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뷰 아파트, 놓치고 있는 한 가지

왕릉 숲, 법정보호종 터전으로 자리매김
주변 아파트 개발로 생태환경 파괴 우려
공존과 보존 두고 깊어지는 사회 고민

기사승인 2021-12-15 06: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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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뷰 아파트, 놓치고 있는 한 가지
구리시 동구릉에서 포착된 참매(천연기념물 제323호) 가족 모습.   사진=곽경근 대기자 

천연기념물 참매는 오늘도 조선왕릉 상공을 날고 있다. 늘어나는 아파트에 갈 곳을 잃은 참매에게 왕릉은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참매가 왕릉에서 언제까지 날갯짓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왕릉 주변이 최근 개발되면서 생태환경이 위협받고 있어서다. 주거 안정을 위한 개발과 문화재·자연환경 보존, 무엇 하나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고민이 깊어진다.

왕릉 ‘숲’ 찾아 먼 길 왔어요

조선왕릉의 숲은 조선시대 왕릉을 조성할때부터 심고 가꾸어온 곳이다. 숲 역시 문화재인 왕릉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이다. 문화재청은 현재도 묘목을 따로 심어서 기르는 양묘장을 두고 숲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렇게 가꿔진 숲은 삶에 지친 현대인의 쉼터이자 수많은 동물들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왕릉 숲에 터전을 꾸린 참매는 맹금류(매류와 수리류)의 일종으로 보라매라고도 불린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국조로 한반도 상공을 누볐다. 정부는 먹이의 오염과 서식지의 파괴, 그리고 남획 등을 원인으로 참매의 개체수가 줄자 1982년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했다.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진 참매는 최근 구리 동구릉에서 목격되고 있다. 특히 동구릉에서는 새끼를 키우는 참매의 모습도 포착되 눈길을 끈다.

여기에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은 김포 장릉에 집단 서식하고 있다. 소쩍새, 솔부엉이, 수리부엉이는 물론 하늘다람쥐 등 또 다른 법정보호종도 왕릉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하늘다람쥐는 한국 특산종으로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희귀종이다. 

전문가들은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동물들이 왕릉에서 새끼를 키우는 모습에 주목한다. 서정화 야생조류센터 그린새 대표는 “왕릉에서 새끼를 키우고 있다는 것은 안정적인 먹이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참매가 포착된 동구릉은 왕릉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숲이 잘 보존되어 있어 야생동물이 거주 가능한 생태환경을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살 곳을 잃은 동물들을 왕릉으로 옮기는 사람들의 손길도 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개발과정에서 터전을 잃은 동물들을 왕릉으로 옮겨 새로운 터전을 찾아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왕릉뷰 아파트, 놓치고 있는 한 가지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하늘다람쥐. 사진=서정화

왕릉 둘러싸는 아파트, 생태계 위협

문화재와 함께 생태적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는 왕릉 주변은 현재 아파트 개발 열풍이 불고 있다. 집값 상승과 함께 주거 불안이 확대되면서 개발이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 김포 장릉 주변에서는 현재 검단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다. ‘왕릉 경관 훼손’ 문제로 건설사와 문화재청이 아파트 철거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는 곳이다. 또한 서울 태릉에서는 6800가구의 아파트 공급을 준비 중이며, 고양시 서오릉 주변은 창릉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왕릉 주변의 아파트 개발은 자연 생태계에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온다. 법정보호종들의 활동반경 축소와 함께 거주 환경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대표적인 우려 점을 꼽자면 사람이 실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빛이다. 사소하게 치부될 수 있는 아파트의 조명이 왕릉의 밤을 환하게 밝히고, 이는 법정보호종들의 주거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환경생태학회가 2014년 펴낸 학술대회논문집을 보면 빛공해가 야생조류 울음소리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실려 있다. 빛공해가 야생조류의 울음 빈도 및 시간과 상관관계를 보여 행동패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결과다. 그러면서 논문은 빛공해가 야생조류 서식환경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을 경고하고 있다. 

송시경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장은 “현재 동구릉 등 왕릉의 밤은 완전히 캄캄한 암흑에 잠긴다”며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가꾼 숲과 어둠에 이끌려 동물들이 왕릉으로 모여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으로 인한 먹이 감소, 소음, 늘어나는 통행량 등도 생태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지목된다.

왕릉뷰 아파트, 놓치고 있는 한 가지
김포 장릉에서 보이는 검단 신도시 아파트 단지. 

개발 OR 자연 보존, 깊어지는 고민

주거 안정을 위한 아파트 공급 역시 간과할 수만은 없는 부분이다. 집값 상승과 전세난에 주택 공급의 필요성은 어느 때 보다 높은 상황. 건설업계 쪽에서는 이에 공존을 강조한다. 개발과 자연보호가 함께 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익명의 건설업계 쪽 연구원은 “실질적으로 개발을 막기 어렵다”며 “막기 어렵다면 개발과 자연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자연은 사유화될 수 없는 것으로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나온다. 한봉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자연은 공유제로서 공공의 것이며 그대로 있음으로 인간 이외의 많은 생명체에게 공유되고 있다”면서 “개발이라는 것은 일부 개인과 집단이 공유자원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공재를 사유화해 재산을 늘리려는 사회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개발과 보존은 조화되기 어렵다”며 보존을 강조했다.

왕릉뷰 아파트, 놓치고 있는 한 가지
김포 장릉 인근에 위치한 분양 사무실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