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용궐산 암벽 파헤치고 새겨진 석각에 ‘등산객 분통’

등산객들 “용궐산 암벽에 김일성 부자나 저지를 만행 벌여”
순창군, “고사성어 탐방로 조성, 법적으로 문제없어”

입력 2021-08-11 14:47:14
- + 인쇄
순창 용궐산 암벽 파헤치고 새겨진 석각에 ‘등산객 분통’
순창군이 용궐산 자연암벽을 파헤치고 대형 석각을 새기면서 지역민과 등산객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쿠키뉴스] 김영재 기자 =“한심합니다, 군수님. 꼭! 이래야만 합니까? 자연암벽에 이렇게 글씨를 새겨 넣어야 옛 성현이 남긴 말씀의 뜻을 안답니까?”

전북 순창군 용궐산에 오른 등산객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저마다 한마디 뱉어내는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다. 

“참혹하고 기가 막힙니다. 여기가 북한이나 중국도 아니고 수천 년 동안 온갖 풍파에도 버텨왔던 돌산인데 이렇게 전동드릴로 마구 파헤쳐버리는 만행을 저질러야만 속이 시원합니까. 지금 당장 산림훼손을 멈추십시오.”

일부 등산객들은 용궐산 암벽을 파헤치고 새겨진 석각(石刻)을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북한이나 중국의 명산 기암절벽에 새겨진 글귀를 연상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북 순창군이 동계면에 위치한 용궐산 천연암벽 곳곳에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등 사자성어를 유명 서예가의 글씨체로 석각을 새겨 넣어 논란이 되고 있다. 

11일 순창군 주민들과 관광객들에 따르면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에 위치한 용궐산 주변 암벽에 수십 개에 달하는 한자가 약 1m크기로 새겨져 있어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순창군은 산림청으로부터 용권산을 자연휴양림으로 지정 승인을 받아 국비 약 100억여원을 투입해 용궐산 일대 산림문화관광명소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군은 암벽이 많은 용궐산 일대에 암벽등산로와 명상을 위한 산림욕장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자연휴양림 조성을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용궐산 등산로 곳곳에 전동드릴을 이용해 암벽을 파헤치고 자연환경을 크게 훼손해 지역민들과 등산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순창 용궐산 암벽 파헤치고 새겨진 석각에 ‘등산객 분통’
순창 용궐산 자연암벽에 대형 석각을 새겨 넣기 위해 세운 철제 작업대

특히 등산객들은 용궐산 하늘길 잔도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절경을 보러 찾았다가 자연암벽을 파헤쳐 새겨 넣은 석각을 보고 “북한이나 중국에서 공산주의 선전을 위해 명산에 석각을 새겨 넣은 것이나 뭐가 다르냐”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지역민과 등산객들의 원성에도 순창군은 자연휴양림 조성 과정에서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용궐산만의 차별화된 ‘고사성어 탐방로’ 사업을 구상, 지난해 고사성어 4개를 새겨 넣었고 올해 4개를 추가해 모두 8개 글귀를 새겨 넣을 계획이다. 

전주에서 용궐산을 찾았다는 등산객 H씨는 “북한에서 김일성 부자 우상화 작업으로 백두산, 금강산 기암절벽에 석각을 새겨 넣은 것에도 분노하는데 조선시대도 아니고 전북 순창에서 그 같은 일이 벌어진 데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또 “누대로 전해져 내려온 문화유산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멀쩡한 자연암벽에 대형 서각을 새겨 넣는다는 구상이 어디서 나왔는지 통탄할 노릇”이라며 “그 어떤 명분으로도 자연암벽을 훼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급경사로 가파른 자연암벽에 서각을 새겨 넣기 위해 설치한 비계 등 구조물과 석공들의 작업과정에서 안전사고 위험도 문제가 되고 있다. 

순창 용궐산 암벽 파헤치고 새겨진 석각에 ‘등산객 분통’
용궐산 자연암벽에 새겨지는 대형 석각

지금도 용궐산 가파른 암벽에는 고사성어를 대형 석각을 새겨 넣기 위해 비계를 세워놓고 위태로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순창군은 용궐산 자연휴양림 조성은 산림청 허가를 받아 추진하는 사업으로 암벽에 새긴 대형 석각도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군 관계자는 “암벽에 새긴 석각은 추사 김정희, 한석봉, 안중근 등 명필의 글씨체로 새겨 넣어 옛 선인들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용궐산만의 색다른 관광자원을 갖추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며 “산림보호법을 위반하거나 관련 법률을 위반한 것도 없고, 군에서 절차에서 따라 산지전용허가를 받아 추진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자연암벽에 새겨진 석각을 보고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산을 오르면서 옛 성현들의 글귀를 보고 심신의 안정을 찾고 가르침을 얻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군의 해명은 외려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의 분노를 들쑤시는 형국이다. 

용궐산에서 만난 등산객들은 “아무리 뜻이 좋다고 해도 조선시대도, 공산국가도 아닌데 수천 년 세월을 이겨낸 자연암벽을 파헤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고, 이제라도 당장 암벽훼손을 멈추고 원상 복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한목소리로 순창군의 전근대적인 행정을 성토했다. 

섬진강을 끼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해발 646.7m의 용궐산은 용이 승천하는 형상으로 산 대부분이 거대한 암반으로 이뤄져 있고, 목재 데크로 만들어진 잔도 ‘하늘길’ 역시 용이 승천하는 모양을 갖추고 있다. 전남 영암의 월출산 못지않게 기운이 넘치고 기운이 넘치는 바위산으로 전국에서 등산객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jump022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