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새 차로 재미없는 길 달리는 ‘특송’ [쿡리뷰]

기사승인 2022-01-05 06:2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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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새 차로 재미없는 길 달리는 ‘특송’ [쿡리뷰]
영화 ‘특송’ 포스터

더없이 유쾌하고 경쾌하다. 처음부터 아무 설명 없이 곧바로 달린다. 오프닝 카체이싱 장면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황홀하다. 도로와 골목길을 오가며 속도를 조절하고, 적절한 음악을 선곡하는 센스가 눈에 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뱅뱅 돈다. 자동차 액션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진부한 결말로 저속 주행한다. 더없이 실망스럽고 지루하다.

영화 ‘특송’(감독 박대민)은 배송사고에 휘말린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박소담)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평소엔 집에서 고양이와 평화롭게 지내는 걸 행복으로 여기는 은하는 일할 땐 완전히 달라진다. 뛰어난 운전 실력과 배짱으로 주어진 임무를 정확하고 빠르게 실행한다. 어느 날 두식(연우진)의 의뢰를 맡았으나 일이 꼬였다. 그의 아들 서원(정현준)을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는 은하는 영문도 모른 채 경찰과 국정원이 타깃이 되어 쫓긴다.

영화의 매력은 뛰어난 업무 능력에 자신감 넘치는 인물이 보여주는 쿨한 태도에서 나온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감독 에드가 라이트)처럼 거친 인물들의 위험한 의뢰를 은하는 여유롭게 헤쳐 나간다. 무시하는 시선도, 쫓기는 긴박한 상황도 은하가 운전대만 잡으면 모두 의미 없는 배경이 될 뿐이다. 한손으로 아메리카노를 음미하고, 다른 한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우아하게 180도 드리프트를 하는 모습을 보면 관객들의 걱정도 사라지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한두 장면으로 조용히 자신의 매력을 뿜어내며 대단한 신뢰까지 주는 여성 캐릭터는 흔치 않다. 은하의 옆자리에서 안전벨트를 끝까지 질주할 마음의 각오를 하게 만드는 이유다.

멋진 새 차로 재미없는 길 달리는 ‘특송’ [쿡리뷰]
영화 ‘특송’ 스틸컷

안전벨트를 풀고 내비게이션의 남은 주행 시간을 확인하게 하는 건 영화의 초점이 어긋나면서부터다. 은하를 주인공으로 신나는 카체이싱 액션을 주무기로 할 것 같았던 ‘특송’은 어느 순간부터 300억원을 둘러싼 폭력배와 경찰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경필(송새벽)이 주요 캐릭터로 부각되며 은하가 위기를 겪는 내용이다. 자꾸 은하의 남자친구라고 우기는 초등학생 서원 역시 핸디캡으로 작용하며 속도감을 늦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해서 사는 멋지게 사는 은하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상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고통 받는 은하의 모습이 그려진다. 잘 만든 매력을 스스로 지우고 진부한 길을 걷는 ‘특송’의 선택에 동의하기 어렵다.

범죄의 주변부를 소재로 삼은 점은 분명 신선하다.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처럼 범죄자들의 뒤처리를 대신해주는 업계 이야기다. 선량하고 의리있는 인물들이 범죄의 잔여물에 기생해서 간단한 일로도 큰 수익을 올리며 산다. 아무 죄의식 없이 배송하는 사람을 ‘물건’이라 부르며 거리를 둔다.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싶은 죄책감과 모순을 영화는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과거와 희생정신 등 개인의 선택에 집중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이면과 범죄를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엔 관심이 없다. 극중 은하는 냉정하고 기계적으로 일만 처리하다가 한 순간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낸다. 그 결과가 비극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오는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