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과 마지막 춤을… 배구 대표팀의 꿈만 같던 시간 [올림픽 되감기①]

문대찬 / 기사승인 : 2021-08-11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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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2020 도쿄 올림픽’이 지난 8일 17일간의 장정을 마무리하고 막을 내렸다. 종합 순위 10위 이내 입상을 목표로 도쿄에 입성한 한국 대표팀은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16위로 일정을 마쳤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국민들은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과 땀, 그리고 미래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번 올림픽을 풍성하게 장식한 명장면들을 차례로 되감아봤다. 

양궁 혼성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안산(좌)과 김제덕   사진=연합뉴스

◇ 우리는 주몽의 후예, 금메달 4개 안긴 한국 양궁

대표적인 효자 종목으로 꼽히는 양궁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제 몫을 다했다. 금메달 4개로 양궁 종목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하며 한국 선수단의 메달 레이스를 이끌었다.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도입된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 소식이 제일 먼저 전해졌다. 양궁 대표팀의 막내 김제덕(17·경북일고)과 안산(20·광주여대)이 출전해 금빛 과녁을 쐈다. 김제덕은 역대 한국 올림픽 남자선수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어서 열린 여자 양궁 단체전에선 강채영(25), 장민희(22), 안산이 출전해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를 세트 점수 6-0으로 가볍게 따돌리며 올림픽 9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 여자 양궁은 단체전이 처음 도입된 1988 서울 올림픽부터 3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남자 양궁 단체전에서도 낭보가 날아들었다. 맏형 오진혁(40), 김우진(29), 김제덕이 출전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이어 이 부분 2연패를 달성했다. 형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파이팅’을 힘차게 외치는 김제덕의 모습이, 이들의 여정에 매력을 더했다. 

한편 안산은 이번 대회를 통해 ‘신궁’ 계보에 올랐다.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에서는 두 번의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승부를 이겨내고, 당당히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 3관왕에 올랐다.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가 3관왕에 오른 것은 안산이 처음이다. 안산의 개인전 금메달은 숏컷, 페미니스트 논란 등 거센 외풍에 맞서 수확한 것이라 더욱 뜻 깊었다. 

양궁 대표팀의 변함없는 선전에, 든든한 조력자 양궁 협회도 조명을 받았다. 

양궁 협회는 코로나19로 인한 변수에도 공정한 선수 선발 방식을 고수했다. 올림픽 연기가 결정됐을 당시 이미 국가대표 선발전이 2차 대회까지 마무리 된 상황이었지만, 올림픽이 열리는 2021년도를 기준으로 선발전을 다시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김제덕이 대표팀에 승선했다.

혼성 단체전 출전권 역시 실력 순으로 주어졌다. 본격적인 일정을 앞두고 치른 랭킹라운드에서 1위를 차지한 김제덕과 안산이 선배들을 제치고 혼성 단체전 출전권을 차지했다. 
한국 사브르 여자 대표팀의 윤지수가 동메달을 결정지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함께일 때 강하다… ‘팀 코리아’ 저력 보여준 한국 펜싱

펜싱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팀 코리아’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낸 한국 펜싱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이를 뛰어넘겠다는 각오로 도쿄에 입성했다.

하지만 개인전 메달이 유력했던 선수들이 나란히 고배를 마셨다. 남자 사브르 세계 랭킹 1위 오상욱(25)이 8강에서 충격 탈락했고, 여자 에페 2위 최인정(32) 역시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이밖에도 남자 에페 디펜딩 챔피언 박상영(25·8위), 여자 에페 강영미(36·8위), 남자 사브르 구본길(32·9위)도 일찌감치 일정을 마쳤다. 베테랑 김정환(37·15위)만이 사브르에서 동메달을 수확했다.

위기 속에서 똘똘 뭉친 대표팀은 단체전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서로를 의지하고 또 격려하며 세계의 강호들과 맞서 싸운 끝에, 출전권을 따낸 단체전 종목에서 전부 메달을 수확하는 쾌거를 올렸다. 남자 사브르와 에페 단체전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여자 에페와 사브르 단체전에선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냈다. 남자 에페, 여자 사브르는 올림픽 역대 첫 메달이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에이스 오상욱이 흔들릴 땐 맏형 김정환이, 김정환이 부진할 땐 구본길이 나서 어려움을 극복했다. 승부처에선 오상욱이 이름값을 해냈다. 토너먼트를 거듭할수록 강해진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이탈리아를 꺾고 이번 대회 최정상에 섰다.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선 5라운드까지 15-25로 밀리는 등 패색이 짙었지만 윤지수가 나서 홀로 11점을 따냈고, 부상으로 이탈한 최수연을 대신해 출전한 후보 선수 서지연이 깜짝 활약을 펼치며 역전승을 거뒀다. 여자 에페는 막내 송세라의 활약에 힘입어 랭킹 1위 중국을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남자 에페는 리우 대회 드라마의 주인공 박상영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기적을 써냈다. 


◇ ‘Z세대들의 도약’ 韓 체육계 성공적인 세대교체… 파리야 기다려라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지만,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들의 분전은 2024년 파리 올림픽에 대한 달콤한 꿈을 품게 만들었다. 

양궁에서 각각 3관왕, 2관왕에 오른 안산과 김제덕을 비롯해 사격 25m 권총에서 올림픽 기록으로 깜짝 은메달을 따낸 김민정(24), 양학선에 이어 체조 남자 도마에서 금메달을 따낸 신재환(23), 여자 도마에서 한국 최초로 동메달을 수확한 여서정(18) 등이 성과와 가능성을 보여줬다. ‘탁구 신동’ 신유빈(17)은 세계 강호들과의 맞대결에서 잠재력을 뽐내며 한국 탁구의 미래를 밝혔고 , 전웅태(26)는 근대5종에서 한국 최초로 메달을 목에 걸며 종목 다변화의 길을 열었다. 
한국 남자 수영의 역사를 새로 쓴 황선우.   사진=연합뉴스


남자 수영 황선우(18)와 높이뛰기 우상혁(25)은 이번 올림픽의 주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선수는 올림픽 일정 중에도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 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 감탄을 자아냈다.

‘한국 수영의 전설’ 박태환에 이어 차세대 ‘마린보이’로 꼽히는 황선우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자유형 100m와 200m 기록을 갈아치웠다. 100m에선 47초56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아시아 선수로는 65년 만에 결선에 올랐고, 200m에선 1분44초62를 기록해 박태환을 넘어섰다. 

경험 부족으로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그가 보여준 잠재력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황선우의 200m 결선 레이스를 지켜본 일본 방송국 NHK 중계진은 “18세로 아직 어린 선수인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메달을 주고 싶을 정도의 레이스다. 앞으로 이 선수가 이끌고 나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BBC도 “엄청난 속도”라고 환호했다. 이번 대회 5관왕에 오른 ‘수영황제’ 케일럽 드레슬(미국)도 “내가 18살이었을 때보다 더 빠른 선수”라며 황선우를 칭찬했다.

황선우는 내년 아시안게임, 3년 뒤 파리 올림픽이 더 기대되는 선수다. 아직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등을 거치지 않아 근력이 부족하다. 폐활량과 체력도 정상급은 아니다. 스스로도 “체력 부족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레이스 운영 능력도 다듬어야 한다. 이번 200m 결선에서 오버 페이스를 한 탓에 막바지 레이스에서 힘이 빠졌다. 이병호 서울체고 감독은 “제대로 체력 관리를 시작하면 근력, 근파워 등이 상당히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상혁이 한국 신기록을 작성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군인 신분인 우상혁은 아시아 육상의 미래로 우뚝 섰다.

그는 이번 대회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를 뛰어넘어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종전 한국 기록은 1997년 6월 20일 전국종별선수권대회에서 이진택이 세운 2m34다. 아울러 우상혁은 이번 대회에서 4위를 기록하며 한국 육상 트랙·필드의 올림픽 사상 최고 성적을 냈다. 

우상혁의 이번 도전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그는 대회를 하루 앞둔 날까지도 기준기록 2m33을 통과하지 못해 올림픽 참가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 6월 29일 열린 높이뛰기 우수선수초청 공인 기록회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2m31을 달성해 31위로 도쿄행 막차를 탔다. 도쿄에서 2m28를 뛰어넘어 예선을 통과한 그는 결선에서는 2m31에 이어 2m33, 2m35를 차례로 넘으며 역사를 썼다.

혼잣말을 되뇐 뒤 ‘씨익’ 웃으며 바를 뛰어 넘고, 실패에도 웃음을 잃지 않은 그의 도전은 국민들을 향한 거수경례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는 이번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뒤 김연경이 표승주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김연경과 함께 마지막 춤을… 꿈만 같았던 여자 배구의 여정

여자 배구 대표팀의 여정은 이번 대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10일 시청률 조사기업 TNMS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9시부터 지상파 3사에서 동시 중계 방송된 한국과 브라질 대표팀의 여자 배구 4강전은 평균 전국 가구 시청률 총합 36.8%를 기록했다. 최고 시청률은 40.9%에 달했다.

레전드 김연경(33)의 마지막 도전으로 주목받은 여자 배구는 당초 큰 기대를 받진 못했다.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 폭력 논란으로 이탈하는 등 전력이 약화돼 조별 예선 통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간절함과 투혼, 단결력으로 뭉친 대표팀은 기적을 써내려갔다. 조별 예선에서 케냐와 도미니카 공화국을 차례로 꺾더니 숙적 일본을 맞아 3-2로 승리하며 8강 진출권을 따냈다. 8강에선 세계 랭킹 4위 터키를 5세트 접전 끝에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4강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나란히 0-3으로 완패, 염원하던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대표팀이 보여준 각본 없는 드라마에 아쉬움과 질책보다는 찬사와 응원이 쏟아졌다. 

코트에서 강인한 모습만을 보여줬던 김연경은 대회를 마감한 뒤 기어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누구도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를)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조차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경기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고 흐느꼈다. 

김연경은 “국가대표는 내게 무겁기도 했고 큰 자부심이었다”며 “한국에 가서 (배구협회) 회장님과 얘기를 나누겠지만 사실상 오늘 경기가 국가대표로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관심 속에서 대회를 치렀다. 여자 배구를 조금이나마 알리게 돼 기쁘다. 꿈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