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공약 제대로 알고 싶다”… 선거에서도 ‘소외’

일부 후보, 점자 공보물·USB 등 제공하지만 오·탈자 많고 파일 안 열리기도

기사승인 2022-03-08 06: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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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공약 제대로 알고 싶다”… 선거에서도 ‘소외’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소재 한 오피스텔 우편함에 제20대 대통령선거 안내문·전단형 선거공보물이 꽂혀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매번 느끼는 데 선거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공약을 알아보기 너무 힘드네요. 장애인들도 공약을 좀 알고 싶어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선거공보물 접근성이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거공보 현황’에 따르면 총 14명의 대선 후보 중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든 형태의 선거공보를 제출한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 통일한국당 이경희 후보 등 3명에 불과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점자형 선거공보를 작성·제출해야 하되 책자형 선거공보에 그 내용이 음성·점자 등으로 출력되는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를 표시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장애계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장애인들의 선거공보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용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홍보실장은 “그나마 이번에 시각장애인에게 점자 공보물, 디지털 파일 저장매체(USB),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QR코드) 등이 전달되기는 했다. 하지만 USB에 후보명이 표기되지 않아 분간되지 않고 오·탈자도 많다. (정부가) 장애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밝혔다.

김훈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선임연구원은 “점자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검증돼야 하는데 일반 인쇄업체에 맡겨져서 배포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탈자가 많은 것”이라며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검수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USB로 받은 공보물은 파일이 열리지 않는 등의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제대로 동작하는지 검증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정보는 주지 않으면서 생색내기를 하는 것뿐이다”라고 토로했다.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을 위한 정보 제공 작업은 걸음마 단계다. 미국, 영국 등 국가에서는 발달장애인 등을 위해 ‘쉬운 용어’로 공약 등 정보를 전달하는 공약집을 따로 제작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처음으로 사회적 기업과 협업해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안내를 담은 자료집을 지난달 25일 내놨다. 하지만 후보자 개별 공약을 쉬운 용어로 옮기는 작업은 빠졌다. 이 실장은 “법적인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루다가 대선일이 다가오자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주장했다.

“장애인도 공약 제대로 알고 싶다”… 선거에서도 ‘소외’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실시된 4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선거 과정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한 인식 개선 부족은 드러났다. 김 연구원은 “지난 4일 사전투표를 했다. 선거사무원이 점자용 투표 용구를 찾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느라 시간을 소비하다 보니 이미 1시간 이상 기다리고 있던 비장애인들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또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모르는 분을 위해 활동 지원사가 투표를 보조할 수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선거사무원들이 모르기도 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가지 못하는 곳에 사전투표소가 설치되는 일도 있었다. 선거 때마다 선관위에서 장애인단체를 돌며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선거사무원에게까지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실시하고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등이 투표할 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숙지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들의 투표 의지는 점점 커지는 추세다. 김 연구원은 “투표하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복지나 예산에서 차별받게 되기 때문에 투표를 하러 가는 것”이라며 “투표를 했다고 커뮤니티에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서 비장애인으로부터 수모를 겪거나 선거사무원과 분쟁이 얼어나는 일이 많다. 장애인들 스스로가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이러지 않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 이번 대선에서는 한 표만 투표했지만, 6월1일 지방선거에는 지방자치단체장, 시·군 의원 등 투표해야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꼭 개선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예지 의원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선거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선거 정보 접근에 있어 장애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편의가 의무적으로 제공돼야 한다”며 “장애인의 선거권은 헌법 제24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다. 다양한 입법 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선거권이 완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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