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진단자 22만명…압박은 여성 몫

치료휴가 3일, 시술 노동자 40%는 직장 그만 둬 

기사승인 2021-12-18 06: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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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책임으로 모는 인식 여전 

난자검사 등 임신계획 지원해야 

‘난임’ 진단자 22만명…압박은 여성 몫
쿠키뉴스DB

30대 A씨는 결혼한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자연임신이 되지 않아 얼마 전 병원을 찾았다. 진단명은 난임이었다. 생리도 규칙적이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난임이라고 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가질 줄 알았다. 마흔 넘어서 임신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 사람들도 다 시험관 시술을 받은 건지 궁금하다”면서 “시댁에 알려야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난임 진단자는 2015년 22만614명에서 2020년 22만9187명으로 매년 22만명대 정도로 나타난다. 저출산 대책에 포함되는 ‘난임 지원’은 아이를 낳고자 하는 부부의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고 출산을 장려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난임의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무리한 시술을 강요하는 등 성‧재생산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참고로 성‧재생산권은 개인이 어떠한 강압이나 차별, 폭력 없이 성적 관계를 형성하고 자녀를 가질 여부와 시기‧방법‧자녀의 수 등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다. 생식기관의 기능 및 발달에 있어 질병, 기능저하 또는 장애로 인해 고통이 없는 상태를 포함해 신체적‧정서적‧사회적으로 건강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나 의료서비스 등을 제공 받을 권리를 포괄한다. (관련기사=‘출산율 제고=저출산 해결’ 틀 깬다…‘성‧재생산권’ 뭐 길래)

시댁서 강요, 남편은 비협조

난임의 원인은 여성과 남성이 각각 35~40% 정도 되고 양쪽 모두에게 원인이 있거나 원인불명인 경우가 나머지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난임에 대해 ‘부부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난임의 원인과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크다. 주창우 마리아병원 가임력 보존 클리닉 센터장은 “현장에서는 난임을 여자 책임으로 매도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시댁에서 어떤 병원에 가서 어떤 의사를 만나 어떤 약을 먹어보라며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분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난임치료에 비협조적인 남편도 많다. 본인은 문제가 없다며 병원에 안 가겠다고 한다. 또 임신을 여성이 하다보니까 남성은 정자 제공자의 역할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수동적으로 임한다”라면서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임신이 안 된다는 것을 자신의 성기능, 정력 등 능력의 문제로 결부 짓는 경향이 커서 그렇다. 사회적 체면 때문에 오히려 속으로 끙끙 앓는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난임 시술 여성은 ‘우울과 감정기복’(80.1%)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건강 악화(31.7%)’, ‘계속 유산(22.1%)’에 이르러서야 시술을 종료·포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난임시술 임금노동자의 약 40%는 직장을 그만두고, 비정규직의 퇴사율(56.6%)이 정규직(36.5%)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난임의 문제를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사적 문제로 보는 사회구조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현재 정부가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 난임치료를 받고 있는 남녀 근로자에게 1년간 최대 3일까지의 ‘난임치료 휴가’를 제공하고 있지만 정작 휴가를 사용할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주 센터장은 “여성의 생리주기에 맞춰 난임 검사가 이뤄지다보니 직장인들은 갑자기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1~2일 전에 휴가를 낼 수 있거나 잠시 시간을 잠시 비울 수 있는 직장에 다니지 않는 분들은 시술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난임시술 과정에서 여성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고위)는 “과배란 유도, 이식, 착상, 출산과정에서 약물에 의한 부작용이나 조기출산, 기형아 출산 등 산모와 출생 아동의 건강상 위험이 발생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난임시술을 받은 여성을 대상으로 난임시술 과정에서 여성건강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됐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35.9%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해 알권리 및 권강권 보장에 한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기부터 건강 위험 대응…임신계획 지원해야 

건강한 임신‧출산 지원을 위해서는 임신‧출산 여성이라는 특정 인구집단이 아닌 성‧재생산 관점에서 난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저고위는 “난임의 원인은 다양하다. 재생산 건강에 유해한 직업환경, 환경오염 등 사회‧환경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아동‧청소년기 때부터 각각의 삶의 단계에서 건강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 발달 단계에 따라 성‧재생산 관련 건강검진, HPV예방접종, 월경건강, 피임‧임신중지 등대한 종합적인 생애 지원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센터장은 만혼‧고령임신이 증가되는 사회적 현상이 난임의 주요 원인인 만큼 젊었을 때부터 임신 계획을 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난임 증가 이유는 임신 시도 시기가 늦어진 것이 가장 크다. 평균 수명은 엄청 늘었지만 가임기간은 100년 전과 똑같다. 생물학적인 특성은 변하지 않은 것”이라며 “20대 초반의 자연임신 성공률은 한 달 동안 20~30%정도이지만 20대 중반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다. 만 35세는 10~15%, 그 이상은 10%이하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신의 상황에 따라 임신 시기가 늦어지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지만 향후 임신 계획이 있다면 자연 임신성공률에 대해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주변에서 모두 늦게 결혼하고 시험관 시술을 하니 ‘나도 그렇게 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임신성공률이 높은 시험관 시술도 만 45세가 되면 맥시멈 5%”라고 지적했다. 

주 센터장은 “젊더라도 난소종양, 흡연, 가족력 등 위험요인이 있으면 난소 나이가 높게 나올 수 있다”며 “20~30대 초반이라면 난소가 건강한지 검사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향후 임신계획에 있어 준비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주 센터장은 출산을 위한 ‘난임 지원’에만 집중할 경우 오히려 여성에게 압박이 될 수 있어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난임 지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시술비 지원이 10회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오히려 시술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압박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시댁에서 시험관시술 4번밖에 안했는데 왜 더 안 하냐, 급여되니까 더 해봐라라고 말해 등 떠밀려 오는 분들이 있다.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가 생긴 거다. 항암치료라면 포기한다고 했을 때 더 하라고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아이를 갖고 싶으면 가질 때까지 시술을 하라고 압박하는 분위기다. 인식 개선이 돼야 한다”며 “임신의 목적은 여성의 행복이 아니다. 가정이 행복하려면 한쪽에 부담과 불행을 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계속 시도해도 안 되는 사람은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는 길도 만들어줘야 한다. 난임 치료가 ‘시술’만 있는 게 아니다. 신체적‧심리적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을 해결해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난자‧정자기증이나 입양, 혹은 다른 사회적 기여 방법들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마련해야 한다”며 “가임력 보존부터 시술, 난자‧정자 공여, 입양 등을 원스톱으로 안내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