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으로 '공아(空我)'를 즐기는 '시민 마라토너' 신형식씨 [주목 이 사람]

마라톤 인생 도전은 '무욕무심'인 '공아(空我)'의 즐거움을 안겨 준 인생 최대 선물  
정신과 육체의 '평행(균형과 조화)'을 유지하려면 '문무(고전과 마라톤) 공부' 겸비해야

입력 2022-03-18 10: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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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으로 '공아(空我)'를 즐기는 '시민 마라토너' 신형식씨 [주목 이 사람]
제123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해 완주한 이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달리는 것보다 걷는 것이, 걷는 것보다 앉는 것이, 앉는 것보다 눕는 것이 편안하다. 이는 자연의 법칙이다.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바람처럼 '빠르기'보다는 여유가 있는 '느리기'를 좇는 일명 '느림의 미학'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공직을 퇴직한 후 '이순(耳順)'의 나이에도 '느림'을 거부하고 '빠름'에 도전하고자 20년째 마라톤을 즐기고 있다면 그 사연이 궁금하다.

일명 '시민 마라토너'를 불리는 신형식(64)씨. 

신씨는 국내외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하프와 풀코스를 100회이상 소화했다. 

이런 삶의 궤적 덕택에 그는 지역에서 '사족'이 붙지 않는 '뛰는 사람'으로 통한다.

신씨는 '자기를 잊되 잃지는 않겠다'는 이른바 '공아(空我)'를 즐기는 마라토너다.

'공아(空我) 마라톤'에 빠진 신씨를 지난 17일 만나 마라톤에 매료된 사연과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숙취와 스트레스 해소에 건강도 지킨다는 이른바 '1타 3피'를 추구하고자 뛰기 시작해 
'심장 부정맥' 진단을 받고 의사의 권유로 마라톤에 도전한 것이 인생 취미로 자리잡아  

신씨는 마라톤 선수가 아닌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김해시청에서 36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지난 2017년 12월 서기관(국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그는 30대 한창나이였던 1997년도 무렵 마라톤에 입문했다.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뭔지"를 묻자 "어릴 때부터 뛰는 걸 좋아했다. 김해시청 비서실에 근무할 당시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해 이를 해소하려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 평소 '음주'를 즐기다 보니 간 기능이 나빠졌을 것 같아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는데 뜻하지 않게 '심장부정맥'이란 진단을 받았다. 의사와 상의 끝에 심장 기능을 강화할 유산소운동으로는 마라톤이 가장 좋다는 권유를 받고 마라톤에 도전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마라톤으로 '공아(空我)'를 즐기는 '시민 마라토너' 신형식씨 [주목 이 사람]
2001년 출전한 부산 마라톤대회에서 골인 직전의 모습

신씨의 마라톤 인생은 전국적으로 마라톤 붐이 일던 1998년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부산 다대포 마라톤대회에 처음 출전한 것을 신호탄으로 공직을 퇴직할 때까지 20년이상 국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하프와 풀코스를 100회이상 소화했다. 

그의 마라톤 인생에는 또 다른 요인이 숨어있다. 다름 아닌 '마라톤 기록'이다. 

"통상적으로 3000여명 정도가 참가하는 마라톤대회에 출전하면 기록은 언제나 100위권역에 진입해 '시민 마라토너'로서 자신감과 마라톤 만족도가 한층 높아져 마라톤을 더 선호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마라톤에 빠진 그는 2021년에는 김해시청 마라톤 동호회를 직접 결성했다. 

"이후 전국 마라톤대회에 시청 동호회원들과 함께 출전해 마라톤 인생을 즐기던 중 심장부정맥까지 완치했다"고 했다.

"6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마라톤을 왜 계속하느냐"는 물음에는 "뛰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마라톤대회 참가 회수의 증가에 비례해 그의 마라톤 눈높이도 점점 높아졌다.

신씨는 코로나 펜데믹 전후인 2019년 4월에는 미국서 개최한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완주했다.

보스턴마라톤대회 출전은 그가 공직을 퇴직하기 전에 꼭 이루고 싶었던 목표중 하나였다.

마라톤으로 '공아(空我)'를 즐기는 '시민 마라토너' 신형식씨 [주목 이 사람]
123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결승점에 골인하는 모습

그는 공직에 있을 때 퇴직 전까지는 보스턴마라톤에서 베를린과 뉴욕, 런던 마라톤까지 세계 유수의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는 야무진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코로나 장기화로 이들 대회가 모두 취소돼 실망감도 컸다"고 했다.

신씨는 "마라톤대회 취소로 자칫 꿈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내년부터 다시 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며 '마라톤 열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마라톤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날리고 '무욕무심'을 추구하는 데 뛰는 것만큼 좋은 운동은 없는 것 같다. 마라톤은 파트너가 필요 없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 중 최상의 운동"이라고 호평했다.

여느 사람들처럼 단순히 건강 관리를 위해 뛰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자신을 잊지만 잃지는 않겠다'는 '공아(空我) 마라톤'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셈이다. 

공직 후배들과 소통하고 나이 든 '꼰대' 소리 듣지 않으려면 선비 정신인 '문무' 공부를 겸비해야
마라톤이 육신의 건강을 지키는 양식이라면 고전(한문) 공부는 영혼을 맑게 하는 마음의 양식

신씨의 또 다른 '마력'은 마라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고전(한문)' 인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그에게 '고전 공부'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진화시키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신씨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개인주의 세태에서는 누군가는 정신적 스승으로서 역할을 할 사회적 '시민 선비'들이 많이 배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 선비들이 고전 공부에 심취했듯이 그도 고전을 통해 '시민 선비'가 되고자 한다.

"어려운 고전 공부를 왜 하는가"는 물음에는 "6살 때 조부님에게서 천자문을 배웠다. 어린 시절 이런 인연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이후 공무원을 하면서 한자 1급자격증과 한문지도사 자격증, 서당 자격증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는 "공직을 퇴직한 후 '서당'을 운영하고 싶었지만 마치 '장사꾼'처럼 보여 중단했다. 이후 생활속 고전 책을 낼까 싶어 준비도 했으나 좀 더 공부를 숙성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일단 미뤄 둔 상태"라고 말해 '현대판 시민 선비'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다.

신씨는 공직 퇴직 후 '고전'에 대한 미련을 풀고자 또 다른 제2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양산과 청도지역의 '사랑방 강좌'에 초청받아 수강생들에게 '생활 속 고전'을 가르치며 고전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고전 공부의 장점에 대해서는 "고전을 공부하면 공직자들이 청렴 공부를 별도로 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옛 선현들의 지혜가 녹아있는 '고전'을 공부하는 자체가 곧 청렴 교육"이라며 공직 후배들에게 '고전'을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건 사고들로 얼룩진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도 결국 고전 공부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 고전을 공부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욕심도 줄어들고 남을 배려하는 봉사정신까지 자연스럽게 생겨나 사회를 밝게 하는 최상의 공부"라며 '고전 예찬론'을 폈다.

몸 관리를 위해서 마라톤을, 마음공부를 위해서 고전을 공부하는 신씨의 이른바 '마라톤+고전공부'는 마치 두 나무의 뿌리에서 한 나뭇가지로 연결된 '연리지(連理枝)'를 연상하게 한다.

'마라톤과 고전공부'란 '문무양용'의 '하이브리드 장비'를 장착한 그는 "공직을 퇴직하고도 거의 매일 아침마다 김해운동장을 30바퀴(12km)씩 달리며 몸을 연단하고 있다"며 체력의 건강성을 과시했다.

그는 "고전 중 '혼자 서 있어도 두렵지 않고 세상과 떨어져 있어도 고민하지 않는다'는 주역의 '독립불구(獨立不懼) 둔세무민(遯世無悶)'이란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고 소개해 스스로 이 경지에 오르고 싶은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신씨는 "기회가 되면 '내가 보는 고전'이란 책을 꼭 출간하고 싶다"며 '시민 선비'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고전'에 꽂혀 '시민 선비'가 되고자 한 그가 인생 후반전에 출간할 '고전'이란 책 속에 어떤 생활 속 '천자문'을 담아낼지 궁금하다.

박석곤 기자 p2352@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