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 과학수사의 날…한 검시조사관의 이야기

강원경찰청 광역과학수사3팀 이숙 검시조사관 인터뷰

입력 2021-11-04 11: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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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 과학수사의 날…한 검시조사관의 이야기
강원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검시팀 광역과학수사3팀의 단체 기념촬영 모습. 오른쪽부터 팀장 신현진, 이병주, 김수연, 이숙, 손동국, 전명호 과학수사 요원.

[원주=쿠키뉴스] 박하림 기자 =“발로 뛰며 범인을 검거하는 형사와 달리, 범인이 남긴 흔적을 통해 추적한다.” 

이것이 과학수사대 요원들의 사명이다.

억울한 죽음이 주변의 무관심과 방관으로 인해 묻히는 경우가 없도록, 과학수사대 요원들은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날마다 동분서주 한다. 

유족에게 작은 위로를 전하며 느껴지는 보람이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

4일 제73주년 과학수사의 날을 맞아, 음지에서 묵묵히 불철주야 본인들의 업무를 감내하고 있는 ‘과학수사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강원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검시팀(광역과학수사3팀 원주권) 이숙 검시조사관과 일문일답.

‘과학수사의 날’이 생소하다. 소속 소개도 부탁한다.

경찰청에서 1948년 내무부 치안국에 ‘감식과’를 신설하면서 매년 11월4일을 과학수사의 날로 지정했다. 유공자 포상 및 축하 행사 등으로 과학수사인들의 노고와 업적을 격려하고, 과학수사 발전에 이바지한 분들에게 표창 등을 수여하고 격려하는 날이다.

현재 강원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광역과학수사3팀(원주권역)에서 근무하고 있다. 과학수사계장님과 검시팀장님 이하 전문적인 과학수사관(요원)들과 검시조사관 분들이 있다. 현재 광역과학수사팀으로 권역별로 근무하며 최대한 신속하게 현장 대응을 하고 있다. 저희 팀은 팀장 신현진 경위 이하 8명의 과학수사관과, 2명의 검시조사관이 함께 일하고 있다. 

검시조사관의 역할은.

2005년 경찰청에서 처음으로 선발하기 시작했다. 사망사건 현장에서 조금 더 전문성을 갖고 있는 요원들을 투입해서 사망의 종류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전문경력직으로 채용된다.

검시조사관은 변사자의 검시에 대한 업무를 맡고 있다. 사망사건이 접수되면 과학수사관(요원)들과 함께 현장에 가서 변사자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고, 주변 상황을 관찰하며 유족이나 발견자 이야기도 듣는다.

사망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종합해 사망의 종류나 원인에 있어서 범죄의 혐의점은 없는지 최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한다. 형사들에게 정보제공을 하고 필요할 경우 국과수에 가서 부검에 참관해 사인의 실체를 밝히는 일을 한다.


[기획 인터뷰] 과학수사의 날…한 검시조사관의 이야기
강원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검시팀(광역과학수사3팀 원주권) 이숙 검시조사관.

검시조사관을 시작한 계기는.

첫 직장은 강원대학교 병원 내 ‘여성학교폭력원스톱지원센터’였다. 현재 해바라기 아동센터로 통합된 곳이다. 당시 초창기 센터 개원 멤버로서 가정폭력, 학교폭력 피해 여성들을 상담하는 업무를 맡았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피해 여성들과 어린 자녀들이 이곳을 방문했는데, ‘이런 피해자분들이 폭력의 희생양이 되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강력 사건이나 죽음에 대해 고찰하게 됐다. 때마침 같이 근무하던 여경분이 경찰청에서 검시관(그때 당시)을 채용하는데 한번 도전해 보라고 권유를 해줘 여기까지 오게 됐다.

현장에 나가 모든 것을 살핀다고 했는데, 살인사건 같은 현장은 위험하지는 않은가.

살인사건 같은 경우, 오히려 피살된 희생자가 현장에 있고 대개 피의자는 도주하거나 자백을 통해서 형사들이 체포해 가니까 그리 위험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강원도나 도농형태의 지역에서는 변사자 발견 장소가 높은 산, 강물,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아파트 고층, 원룸, 개천가, 숲속, 광산, 갈대밭 등등 다양하기에 현장 애로 사항이 많다.

높은 산에서 발견된 변사자들은 이미 사망이 확인되면 구조대가 헬기 등으로 구조하는 것이 아니기에 병원으로 운구하는 일은 오로지 형사들과 과학수사관들의 몫이 된다. 시체포 등을 들고 산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길이 나 있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 경우, 앞서는 요원이 나뭇가지를 쳐내면서 길을 만들어 내려오기도 한다. 그 과정 중 미끄러지거나 굴러 넘어져 디스크가 파열된 동료도 있었다.

하루는 동생을 살해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피의자가 머물던 옛날 가옥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피의자가 현장 문지방 위에 큰 배터리와 전선을 이용한 폭발 물체를 만들어 놓고 방안에 온통 시너를 뿌린 채 만취되어 잠이든 상황이었다. 동료 요원이 현장 진입을 하다 폭발 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는데 파편이 수백 개가 몸에 박혀 수술했고, 4~5년이 지난 현재도 몸에서 파편 부스러기가 나온다고 한다.

광산도 들어가 보고, 불꽃이 아직 남아있는 건물에도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형사와 검시조사관, 과학수사관들 모두 현장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기획 인터뷰] 과학수사의 날…한 검시조사관의 이야기
강원지방경찰청 광역과학수사3팀 신현진 팀장(왼쪽부터)과 김수연 과학수사관이 현장 증거물 지문감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변사자 유족 인명구조상과 모범경찰관 표창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안전과 도정발전 유공으로 도지사 표창까지 받은 걸로 알고 있다. 검시조사관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가.
   
아니다. 검시조사관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이다.

살인사건을 제외하고, 유족이 가장 큰 충격을 받거나 슬퍼하는 순간은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모습을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하루는 아파트 고층에서 중년의 여자 분이 나체 상태로 추락해 사망한 현장에 나간 적이 있었다. 몇 십 분이 지나자 택시에서 내려서 황급히 뛰어오시는 할머니를 보게 됐는데 딱 봐도 변사자의 어머니 같았다. 그때부터 이 변사자를 어떻게 보여드려야 하나 고민하면서 어머니가 딸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 분의 호흡이 가빠지고 계시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분이 시체포에서 나오는 혈흔을 보더니 충격을 받아 인도에서 차도로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 그 분께 바로 달려갔다. 

과도한 호흡으로 인해서 산소가 너무 많이 들어가고 이산화탄소 부족 현상으로 전신에 마비가 오고 있었다. 그땐 자신의 호흡에서 뱉어낸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입하게 해줘야 한다. 급한대로 주변에 있던 한 아주머니로부터 빵 봉지를 구했고 코와 입에 씌웠다.

구조대원의 이송으로 병원에서도 치료를 이어가며 다행히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이런 일들이 현장에서 종종 일어난다. 유족들이 대부분 과호흡이나 호흡장애로 쓰러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2차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현장 검시와 더불어 주변 유족들을 많이 살피게 된다.

업무를 하면서 정신적 또는 신체적인 트라우마를 갖게 되진 않은가.

얼마 전 업무상 큰 부상을 입었다. 지금 고관절과 대퇴부가 내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세라믹관절과 무쇠 철이 대신하고 있다. 

몇 년 전 원룸에 혼자 살고 있던 젊은 미혼 남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졌고, 따뜻한 날시 탓에 부패가 상당 진행된 상태였다.

때마침 해당 남성의 어머니가 도착해 현관 입구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아들(해당 남성)의 마지막 모습이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변사체를 뒤에서 안고 들었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사색이 되어 쓰러지고, 형사들은 119를 불러 어머니를 부축했다.

저는 여전히 두 팔로 해당 남성을 안고 있었는데, 이분의 부패가 심하게 진행되다 보니 미끄러운 체액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제 다리가 양쪽으로 다리 찢기 하듯이 갈라졌다.

단순한 염좌나 타박상인 줄로만 알았지만, 한 달이 지나 다리 통증이 더 심해져 지팡이를 짚고 다녔고 결국 지팡이 두 개에 의존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면서 보행해야 할 정도였다.

병원에서 MRI 촬영한 결과, 의료진으로부터 양쪽 고관절 괴사 판정을 받았다. 2년에 걸쳐 한쪽 다리씩 수술을 했다. 허벅지 옆을 50cm 정도 절개하고 고관절과 뼈를 잘라내서 제거하고 인공물로 대체 하는 수술이었다.

그때 일로 일부는 공상 처리가 됐지만, 아직 인정받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3년째 관련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인사혁신처나, 법원,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등 국가기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만이라도 사실 확인이 되면 저희들의 손을 들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기획 인터뷰] 과학수사의 날…한 검시조사관의 이야기
이숙 검시조사관이 혈흔채취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일을 하면서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사건 해결에 기여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또한 중요한 범죄(살인, 강도, 방화, 절도 등의 강력사건) 현장에 지방청 과학수사계 전문 요원들과 저희 팀원들이 함께 협업해 큰 사건을 잘 해결했을 때도 매우 뿌듯하다.

저희 관할지역이 사건 사고가 조금 많은 편이지만, 광역과학수사3팀 요원들이 불철주야 현장과 실험실에서 단서가 되는 증거를 최대한 찾아내고 있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팀으로 인정받고 있고 베스트 과학수사관에도 선발됐을 때 정말 기뻤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장 피해자나 유족 분들께서 저희에게 감사 또는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실 때 가장 보람 있는 것 같다. 시민들이 저희를 믿어주시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보람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계획이나, 혹은 국민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국의 경찰, 과학수사는 매우 훌륭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을 인정받고 있기에 믿고 안심하셔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OECD 가입 국가 중 최고 자살률을 기록하는 오명을 수년째 지속하고 있다. 슬픔과 애도의 시간이 가면 중요한 것은 자살한 변사자의 유족들이다. 경제력이 없는 노부모나 배우자, 또는 어린 자녀들이 남아있을 수 있다. 

범죄피해자 지원을 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실 수 있지만, 자살 사건의 유족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있다는 것은 많은 분들께서 모르고 계실 것 같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있다면 학비를 지원해 주거나, 주거지 내에서 자살 발생 시에는 가구당 최대 200만원까지 지원하고 유족의 정신건강을 위한 치료비도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살예방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범 사업이다. 

범죄피해자, 자살유가족들도 정부 정책이나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제공해 드리려고 한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든 검시조사관과 과학수사요원들이 여러분 옆에 함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기존 이런 일을 겪으신 분들이 있다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면밀한 현장감식과 법의학적 전문가로서 더욱 노력해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hrp118@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