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색 규제③] 중국 ‘게임 때리기’, 韓 시장도 멍들까

문대찬 / 기사승인 : 2021-09-09 06:00:28
- + 인쇄

그래픽=강한결 기자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중국의 강화된 게임 규제가 업계를 넘어 e스포츠판 까지 뒤흔드는 모양새다. 중국 업계가 활로 모색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면 한국 시장도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30일 중국 게임 산업을 총괄하는 국가신문출판서는 18세 미만 청소년들의 온라인 게임 허용시간을 주말(금·토·일)과 공휴일 밤 8~9시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주중에 하루 1.5시간, 주말 3시간까지 게임 접속을 허용한 기존 규제보다 강도가 높아졌다.

국가신문출판서는 “온라인게임 산업이 최근 몇 년간 빠르게 발전하면서 미성년자가 게임에 빠져들고 광범위한 사회 문제가 돼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다”면서 “게임중독으로 학습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생활과 사회, 심지어는 일련의 심신 건강 문제를 초래하게 됐다”고 규제 배경을 밝혔다.
중국 게임 해외 매출 성장 추이.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 중국, 잘 나가는 게임 시장 왜 건드렸나?

중국 게임이 세계 게임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시장조사업체 뉴주와 감마데이터의 자료를 인용한 수치를 보면, 2020년 주요 5개국(미국·일본·한국·영국·독일)의 모바일 게임 시장 매출 상위 100개 게임 중 25개 게임이 중국 게임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세도 눈에 띈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한 결과, 2014년 이후 해외 매출 규모가 5배나 뛰어올랐다.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4년 30억7600만원이었던 중국 게임 해외 매출은 2020년 총 154억5000만달러(약 17조원)까지 상승했다. 한때 유명 게임을 모방하기만 급급해 ‘짝퉁’으로 악명이 높았던 중국 게임이지만, 질적 수준이 점차 높아지면서 게이머들의 선호를 받고 있다. 

일각에선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게임 때리기’에 들어간 것은 빅테크를 위시한 기술 기업과 사교육, 연예계까지 정화에 나서는 이른바 ‘홍색 규제’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중국 정부의 (게임) 통제는 중국 시진핑의 집권 3기 전략, ‘중국몽’의 완성이라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며 “게임도 하나의 SNS이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사상통제의 일환으로서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 교수는 이번 규제가 청소년 게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을 짚으면서 “이번 통제는 장기 집권 과정에서 필수적인 ‘인민의 지지 확보’라는 측면도 강하다”며 “교육에 민감한 학부모의 지지 획득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교육 단속, 청소년 게임 시간 통제 등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 중국 e스포츠판도 타격… 선수 육성에 빨간불

규제 발표로 텐센트‧넷이즈 등 주요 중국 내 주요 게임사가 휘청거린 가운데, 중국 내 e스포츠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특히 청소년들로 구성된 유망주 육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LoL e스포츠 2부 리그인 LDL은 지난 2일 선수 출전 연령을 조정했다. 이에 따라 당장 열리는 서머 플레이오프(PO) 4강전부터 만 18세 미만 선수 출전이 금지됐다. PO에 진출한 징동 게이밍(조이드림)과 TES(TES.C) 2군 로스터에서 미성년자 선수들이 제외됐고, 1부 리그 LPL 소속 OMG 역시 미성년자 선수를 로스터에서 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평균 활동 수명이 2~3년에 불과한 프로게이머는 대부분 21~22세 즈음 전성기를 맞는다.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17~18세 때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무대가 사라지는 건 치명적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매일 8~11시간 이상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기량을 끌어올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내 유망주들의 경쟁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 내 LoL e스포츠 리그는 세계 최정상 수준으로 꼽힌다. 과거엔 한국 등 외국 선수들을 영입하며 팀 전력을 강화시켰지만, 최근엔 유망주 발굴에 힘쓰며 ‘순혈’ 팀 구성에 힘썼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규제로 인해 판을 새로 짜야 될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중국 게임사 미호요가 개발한 글로벌 히트작 '원신'.   미호요 제공


◇ 해외로 눈 돌리는 중국 업계, 한국 시장 어쩌나

당국의 규제를 받는 중국 업계가 활로 모색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한국 시장이 받는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위 교수는 중국 업계가 일인당 결제액(ARPU)이 높은 한국 시장을 집중 공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한국 게임 시장 상위권은 상당수의 중국 게임이 차지하고 있다. 8일 구글 플레이 기준 매출 순위 10개 게임 중 3개 게임이 중국산 게임이다. 중국 미호요의 ‘원신’이 2위, 4399 코리아의 ‘기적의 검’이 6위, 37게임즈의 ‘히어로즈 테일즈’가 7위에 자리하고 있다.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 부어 만든 질 높은 중국 게임에 밀려, 한국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위 교수는 “한국 게임이 나갈 만한 글로벌 시장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중국 게임의 글로벌 증가는 한국 게임을 더욱 압박할 것이다. 여기서 공격적으로 신규IP를 만들지 않는다면 한국 게임의 글로벌 입지는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규제로 인해 한국 게임의 중국 내 입지도 더욱 좁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게임 규제 소식이 나온 뒤, 국내 게임사 크래프톤과 펄어비스의 주가는 3% 넘게 하락했다. 두 게임사는 각각 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하거나 서비스 예정 중에 있다. 

특히 판호(허가증) 발급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게임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상황에서 한국 게임이 판호를 얻기란 바늘구멍을 뚫기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화되면 판호 획득이 지금보다 더욱 어려워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이번 규제는 여러모로 국내 게임사에 악재”라고 평가했다. 

올해 중국으로 건너가 스프링 시즌 신인왕, MVP를 독식한 '바이퍼' 박도현.   LPL 제공

◇ 유망주 다 빼갈라… 한국 게임단도 경계

국내 e스포츠 게임단도 중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 e스포츠 시장이 커지면서 한국 시장은 이미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 중이다. 중국 자본에 이끌린 국내의 우수한 선수들이 대륙으로 건너가 중국 리그의 주축으로 뛰고 있다. LoL e스포츠의 경우 ‘월드챔피언십’에서 2013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팀이 5번, 중국 팀이 2번의 우승을 차지했는데 우승한 중국 2개 팀 모두 한국 선수를 보유했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단 관계자는 과거 “중국의 손이 크다보니 이름값이 높지 않은 선수라도 요즘엔 선수들의 몸값이 기본 두 자릿수”라며 “유망주들도 다 긁어가 씨가 말랐다. 육성군에서 훈련을 받다가도 중국에서 제의를 받았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한다”고 털어놨다.

업계는 이번 규제로 중국 내 유망주들이 경기에 뛸 기회를 박탈당하면서, 중국 게임단이 한국 내 우수한 인재들에게 더욱 눈독을 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18세 미만 한국 유망주들에게도 중국 내 규제가 적용될지는 아직 모르겠다”면서도 “유망주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완성형에 가깝게 성장한 선수들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관계자는 “스토브리그가 아직 시작되지 않아서 섣불리 예단하긴 힘들다”면서도 “한국 게임단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