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쟁이 사교육에 매월 수십만원…학습 아닌 놀이라고?[놀이터통신]

임지혜 / 기사승인 : 2021-11-29 0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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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방문 학습 '인기'…3~6개월 대기도
사걱세 선임연구원 "놀이 아닌 사실상 학습"

영유아 사교육.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생후 11개월 자녀를 둔 김모씨(33)는 최근 미술 방문수업, 이른바 '홈문센(집에서 하는 문화센터)'을 시작했다. 주1회 수업에 월 10만원(재료비 별도)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김씨는 "집에서 하루종일 뭐 하고 놀아줄지 고민이었는데 수업하고 나면 아이도 즐거워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생후 13개월 자녀를 둔 이모씨(32)는 최근 주 1회 수업에 월 17만원인 체육 방문수업을 시작했다. 이씨는 "코로나19로 아이가 외부 수업을 못해 아쉬웠는데 집에서 체육 수업을 하니 재미있고 안심도 된다"고 했다. 

◇0세부터 사교육…"자리 없어 못할 정도로 인기"

유아 사교육 시장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아이 수는 줄고 있지만 영유아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영유아 사교육 시장 규모가 연간 3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수행한 2017년 연구에서 영유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추정비용은 11만 6000원, 연간 총액은 약 3조 7397억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1조3809억원)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늘었다. 

많은 엄마들이 생후 6개월부터 오감발달 교육을 시작으로 사교육에 발을 들인다. 상당수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달하는 전집과 음원을 구입하다 점차 그 영역을 넓힌다. 블록을 이용해 수학을 공부하거나 한글 또는 영어로 음악 수업을 하며 언어를 익힌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미술을, 건강과 재미를 위한 체육 수업을 사교육의 도움으로 진행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염 우려로 인해 기관 이용이 줄어들면서 교사가 가정에 방문해 일대일로 수업하는 업체가 큰 인기다. 영유아 부모들 사이에서 필수코스로 여겨졌던 '문화센터' 수업도 이젠 가정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로 바뀌었을 정도다. 엄마들에 따르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한 방문미술 업체의 경우 수업을 듣기 위해선 3~6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고. 

일단 부모들의 만족도는 높아 보인다. 대체로 교육이 아닌 '놀이'이기 때문에 아이의 발달과정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만 2세 자녀를 둔 유모씨(35)씨는 일주일에 한 번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보드게임 방문 수업을 진행한다. 유씨는 "아이가 어린이집 프로그램을 지루해해 두뇌발달에 좋은 보드게임 수업을 받고 있다"며 "아이가 너무 좋아해 수업을 더 늘릴 예정"이라고 했다.  

생후 11개월 자녀를 둔 이모씨(34)는 영유아 교육센터 두 곳을 다니면서 교육비로 매월 약 30만원 이상을 쓴다. 이씨는 "복직을 하면 아이와 함께 놀아줄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아 교육센터를 다니고 있다"며 "아기 발달과정에 맞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만 2세부터 학습지, 학습기를 이용해 한글, 영어, 수학 등 교과목 중심 학습을 받는 아이들도 상당수다.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학습지 업체를 살펴 보면 '재미있는 놀이 학습' '놀이를 하며 배우게 해준다'는 광고로 관심을 끌고 있다.  

유아 교육전에서 교구에 관심을 보이는 엄마들. 사진=임지혜 기자

◇ '즐겁게 익히기'…학습일까, 놀이일까


사교육 업계는 '놀이식 학습'이라며 영유아 시장을 공략한다. "지금 예약해서 대기가 수개월" "지금이 적기" "남들도 다하는 건 이유가 있다" 등을 강조하며 지금 꼭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결국 주변 사람들도 다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지갑을 여는 경우가 많다. 

생후 12개월 자녀를 둔 임모씨(33)는 "최근 주변 엄마 5명이 A업체 교육센터에 구경갔다가 전부 그 자리에서 등록을 하고 왔다"며 "다른 사람들이 하면 우리 애만 안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초조했다"고 말했다. 

만 2세 자녀를 둔 김모씨(36)도 "주변에 어린이집, 유치원 끝나고 학습지를 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따라하겠다고 초등 입학도 전에 사교육으로 매월 수십만원씩 쓰고 유명하다는 책이며 CD를 사다보면 수백만원도 우습게 쓸 것"라며 "그런 식으로 휩쓸려 전집도 사다보니 집에 책만 쌓였는데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더 좋아하더라"고 씁쓸해했다. 

실제 육아정책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 놀이 목적보다는 남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하는 경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방안 Ⅱ_2세와 5세를 중심으로' 보고서(2016년)를 보면 2세아의 사교육 프로그램 선택 경로는 '주변 아이가 하는 것을 보고 선택'이 22.7%로 가장 많았다. 교육기관의 광고·홍보물 19.9%, 인터넷 검색 17.1%, 주변 부모의 권유 12.5%, 지인 문의 16.1% 순이었으며, '아이가 원해서'는 3.8%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많은 프로그램이 '놀이'를 표방하고 있으나 사실상 '학습'이라고 주장한다. 업체들의 놀잇감은 놀이의 모양만 띠었을 뿐 사실 학습이 목적인 학습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기인지교육이 영유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사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자료 캡처
일부 학자들은 '놀이'에 대해 △놀이시간 △의사표현의 자유(아동의 의사존중) △자기주도성 △도전성(창의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는 △무계획성 △무목적성 △무강제성이 있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크게 보면 '자율성' 공통점을 가졌다. 

양신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쿠키뉴스를 통해 "아이가 자율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놀이인데 대부분 수업이 방문 교사라든지 보호자의 주도하에 수업 과정을 이끄는 것"이라며 "선생님 주도하의 수업은 '놀이'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선임연구원은 "아이와 상호 교감을 위해 '얘들아, 어떤 놀이를 할까' 물어봤을 때 아이가 '블록 놀이를 하고 싶다'고 해서 놀이를 하는 것과 (묻지 않고) 선생님이 블록을 가지고 와서 하는 것은 놀이의 목적성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이들이 사교육에 노출돼 어릴 때부터 수동성을 배워가는 건 미래 교육의 차원에 있어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조기 사교육이 정서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또 있다. 

지난해 12월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조기인지교육이 영유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85.2%가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로는 '학업 스트레스'가 95.7%로 가장 많았으며, '학습에서의 자율성 저하' 69.6%, '낮은 학습효과', '창의력 저하'가 각각 60.9%로 뒤를 이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