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새 시대, 새 정부 출범이 계기돼야 [기고]

정진석 국회부의장

입력 2021-11-19 23: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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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새 시대, 새 정부 출범이 계기돼야 [기고]
정진석 국회부의장
임진왜란 이후 200년간 에도 막부 시대의 일본인들은 조선통신사에게서 문화의 향기를 느꼈습니다.

묵향(墨香)이 묻은 글귀 하나라도 받아가려는 일본 백성들로 조선통신사 숙소는 밤새 북새통을 이뤘다고 합니다.

“오사카는 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아 새벽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1716년, 신유한)

조선통신사는 일본인들의 윤기나는 살림살이에 놀랐습니다.

교토에서 도쿄를 잇는 500키로미터의 대로에는 사람과 물자가 넘쳐났고, 통신사를 보러 몰려든 어른 아이 모두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했던 야만스러운 왜인들이 벌을 받기는 커녕 잘 사는 모습에 배가 아플 지경’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4박5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오늘(19일) 사실상 공식 일정이 끝납니다.

일본 의회측 사람들이나, 교민들이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관계가 최악’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의 반일 감정, 일본의 혐한 감정이 충돌하는 지점은 정부 대 정부일 뿐입니다.

정작 대다수 양국 국민들은 서로를 원수처럼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극단적인 세력들이 각각 정부의 입장에 동조할 뿐입니다. 대다수 양국 국민들은 두 나라가 선린우호 관계를 이어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독일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을 치렀습니다. 수천만 명의 소련 독일 군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두 나라가 국교를 정상화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대한민국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에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원한이 더 사무쳤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저의 정치적 스승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만난을 무릅쓰고 한일 국교 정상화를 이뤄냈습니다. 김 총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과거의 원한에 더 이상 발목 잡혀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난 지 80년, 한일 국교 정상화한 지 60년이 다 되어 갑니다. 더 이상 친일이냐 반일이냐, 단순한 이분법으로 국민들을 호도해서는 안됩니다. ‘반일(反日)의 깃발만 치켜 들면 손해 볼 것 없다’는 정략적 접근 이제 접어야 합니다.
 
한일 양국관계를 다루는 해법과 시야가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 시즈오카에서 만난 호소노 고우시 중의원 의원은 “일본 정부는 한국의 새 정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각부 장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자민당의 신예입니다.
 
새 정부 출범이 한일 관계 진전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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