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결혼해야만 가족?...동거·젠더 등 소외층 주거차별 여전

국민 10명 중 6명 사실혼‧비혼동거 찬성
주거지원 부재…성소수자 전월세 거주율 더 높아
생활동반자법, 다양한 가족 포용할 수 있어
전문가들 "가족 개념 분절화해야"

기사승인 2021-08-27 0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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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결혼해야만 가족?...동거·젠더 등 소외층 주거차별 여전
사진=안세지 기자
[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아이는 갖고 싶지만 결혼은 원치 않아”

영화 ‘매기스 플랜’의 주인공 매기(그레타 거윅)의 말이다. 그는 같은 학교를 졸업했고 수학을 잘했던 대학동창 가이(트레비스 핌멜)를 아이의 아빠로 낙점하고 정자를 기증받기로 한다. 정자를 기증하기로 한 날, 가이는 매기에게 꽃다발을 건내며 ‘전통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하지만 매기는 살균한 시험관에 정자를 담아줄 것을 부탁하며 이를 거절했다. 

매기의 이야기는 더 이상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 유형이 늘고 있다. 매기와 비슷한 예로 우리 사회에서는 최근 사유리로부터 촉발된 비혼 여성의 선택적 임신과 출산이 화제다. 그는 외국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 고향 일본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3인 생활동반자, 청년 동거커플, 노인 동거커플, 비혼 공동체, 성소수자 공동체, 미혼부모, 한부모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남녀혼인·혈연으로 맺어진 구성원만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기존의 가족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시기를 맞이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인식은 빠르게 수용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여성가족부가 전국의 만 19세 이상 79세 이하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10명 중 6명(61.0%)은 법령상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넓히는 데 찬성했다. 혼인·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10명 중 7명(69.7%)이 동의했다. 응답자의 70.5%가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 차별 폐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와 각 지자체의 지원은 부재하거나 부족한 실정이다. 소위 ‘정상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종 제도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2019년 ‘법이 호명하는 가족 규정을 확인한 연구’(김현경 외 3인)에 따르면 이들은 ‘주택법’,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등 주택정책에서 신혼부부 대상의 특별공급 요건, 세대의 정의, 부양가족 가산점에서 제외된다. 또 ‘주택임대차 보호법’상 임차인 사망 시 임차권 승계 권리에서 배제된다.

이들의 주거권은 열악한 상황이다.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의 ‘성소수자 주거실태 및 주거불안에 관한 연구 발표회’ 자료를 보면, 전국 2030세대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47%다. 반면 같은 연령대 성소수자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3분의 1도 되지 않는 13.4%에 불과했다. 거주 형태도 월세나 전세인 경우가 많았다. 청년세대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수도권 기준 성소수자는 같은 세대(12.7%)에 비해서도 본인 소유의 집에 사는 비율이 6.6%로 낮았다. 성소수자의 월세(53%)나 전세(37.4%) 거주율은 청년세대(각각 48.1%·34.1%)보다 높았다.

성소수자 A씨(30대)는 “결혼이 누구나 필수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모든 게 다 결혼에 맞춰지게 된다. 주택정책은 사실상 성소수자들은 물론 1인가구, 동거커플 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남들은 결혼을 하고 청약 넣고 하는데, 성소수자 1인가구인 저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B씨(30대)는 “과거 계약 진행 중에 계약서엔 남성으로 되어 있었지만 보이는 보습이 여성이라 집주인이 트랜스젠더라는 걸 알아차리고 계약이 파기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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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exels
“가족이란 누구인가?”

현재 학계에서는 가족다양화에 따른 법적 대응 방안 마련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그러한 요구에 가장 가까운 법안이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를 사회를 구성하는 법적 단위로 인정하자는 법이다. 

최근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가족, 결혼을 넘다’ 토론회를 개최한 용혜인 의원은 “지금의 복지제도는 청년대출, 신혼부부대출, 아동수당으로 삶의 코스를 정해두고 있는데, 특정한 생애 모델을 국가가 우대해선 안 된다”며 “혈연·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동성 커플, 동거하며 서로를 돌보는 노년층 등 모든 동반자 관계의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토론회에서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족 다양화를 위해 우선적으로 가족 개념을 ‘분절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인을 넘어선 개념으로 가족을 나누고 이를 지원하는 각종 법안 또한 세부적으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현행법상의 가족 개념은 헌법과 기본법, 민법, 사회보장법의 영역에 걸쳐 강하게 결부돼 작동하고 있다”며 “법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동성커플의 결합이나 사실혼은 법의 보호범위 밖에 놓이게 된다. 헌법상의 혼인 개념은 혼인에 대한 법제의 규율보다 더 상위에서 기능하면서 헌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혼인의 실체적 기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다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지역사회에서 독립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때 ‘나는 위기 상황에서 누구에게 의존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가족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만난다”면서 “연락을 안 하고 살다시피 하는 원가족은 혈연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위기상황에서 당사자에 대한 선택권이 있는데, 그러한 선택은 당사자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고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친구나 지인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활동반자법은 그러한 선택이 가능한 범위를 현재보다 한 단계 넓혀나가는 법”이라”며 “생애과정 속에서 가족을 포함한 모든 관계들은 모두 변화하며,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삶은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복잡하게 존재한다. 기존 결혼제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다양한 결정권을 한 사람과의 관계에 모두 담을 때 생기는 불안정성과 불평등한 관계 위에 생활동반자가 지정될 경우 생기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함께 더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고 질문을 던졌다.

asj0525@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