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 “우리 음악 주인공은 언제나 청년” [쿠키인터뷰]

이은호 / 기사승인 : 2021-12-09 06: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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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밴드 자우림 멤버 김진만, 김윤아, 이선규.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사막처럼 황량한 기타 소리, 심장을 저며 오는 목소리. ‘우리는 모두 사라지지, 우린 모두 사라져(We all fade away, We all fade away)…’ 필멸하는 자의 비애란 이런 걸까. 밴드 자우림은 지난달 26일 발매한 정규 11집 첫 곡 ‘페이드 어웨이’(Fade Away)에서 “빗물 속의 눈물처럼 바람 속의 단어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는 운명을 처연하게 곱씹는다.

“자우림의 어두운 측면을 총체화했다”(음악평론가 배순탁)고 평가받는 정규 11집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한 사랑’. 자우림은 이 음반에서 유한한 삶이 불러오는 외로움을 영원한 사랑의 약속으로 위로한다. “내일은 너무 멀어. 지금 바로 여기 있어줘”(‘스테이 위드 미’)라는 갈망은 마침내 “이제는 혼자가 아니야. 언제까지라도”(‘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맹세로 응답 받는다.

“원래 지난해 발매했어야 하는 음반이에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이 들이닥쳤죠. 이런 시기에 어둡고 무거운 음악을 들려드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화상으로 만난 자우림 멤버 김윤아는 말했다. “이 음반이 청중에게 어떤 역할을 해내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아요. 음악은 음악일 뿐이죠. 다만 지금이라면, 청중이 이 음악을 비수처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김윤아.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윤아는 지난해 초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렸다. “공기에서 먼지 맛을 느꼈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했다. 김진만·이선규 등 자우림 멤버들이 “검붉다”고 표현한 음악들은 이런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며 완성됐다. 노래를 만들며 어떤 치유를 경험한 걸까. 김윤아는 음반을 절망으로 점철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말해줘. 어떤 외로움들은 거짓으로만 위로되니까’라고 적었던 ‘페이드 어웨이’ 가사를 ‘어떤 외로움들은 혼자 삭이기 힘드니까’로 다시 썼다.

“음반을 만들면서 위로받은 경험, 있지요. 수록곡 ‘디어마이올드프렌드’를 들으면서 그랬어요. 윤아가 주변 사람들, 특히 우리 두 사람(김진만·이선규)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썼다고 했거든요. 마지막 곡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제 결혼식 때 윤아가 축가로 불러주려고 만든 노래예요. 비록 팬데믹 상황이 악화돼 결혼식에 멤버들을 초대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들어본 축가 중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가장 아름다웠어요.”(김진만)

자우림.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1997년 데뷔한 자우림은 20년 넘게 동시대 청년들과 마음을 나눠 왔다.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일탈’)이라며 X세대 가슴에 불씨를 던졌고,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샤이닝’)라는 자조로 M세대를 어루만졌으며, “사라지지마. 흐려지지 마”(‘영원히 영원히’)라고 Z세대를 붙들었다. 단절되고 고립됐다 느끼는 이들에게 자우림의 음악은 타인과 연결되는 끈이었다. 자우림은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끼고 원동력을 얻는다”(김윤아)면서 “그 분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이선규)고 말했다.

“자우림 음악의 주인공은 늘 청년이에요. 국적이나 성별, 나이는 중요치 않아요. 다만 청년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 내면에 갈등과 갈증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로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1997년에 청년이었던 사람과 2021년에 청년인 사람 모두 ‘자우림 음악은 내 이야기 같아’라고 느낄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인가 봐요. 앞으로도 그렇게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김윤아)

“얼마 전, 동료로부터 ‘긴 시간동안 계속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밴드는 등불과도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오래된 밴드들이 제일 빠지기 쉬운 수렁이 ‘초창기 히트한 몇 곡을 내내 우려먹는 것’이거든요. 자우림은 그러지 않는 것 같아 뿌듯하고 다행입니다. 새 음반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도 성취감이 들지만, 음악이 워낙 좋아서 자우림 팬으로서도 만족스러워요. 배울 점 많은 친구들이 만든 음악이라는 게 느껴지죠. 자우림 멤버들은 제 롤모델이자 위인입니다.”(이선규)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