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신호’ 보내는 사람들…생명 지킬 수 있었다 

[자살예방의날④] 자살사망자 대부분 '신호' 보내지만 인지 비율 낮아

기사승인 2021-09-10 06: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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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0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한국에서 연간 극단적 선택 사망자 수는 1만3799명으로, 하루에 37.8명꼴이다. 우려되는 점은 젊은층에서의 자살 시도와 자살 사망자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30대에게 집중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안 요인,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 9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국내 실태를 분석하고 청춘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짚어본다. 

‘경고신호’ 보내는 사람들…생명 지킬 수 있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제공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국내 10~30대 사망원인의 1위는 자살이다. 하지만 ‘젊다’는 이유만으로 청년층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다. 젊은 날의 진통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문화적 특성 때문에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살 예방을 위해선 당사자 본인의 직접적인 표현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조언이 자살 위기를 해결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한다. 젊은 세대의 고충을 당연하게 여기기보다는 자살 위기 신호를 감지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가족‧대인관계, 정신건강 문제 경험…악순환 반복하기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재단)이 2015~2019년 심리부검면담 참여자 총 566명 중 20~30대 215명 전수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사망의 주원인과 별개로 다수의 스트레스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 당시 스트레스 경험 현황(중복응답)을 보면, 가족문제 66.0%, 정신건강(수면) 62.8%, 직업문제 59.5%, 경제문제 54.4% 등으로 나타났고, 특히 20대의 경우 학업관련, 대인관계, 연애관계, 가족관계와 관련한 스트레스의비울이 두드러졌다. 30대는 경제문제를 경험하는 비율이 두드러졌다.

정신건강문제 치료력에 있어서는 20‧30대 절반 이상이 치료 및 상담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고, 특히 20대에서 정신건강문제로 치료 상담을 받은 비율이 다소 두드러졌다.  

또 이러한 문제들이 악순환되고 반복되면서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 일례로 K씨(남, 20대)는 초등학교, 중학교 재학 시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자주 전학을 가야 했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데에 매번 어려움이 있었으며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부터 K씨는 우울감, 무기력감, 불면 등 우울 관련 증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원하던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어려움이 반복됐다. 대학교 동아리 모임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게 됐지만 K씨의 지나치게 의존적인 행동으로 인해 이별을 통보받았다.

K씨는 관계 회복을 위해 수차례 여자친구를 설득했으나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개선되지 못했다. 이후 K씨는 학교 수업에 출석하지 않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으며 가족들에게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이에 가족들이 K씨를 위로하며 다양한 활동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격려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밤에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깨는 일이 빈번했으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체중이 급격히 감소했다. 우울감, 무기력감, 불면, 식욕 및 체중 저하 등 우울 증상이 점차 악화되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B씨(30대, 여)는 대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많은 스트레스로 포기를 고민할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시험에 합격해 발령을 받게 됐다. 초반에는 잘 적응하며 직장 내 대인관계 역시 무난한 편이었지만 1년 후 민원업무 담당 부서로 인사발령을 받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기존에 하던 업무가 아닌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서 업무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게다가 업무성과를 내지 못하자 동료들과 상사들이 업무를 대신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해 주변의 비난을 받게 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휴일에도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업무부담으로 개인의 생활 유지가 어려워지자 극도의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밤에 잠을 못 자고, 식사를 하지 못해 체중이 5kg 정도 빠졌다. 사망 일주일 전에는 친한 동료에게 ‘일을 그만둘까? 학자금 대출이랑 취업준비하며 생활비로 카드값이 있어서 힘든데.’, ‘내가 없어져야 하나’, ‘내일이 희망이 없는 것 같다.’라는 고민을 토로했던 B씨는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극단 시도 전 경고신호 보내…감정‧수면상태 변화

이와 함께 재단은 자살 전 ‘경고신호’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2016~2019년 시행된 심리부검 면담 사례 총 445명 자살사망자의 자료를 분석했는데, 이중 93.7%(417명)에서 경고신호가 있었던 것 파악됐다. 20‧30연령대는 172명 중 162명(94.2%)에서 경고신호가 있었다. 

특히 2030의 자살경고 신호는 감정변화(113명), 수면상태변화(105명), 무기력, 대인기피, 흥미상실(94명) 순으로 정서적 경고신호가 빈번했다. 

자살 전 경고신호란, 자살사망자가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나 자살할 의도가 있음을 드러내는 징후를 의미하는 것으로, 언어적·행동적·정서적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자살시도자의 대부분이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시도 전 도움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인들이 ‘경고신호’를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보건복지부와 재단이 ‘2020년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수행병원에 내원한 자살시도자 총 2만2572명의 실태를 분석한 결과, 자살시도자의 절반가량(49.2%)은 음주 상태였고, 자살시도자 90.2%는 충동적으로 극단적 시도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위기상황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죽음을 생각하지만, 자살 시도를 통해 주변에 구조의 신호를 알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생명지킴이 교육으로 주변인 도울 수 있어 

하지만 주변인이 자살사망자의 경고신호를 인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최근 5년간(2015~2019) 자살사망자(566명)의 유족(683명)에 대한 심리 부검 면담을 시행한 결과, 자살사망자 중 529명(93.5%)이 사망 전 경고신호(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주변 정리, 수면 상태 변화 등)를 보였으나, 이를 주변인이 인지한 경우는 119명(2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위험에 처한 주변인의 ‘신호’를 잘 모르겠다면 자살예방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는 것이 도움 될 수 있다. 생명지킴이는 자살위기자를 식별하는 지식, 태도와 기술을 습득해 자살에 대한 위험 수준을 판단하고, 자살의 위험에 처한 주변 사람을 적절한 서비스에 연결해주는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훈련을 통한 지식 향상과 인식의 변화가 실제 행동 변화에 영향을 미쳐,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있다. 

황태연 재단 이사장은 “재단에서는 2013년부터 생명지킴이 교육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자살 위험에 처한 분들을 발견하는데 있어 중요한 교육”이라며 “연령별로 보이는 자살 위험신호의 특성을 반영해 청소년, 대학생, 청년, 중장년, 노년층 등으로 구분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누구나 들을 수 있다”고 밝혔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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