리 투쟁을 ‘아스팔트 농사’로 명명하고, 광주로, 여의도로, 아스팔트를 누볐다.

1987년 전국 최초로 수세투쟁을 주도했으며, 이후 1989년 3월 단일농민조직 건설을 위한 과도조직인 전국농민운동연합을 결성해 부의장으로 선출, 전국수세대책위 교육 선전활동을 이어갔고, 이후 2000년 일제의 대표적인 농민 수탈 정책이었던 수세 폐지를 견인해 고질적인 농촌의 준조세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1990년 4월 전국농민회총연맹 창립과 함께 초대 부의장,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초대의장을 역임하면서 농민들의 자주적인 조직 건설과 교육,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주도했다.

1991년 민주주의 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상임의장에 취임, 국민의료보험법 쟁취투쟁, 쌀 전량수매쟁취 전국농민대회를 주도했으며 1992년 5월 농민대회 및 5‧18진상규명투쟁 주도 이유로 수배 중 구속돼 4년간 옥고를 치렀다.

전농 의장이던 2000년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 반대 투쟁을 주도했다가 또다시 수감됐다.

‘민중의 벗’ 故 정광훈 전 전농의장,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2011년 4월 화순군수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 지원 유세를 마치고 해남으로 돌아가던 길에 강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5월 13일 타계해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역사묘역에 안장됐다. 정 전 의장의 나이 72세다. 망월동 묘소 앞에 훈장과 훈장증이 놓여있다.[사진=정경철]
이후 2003년 WTO 칸쿤 회의 반대 투쟁, 2006년엔 한미 FTA 저지 미국 원정 투쟁 등 자유무역 반대 투쟁을 주도했다가 2007년 7월 3차 투옥 된 뒤 국제사면위원회가 지정하는 양심수로 선정돼 석방됐다.

이후로도 한국진보연대와 범민련 남측본부, 민주노동당 고문으로 민중운동과 통일운동, 진보정당 운동 등 민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왔다.

2011년 4월 화순군수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 지원 유세를 마치고 해남으로 돌아가던 길에 강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5월 13일 타계해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역사묘역에 안장됐다. 정 전 의장의 나이 72세다.

이듬해 추모문집으로 ‘여러분, 혁명의 축제로 가는 길은 멀지 않습니다!’가 출간된데 이어, 타계 5주기인 2016년에는 다큐멘터리 ‘혁명으로의 초대- 정광훈 의장’이 제작됐고, 2017년에는 ‘민중의 벗 정광훈 평전’이 발간돼 30여 년간 우리나라 농민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정 전 의장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

송경동 시인은 ‘정광훈 의장 5주기 추모시’를 통해 이렇게 기억했다.

이 땅 모든 불의 앞에
전세계 인간해방의 염원 앞에
그는 여전히 소년처럼 해맑게 살아 있다
그의 삶은 늙지 않을 것이며
그의 신념 또한 낡지 않을 것이다

news032@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