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사는 집이 뭐 어때서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1-12-21 07: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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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사는 집이 뭐 어때서 [쿠키청년기자단]
엄마는 현관 정리를 할 때면 아빠 구두를 문 앞에 내놨다. ‘왜 아빠 구두를 꺼내놓느냐’고 나는 물었다. 엄마는 “나쁜 도둑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남자 신발이 있어야 겁먹고 도망가”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왜 엄마가 남자 신발을 현관에 두는지.

커보니 알 것 같다. 세상에는 여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주거침입, 데이트 폭력, 성범죄가 너무 많다. 비밀번호를 기억해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한 배달원, 이별을 통보했다고 여자친구 집에 찾아가 폭행과 살인을 저지른 남자. 하루가 멀게 보도되는 사건들이다.

여성 1인 가구 범죄는 전 세계적 문제다. 일본에서는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해 ‘그림자 남자친구’라는 아이디어 상품이 등장했다.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운동하는 남성, 청소하는 남성의 그림자를 창문에 띄우는 것이다. 혼자 사는 여성이 범죄 대상이 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차원이다.

나 역시 독립을 꿈꾼다. 지방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도시보다 비교적 한적한 동네에서 여성 1인 가구가 되는 것을 떠올리면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지난 2017년 형사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여성 1인 가구가 남성에 비해 범죄 대상이 될 가능성이 2.3배 높았다. 여성이 주거침입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남성에 비해 11.2배다.

유튜브 화면에 우연히 뜬 ‘보이스 가드’ 영상은 씁쓸하면서 슬펐다. 보이스 가드는 남성 목소리로 상황에 맞는 대화를 녹음한 영상이다. 배달이나 택배 왔을 때 혼자 사는 여성이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보이스 가드 영상 중에는 조회 수가 100만 회를 넘은 것도 있다. 댓글에는 ‘필요했는데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줄을 잇는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는 말은 언제까지 위태로워야 할까. 우리는 언제쯤 “여자 혼자 삽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공간에서도 안전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날을 상상해 본다.

방의진 객원기자 qkd0412@naver.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