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명 바꾸면 편견 사라질까… ‘치매’ 병명 개정 추진

앞서 조현병·뇌전증 등 사례 있어

기사승인 2021-10-14 03: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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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명 바꾸면 편견 사라질까… ‘치매’ 병명 개정 추진
사진=픽사베이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질병명이 주는 사회적 낙인효과를 줄이기 위해 병명 개정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조현병(구 정신분열병), 뇌전증(구 간질)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치매를 두고 이러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치매’를 ‘인지흐림증’으로 병명을 개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치매 이름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편견을 유발하는 만큼 이른바 낙인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치매(癡呆)의 병명은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병명은 라틴어가 어원인 디멘시아(Dementia)를 일본어식으로 번역한 것에서 유래됐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치매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인 인식을 고려해 병명을 ‘인지증(認知症)’으로 변경했다.

사회적 낙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병명을 변경한 사례는 수차례 있다.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이상을 일으켜 과도한 흥분상태를 유발해 의식소실·발작·행동 변화 등과 같은 뇌 기능의 일시적 마비 증상이 만성적,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뇌 질환인 ‘뇌전증’은 ‘간질’이라는 병명으로 불렸다. 대한뇌전증학회는 ‘간질’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기 위해 2007년 ‘Epilepy 개명 프로젝트’를 제안한 이후 2012년 ‘뇌전증 선포식’을 통해 개명을 선포했다.

또 2007년부터 대한조현병학회(구 대한정신분열병학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정신분열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없애기 위해 병명을 ‘조현병’으로 변경하고자 했다. 병명에 따른 편견과 낙인이 병원을 찾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조현(調絃)병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을 지녔다. 치료를 통해 조화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만, 기대와 달리 병명 변경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기도 했다. 대한뇌전증학회가 병명을 바꾼 지 6년째 되는 2018년 ‘뇌전증 병명 인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뇌전증’이라는 병명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36%, 어떤 병인지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0%에 불과했다. 또 20% 가운데서 22%만이 뇌전증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2021년 현재도 포털사이트나 기사에서 뇌전증과 ‘간질’을 혼용해 사용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치매 병명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이 참모들과의 티타임에서 “이제 ‘치매’라는 용어를 새롭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수석은 이날 페이스북에 ‘브리핑에 없는 대통령 이야기’ 17번째 글을 통해, 문 대통령이 임기 초부터 역점을 둬온 ‘치매 국가책임제’의 성과 등을 거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국회에는 두 건의 치매병명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6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지저하증’으로, 이달 1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인지흐림증’으로 병명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인지저하증은 지난 6월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대국민 치매 병명 인식 조사’에서도 ‘치매 대체 병명’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조사에서 국민 44%는 치매 병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치매’라는 용어를 변경해야 한다는 비율은 21.5%에 불과했다. ‘그래도 유지하든지 바꾸든지 무방하다’가 45%, ‘유지해야 한다’ 27.7% 순이었다.

병명을 변경함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건우 대한치매학회 이사장(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은 이달 1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의 지시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의해 병명을 변경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이 ‘치매’라는 병명을 바꾸라고 미션을 줬다. 하지만 대통령 지시에 의해 병명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면서도 “필요성은 있다. 중앙치매센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80% 이상이 치매 이름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절반 정도가 ‘그럴 필요 없다’고 답했다. 치매라는 병명을 바꾸려면 사회적 비용 부담이 적지 않고,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에 병명을 바꾸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바뀌었으면 좋겠다”면서 “국회에서는 치매 병명을 바꾸는 법안을 발의 준비 중인데 의학계에서도 병명을 바꾸는 방식들이 존재하니 그런 것들이 같이 지켜지면서 (병명을) 순화시켜야 한다. 당장 ‘이거다’라고 하는 건 성급하다. 의견을 묻고 검토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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