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키워드로 돌아보는 조승우의 ‘헤드윅’

기사승인 2021-08-20 07:00:23
- + 인쇄
[쿡리뷰] 키워드로 돌아보는 조승우의 ‘헤드윅’
뮤지컬 ‘헤드윅’의 주인공 헤드윅을 연기하는 배우 조승우.   쇼노트 제공.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시작부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난 13일 서울 퇴계로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조 언니’를 영접한 순간이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첫 곡을 마친 뒤 언니가 속삭였다.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다 얘기해. 언니가 박살내줄 테니까.”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고도 별 수 있냐는 듯 쓰게 웃는 조 언니를 보고 있으면, 세상 억울한 일은 모조리 다 일러바치고 싶어졌다. 조 언니가 누구냐면, ‘조드윅’ 언니, 그러니까 배우 조승우가 연기하는 뮤지컬 ‘헤드윅’의 주인공 헤드윅을 말한다.

‘헤드윅’은 동독 출신 트렌스젠더 록커 헤드윅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남성 신체를 타고난 그는 동성과 결혼하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받지만, 수술이 실패해 다리 사이에 ‘1인치 살덩이’가 남는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 가 토미 노시스라는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 헤드윅은 토미가 자신이 찾던 반쪽이라고 확신하지만, 토미는 헤드윅에게서 남성 신체의 흔적을 발견하고 달아난다.

배우의 성향과 해석에 따라 공연 내용이 달라지는 점이 ‘헤드윅’의 매력이다. 2005년 초연 이후 여섯 번째로 이 공연에 출연하는 조승우는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는 배우이면서도 연출자·작가의 시선으로 헤드윅을 빚어낸다. 한 번 보면 또 보고 싶은, 하지만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은 ‘조드윅’의 매력은 무엇인지 키워드로 짚어봤다.

[쿡리뷰] 키워드로 돌아보는 조승우의 ‘헤드윅’
‘헤드윅’ 공연 장면.   쇼노트 제공.
#노래 조승우가 공연을 열며 부르는 ‘인 유어 암스 투나잇’(In your arms tonight)은 오직 그의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노래다. 다른 배우들(오만석·이규형·고은성·뉴이스트 렌)은 부르지 않고, 심지어 1999년 발매된 오리지널 캐스팅 음반에도 빠졌다. 조승우는 공연 후반에도 이 곡을 짧게 선보인다. 헤드윅의 절규를 담은 노래 ‘익스퀴짓 콥스’(Exquisite Corpse) 뒷부분에 ‘인 유어 암스’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덧붙여 부른다. 달콤한 ‘인 유어 암스’와 목가적인 ‘어메이징 그레이스’, 그리고 전자기타의 굉음이 뒤섞인 불협화음은 헤드윅의 상처를 섬뜩하고 처절하게 보여준다. 헤드윅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들려주는 루 리드의 ‘워크 온 더 와일드 사이드’(walk on the wild side)와 데비 분의 ‘유 라잇 업 마이 라이프’(you light up my life) 역시 ‘조승우 한정’ 커버다.

#코로나19 ‘헤드윅’은 원래 록페스티벌에 가까운 공연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배우와 관객이 멀어졌다. ‘슈가 대디’(Sugar Daddy)를 부르며 객석에 올라서는 ‘카 워시’ 퍼포먼스와 땀에 젖은 손수건을 관객에게 넘기는 팬 서비스 모두 할 수 없게 됐다. 관객들도 박수 외의 호응은 금지된다. 대신 조승우의 수다거리는 더 늘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뭐 볼 게 있다고 이렇게 많이 왔어, 이 시국에”라며 새침을 떨고, 맥주 브랜드 ‘코로나 엑스트라’를 발견한 뒤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코로나…? (멀리 도망가더니) 무서워. 난 감염되지 않을 거야. 1차 백신도 맞았는데….” 공연 중반엔 양봉 모자를 쓴 채 나타나 “이거 쓰고 구사(KF94) 마스크도 쓰고 내려가려고 했는데 안 된대”라며 아쉬워하면서도 “여러분 건강이 제일 소중하니까. 그렇지?”라고 관객을 달랜다.

[쿡리뷰] 키워드로 돌아보는 조승우의 ‘헤드윅’
‘헤드윅’의 조승우.   쇼노트 제공.
#패러디 쉴 새 없이 터지는 패러디는 조승우표 유머를 이루는 축 가운데 하나다. 이번 공연에선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패러디한 ‘곰 내려온다’가 화제다. 어려서부터 자유의 땅 미국을 동경하던 헤드윅은 미군 루터를 만나 결혼한 뒤 미국으로 떠난다. 루터가 헤드윅을 유혹한 수단은 미제 젤리 ‘구미베어’. 루터가 흩뿌린 구미베어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순간 이츠학이 ‘범 내려온다’를 ‘곰 내려온다’로 개사해 노래하고, 조승우는 댄스팀 앰비규어스 컴퍼니가 만든 춤을 춘다. 이게 끝이 아니다. 루터의 청혼을 받아들일 땐 가수 휘성의 ‘결혼까지 생각했어’를 부른다. 휘성 성대모사는 덤이다. 조승우는 트렌드에도 민감하다. 5년 전 모피코트에 관해 고약한 농담을 던지던 그는, 이제 밍크 숄을 권하는 루터에게 “에라이~ 에코퍼로 다시 해!”라고 호통 친다.

#이츠학 조승우의 자유분방한 해석은 헤드윅과 이츠학의 관계 설정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이츠학은 유대인이고 드래그퀸(여장남자)이다. 그는 인종 청소를 피하려고 헤드윅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 왔다. 원작에서 헤드윅은 이츠학에게 위악을 떨면서 그가 여장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반면 조승우는 이츠학에게 내내 다정하다. 성소수자인 이츠학에게 ‘네 사정을 이해한다’고, ‘네 성 정체성을 억지로 바꿀 수 없음을 안다’고 말한다. 이츠학이 여장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그를 향한 연민과 퀴어라는 동질감에서 비롯한다. 조승우는 말한다. “(이츠학은) 나처럼 살면 안 돼. 나는 쟤를 아끼니까. 이렇게 사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잖아.” 원작은 헤드윅과 이츠학 사이의 갈등으로 긴장감을 유발하지만, 조승우는 동지애로 두 캐릭터를 뭉친다. 그 관계는 뜨겁고도 애달프다. 두 사람이 경계를 무너뜨리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재회해 포옹하는 장면에선, 보는 이의 가슴도 용기와 해방감이 요동쳐 뜨거워진다. 오는 10월31일까지 상연.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친절한 쿡기자 타이틀
모아타운 갈등을 바라보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둔 도시 정비 사업 중 하나인 ‘모아타운’을 두고, 서울 곳곳이 찬반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모아타운 선정지는 물론 일부 예상지는 주민 간, 원주민·외지인 간 갈등으로 동네가 두 쪽이 난 상황입니다. 지난 13일 찾은 모아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