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관광으로 소멸 위기 넘어선다 [연천을 가다 ②]

두루미, 주상절리 등 청정자연 서울서 1시간 거리
임진강과 지질공원 유네스코 2관왕 높은 관심
자연해설사 지질해설사...주민 참여와 귀촌도 활발
자연도시락 주먹도끼빵 카페 등 다양한 창업도 늘어
대기업 공장유치보다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 절실

입력 2022-02-26 0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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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관광으로 소멸 위기 넘어선다 [연천을 가다 ②]
한탄강 세계지질공원 명소 중 한 곳인 ‘백의리층’(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앞에서 연천군청 지질생태팀이 실시한 지질공원해설사 교육프로그램에 참석한 해설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백의리층’은 현무암 절벽 아래에 깔린 하천 퇴적층(강 자갈층)이다. 이 퇴적층은 먼 과거 용암이 강을 뒤덮었음을 말해준다. 연천군청 제공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천혜의 자연에 자부심을 갖고, 이를 보전하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만 굳다면 연천이 스위스의 산악마을처럼 관광 명소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경기도 연천군청 관광과 윤미숙 지질생태팀장은 2019년과 2020년 임진강 일원과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이 각각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과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주민 환경교육이 뚜렷한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고 지난 13일 쿠키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말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산과 강 아니냐?”

윤 팀장이 주민대상 환경교육을 시작한 2015년 당시 군민들의 첫 반응은 싸늘했다. 그러나 지역 명소와 희귀한 동식물에 대해 전문가들의 강의를 듣고 그 가치를 깨달아가면서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3000여 마리 밖에 없는 두루미 100여 개체가 연천군 중면 횡산리 망제여울과 필승교 주변에서는 겨울 내내  임진강변 언덕 경작지에 올라가는 진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수리에 빨간 점이 있는 두루미 가운데 철따라 이동하는 1800 개체의 약 90%인 1600여 마리가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와 북한 접경지역에서 겨울을 나고, 그 중 400 마리 안팎이 연천에 깃든다는 사실을 알면 주변 군민과 타지 사람들에게도 이를 알리지 않고는 못 배긴다. 더구나 연천 두루미는 논 대신 산과 언덕에서 놀고, 쌀 대신 율무를 먹는 ‘율무두루미’다.

생태관광으로 소멸 위기 넘어선다 [연천을 가다 ②]
연천군 중면 횡산리 망제여울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두루미는 낙곡과 율무는 물론 다슬기와 작은 물고기도 먹는다. 잠자리를 택할 때 천적의 접근을 쉽게 알아챌 수 있게끔 시야가 넓게 트인 공간, 벌판, 물가 등을 선호한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생태관광으로 소멸 위기 넘어선다 [연천을 가다 ②]
연천군 중면 횡산리 임진강 망제여울에 있는 먹이터에 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이 모여 있다. 파주환경운동연합과 연천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등 지역 환경단체들과 이수동 경상국립대 교수(조경학과)팀이 합동 조사한 결과 지난해 12월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류는 파주에 두루미 62마리와 재두루미 681마리, 연천 두루미 383마리, 재두루미 865마리, 철원 두루미 1200마리, 재두루미 5300여 마리로 집계됐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주상절리(마그마 또는 용암이 식을 때 수축현상에 의해 생긴 틈이 만드는 기둥모양의 암석대열)는 또 어떤가. 한탄강 협곡과 임진강이 만나는 2km 구간의 ‘임진강 주상절리’, 재인폭포와 한탄강 지류인 ‘차탄천 주상절리’ 등이 대표적이다. 약 4억 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에 생성된 변성퇴적암인 ‘미산암’과 ‘아우라지 베개용암’도 빼놓을 수 없다. 30만 년 전 구석기시대인의 유물과 그들의 삶터를 재연한 전곡리유적은 연천의 랜드마크가 됐다.

주민들이 연천의 자연, 지질자원과 동식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들 아이템을 상품화하고 주민소득과 연계하는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주민들이 세운 여행사 등 마을기업도 생겼고, 구석기시대의 스마트폰이라고 불리는 주먹도끼 모양의 빵을 만드는 빵집도 문을 열었다. 생태관광을 활성화하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들도 출범했다.

윤미숙 팀장은 앞날을 낙관한다. “연천군에 스토리는 이미 풍부하고, 젊은이들이 적다고는 하지만 귀촌과 귀농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기반시설이나 요즘 유행하는 수변 데크와 분수대, 또는 주상절리 잔도길 같은 하드웨어투자보다는 지역주민 교육이 장기적으로는 더 현명한 관광정책입니다.” 그로부터 연천의 생존 및 발전 전략은 생태관광 외길이라는 믿음이 전해졌다. 4만 명 남짓한 연천 인구 가운데 자격증을 갖춘 지질공원 해설사가 54명, 문화관광해설사가 20명, 자연환경해설사가 10명이다. 윤팀장은 이들 중 귀촌 및 귀농인이 3분의1 이상이라고 밝혔다.

서울에서 8년 전 귀촌한 권미영씨는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일주일에 1~2회 재인폭포와 선사시대 유적지에 지질공원 해설을 한다. 2019년부터는 효연재라는 카페겸 음식점도 운영하고 있다. “처음 연천에 왔을 때만 해도 생태관광도시의 싹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군에서 실시하는 생태 및 지질관련 교육을 받고서 최근 4~5년 사이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심사위원들이 연천을 방문했을 때에는 효연재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식사도 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고, 그게 주민참여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데 공헌했다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유네스코는 세계지질공원을 인증할 때 지질학적 가치에 더해 지속적이고 수준 높은 지질여행의 가능성을 검토한다. 여기에 주민참여도 중요하다.

생태관광으로 소멸 위기 넘어선다 [연천을 가다 ②]
연천군 청산면 출신인 임무송 서강대 대우교수가 지난 1월말 연천읍 부곡리에 있는 재인폭포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예로부터 명승지로 널리 알려진 재인폭포는 높이 약 18m에 이르는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 쏟아져 내린다. 이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어름치와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가 서식하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권씨는 한탄강 지질공원 파트너로서 계절 도시락 ‘지오’를 판매해 2020년 한때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코로나19 감염이 재차 확산되면서 관광도 식당운영도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그는 “연천에서 농업 비중이 높지 않지만, 생태관광과 발맞춰 경관농업을 시도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다”면서 “3월부터 청산면에서 지급되기 시작되는 농촌기본소득이 확대되어 주민들의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면 이들이 좀 더 과감하게 생태관광 관련 사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일하다가 8년 전 연천에 온 서성철씨는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면서 전곡리유적 방문자센터 안에서 로이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서씨는 연천 율무와 직접 재배한 블루베리를 재료로 한 주먹도끼빵과 쿠키를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2016년 연천 명품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먹도끼빵은 지난해 3월초 지상파 TV 여행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한때 카페로이에 3시간씩 줄을 서는 장사진이 생기고, 전국에서 배달요청이 잇따랐다. 서 대표는 “주먹도끼빵이라는 지역특화된 식품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이곳을 방문해서 드시라는 취지이기 때문에 배달요청에는 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공장 유치나 공공기관의 이전을 기대하는 군민들도 많다. 그러나 입지나 남북관계의 여건상 쉽지 않다. 연천군은 2018년 2월에는 ㈜빙그레와 통현 일반산업단지를 조성해 총사업비 250억 원 규모의 식음료 공장을 유치키로 협약을 맺었으나 빙그레측이 2020년 9월 대내외적 여건 변화를 이유로 사업을 포기했다. 20~60대 신규 취업자 900여 명 등 40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했던 군민들이 당시 입은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나이 든 군민들은 지자체장이나 지역 유지들이 그들이나 출향인사들의 영향력을 빌어 사업 아이디어와 창업 기회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인책, 즉 연천이 강점을 가진 업종의 창업클러스터나 먹을거리, 즐길거리 가득한 명물거리를 만들든가 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윤 팀장은 “관광객이든 귀촌인이든 우선 사람들이 모이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러면 입소문을 타고 장사나 사업을 하려는 젊은이들도 찾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관광으로 소멸 위기 넘어선다 [연천을 가다 ②]
연천군 중면 횡산리 필승교 부근 여울에서 두루미들이 놀고 있다. 횡산리는 초소에서 검문을 받고 출입허가를 받아야 하는 연천의 유일한 민통선 마을로 남아 있다. 철원군은 두루미 서식지 보호를 위해 임진강 군남댐~필승교 구간을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고 2020년 정부에 요청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제공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김경도 전문위원은 “이제는 연천에 생태관광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주민들이 당장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군인들을 중시하고 군부대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3개 사단이 주둔하고 있으므로 상주인구는 4만이 아닌 8만 명에 이르는 셈이고, 이들이 연천에서 돈을 쓰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연천의 피씨방, 당구장, 여관 등 서비스업 시설이 낙후돼 있는데 업자들의 자구노력과 함께 리모델링을 경기도와 연천군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천 출신으로 한때 중앙정부에서 일자리 정책을 총괄했던 임무송 서강대 대우교수는 “서울에서 1~2시간 거리에 위치한 청정자연이라는 지역 특성에 문화와 힐링을 결합한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이 필요하다”면서 “인구 유입도 필요하지만 먼저 청장년들이 떠나지 않도록 하려면 교육여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평화누리 자전거도로의 연천코스인 6, 7코스를 이용하면 연천의 임진적벽길, 학곡리 적석총, 차탄천, 역고드름 폐철교 등을 볼 수 있다. 임 교수는 “연천역에서 잠금장치를 갖춘 자전거를 빌려주면 자전거타기와 걷기를 병행하는 트레킹이 인기를 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항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

[연천을 가다①] 소멸위기 소도시 주민에게 대통령선거란?

※지역 기획 연천을 가다는 3회까지 이어집니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