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노동자 건강·안전 보장할 수 있을까

5~49인 사업장 시행 3년 유예,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아쉬워
규정 모호해 해석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기사승인 2021-09-18 06:00:16
- + 인쇄
중대재해처벌법, 노동자 건강·안전 보장할 수 있을까
사진=이소연 기자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이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중대재해처벌법은 태안화력발전소 압사 사고,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사고와 같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및 4·16 세월호 사건과 같은 시민재해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등에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을 처벌하기 위해 제정됐다.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전에 국내 산재사고에 대해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통해 처벌·관리했다. 하지만 모든 중대 재해 발생에 대해 처벌하지 않았다. 안전·보건 조치를 위반해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에만 처벌하고, 대부분 안전담당 임원이나 현장소장, 공장장 등이 처벌되는 경우가 많았다. 처벌 수준도 사망 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으로 규정되고 있지만, 양형기준에는 최대 5년형까지만 규정돼 있다. 이 양형기준도 올해 7월 산안법 위반 범죄에 대해 기존 3년6개월에서 상향한 것이다.

이러한 법률이 있음에도 법적 책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법원 및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2020년 동안 산재로 사망한 사람은 1만1766명, 총 재해자 수는 59만559명이었다. 같은 기간 산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5114건 중 벌금형은 3176건, 집행유예 728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는 29건에 불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더라도 소규모 사업장은 적용되지 않는다.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선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5인 미만의 경우 법 적용을 하지 않기로 해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 산업재해 사망 통계를 보면 5~49인 사업장에서의 산재 사망이 45.6%로 가장 많이 발생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35.4%로 50인 미만 사업장의 비중이 81.0%나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관리 능력 부족 등으로 유예기간을 부여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유예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은 적용되기 때문에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안법은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을 때 보호받을 수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업주가 고용한 근로자가 타인의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경우나 하청 업체는 책임이 면책돼왔다.

정부는 지난 7월23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해당 시행령을 두고 시민단체는 법의 입법 취지를 후퇴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지현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법은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 그걸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압도적인 시민들의 지지로 만들어진 법”이라며 “시행령에서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과도히 축소하고, 2인 1조 작업과 같이 재해 예방에 필요한 적정인력과 예산 확보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또 안전보건관리 외주화의 길을 열어둔 것도 경영책임자의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직업성 암 등도 중대재해법상 직업성 질병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지만, 제외됐다.

이 국장은 “정부가 제대로 된 시행령으로 일터에서 더 이상 죽지 않고 안전히 일할 권리를 보장해줄 것을 촉구한다”며 “시행령 개정과정을 지켜보면서 법이 제대로 역할할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경영계도 시행령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23일 26개 경제단체와 공동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한 경제계 공동건의서를 관계부처에 제출했다. 이들은 “이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경우 많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사업장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한 경영책임자가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행령을 보완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산업현장의 준비 기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50인 이상 사업장은 내년 1월부터 즉시 의무준수를 강제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며 기업 규모별로 유예기간을 두는 특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의 규정이 모호해 해석이 불분명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자권리연구소상임연구위원인 박다혜 변호사는 “기존 법리와 관련해 노동법의 해석에 비추어 예상하고 있지만, 실제 법원에서 사건화됐을 때 어떻게 판단할지 축적돼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특별법도 아니고 우선 적용한다는 규정도 없다. 지금처럼 산안법 위반과 함께 법 적용이 가능한 구조다. 또 누가 수사의 주체가 될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판례가 나와봐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nswrea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친절한 쿡기자 타이틀
모아타운 갈등을 바라보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둔 도시 정비 사업 중 하나인 ‘모아타운’을 두고, 서울 곳곳이 찬반 문제로 떠들썩합니다. 모아타운 선정지는 물론 일부 예상지는 주민 간, 원주민·외지인 간 갈등으로 동네가 두 쪽이 난 상황입니다. 지난 13일 찾은 모아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