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라 가능한 테스트 [친절한 쿡기자]

기사승인 2021-12-15 1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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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라 가능한 테스트 [친절한 쿡기자]
넷플릭스 예능 ‘먹보와 털보’ 포스터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 PD는 MBC를 나와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궁금했습니다. 지난 주말 넷플릭스 예능 ‘먹보와 털보’를 봤습니다. 가수 비와 방송인 노홍철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방 곳곳으로 국내 여행을 떠나는 예능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히 친해진 두 사람 티격태격하는 대화와 각 지역의 아름다운 경치가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MBC에선 볼 수 없었던 과감한 자막 사용과 편한 관계에서 나오는 솔직한 대화, 여행 중 일어나는 돌발 사건 등이 인상적었습니다.

문제가 된 건 제주도 여행 둘째 날 아침 이야기였습니다. 스테이크 식당에 가려고 전화를 건 비가 예약이 가득 찼다는 말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곧바로 노홍철은 자신이 전화를 해보겠다며 “테스트를 해보자”라고 제안합니다. 비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전화했을 때 실패한 예약이 연예인 노홍철인 걸 알렸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자는 얘기였죠. 노홍철은 전날 시장에서도 자신이 비보다 먹혔다는 걸 강조하며 전화를 겁니다. 넷플릭스에서 촬영하는 걸 알린 방송인 노홍철은 결국 예약에 성공합니다.

이 장면은 연예인 특혜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예약하지 못했을 식당을 연예인의 힘으로 성사시켰다는 것이죠. 14일 식당과 제작진은 방송에 다 나오지 못한 내용을 공개하며 해명했습니다. 식당 주인은 SNS로 “일반 손님은 안 받아주는 예약을 연예인이어서 받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제작진도 “전체 맥락이 전달되지 못한 편집으로 인해 시청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점 정중히 사과 드린다”라고 전했습니다. 방송에 나온 건 예약 손님 주문을 받은 후 남는 재료로 만든 식사였고, 그들이 먹은 야외 테이블도 식사가 아닌 포토존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덧붙였습니다. 예약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개개인 허락을 구하기도 했고요.

방송을 위한 대본도 아니었고, 편집으로 생략된 장면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끊임없이 자존심 대결을 펼치는 ‘먹보와 털보’의 콘셉트 연장선에서 나온 장면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예약 당사자와 식당 주인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예약을 진행했고, 식당 역시 기분 나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언뜻 큰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논란의 핵심은 어떻게든 예약을 성사시키려는 무리한 태도가 아닙니다. 자신이 전화하면, 넷플릭스 촬영이라는 걸 알리면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노홍철의 발상이 문제죠. 보통 사람은 예약이 실패한 상황에서 다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예약을 시도하지 않으니까요. 방송에서 유명 연예인의 힘을 과시하는 해석이 가능한 장면을 남겨둔 제작진 역시 논란의 원인을 되짚어야 합니다. 재밌는 예능을 만들기 전에 공정을 중시하는 최근 시청자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