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행동주의 확산…자본시장 촉매제 되나

기사승인 2022-04-29 06: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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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행동주의 확산…자본시장 촉매제 되나
그래픽=이정주 디자이너
최근 주주가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가치를 높이는 주주 행동주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를 지지하는 소액주주들이 늘면서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지난 26일 SK에 주주 서한을 보내 자사주 매입 소각을 요구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가치투자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접목한 펀드를 운용하는 하우스다. 국내 가치투자 1세대로 꼽히는 이채원 의장이 이끌고 있다.

서한에는 SK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사주를 소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급격한 구조변화에 따른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SK는 최근 적극적인 자본 운용을 통해 단순 지주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영역을 개척하고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투자회사로 구조 혁신에 성공했다”면서도 “SK의 뛰어난 투자성과는 여전히 시장으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는 2017년 이후 연 11.5%의 주당순자산가치(BPS) 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세계 최고의 투자회사로 불리는 버크셔해서웨이의 BPS 성장률(연 12%)에 육박하는 수치다.

하지만 SK의 주가는 여전히 5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고질적인 지주사 디스카운트와 자사주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을 우려하는 시선 때문에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사주의 10%에 해당하는 180만주(시가 약 4600억원 수준)를 소각해야 하는 것이다.

소액주주들의 지지도 올라가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 환경개선을 직접 제안하는 행동주의 펀드는 과거 먹튀라는 오명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소액주주들이 늘면서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는 등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열린 SM엔터테인먼트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후보가 감사로 선출됐다. SM 창업자 이수만 총괄프로듀서를 견제하기 위해 소액주주인 자산운용사 얼라인파트너스는 곽준호 후보를 주주제안 했다.

그간 주주들은 회사 가치 저평가의 원인으로 SM과 이 총괄프로듀서 개인회사 간 용역 계약을 꼽았다. SM은 매출액의 최대 6%를 라이크기획에 인세로 지급해야 한다.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SM이 라이크기획에 지급한 금액은 240억원이다. SM이 지난해 기록한 영업이익(675억원)의 3분의 1을 넘어선 금액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용역 계약으로 인해 SM의 주가 수익률이 부진하고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영업이익률이 업계 최하위를 맞았다”면서 “SM 이사회는 이 총괄 프로듀서의 친척과 동창, 장기근속 사내 인사로 구성됐다. 감사 1명이라도 독립적인 인사로 선임해야 한다”고 주주제안의 이유를 밝혔다.

얼라인파트너스의 지분은 특수관계자를 합쳐 0.91%에 불과했지만 주주 제안한 안건은 다른 주주와 자문사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국내 1호 행동주의 펀드 KCGI는 최근 한진칼(대한항공)과의 경영권 분쟁을 종료했다. 호반건설이 KCGI가 보유한 지분 940만주를 전량 인수하면서다.

KCGI는 한진칼 지분 매각에 대해 “한진칼에 대한 투자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위한 여건이 성립됐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 3년 반 동안 한진그룹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재무·수익구조가 개선됐다는 평가다.

개인 투자자가 직접 기업에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슈퍼개미’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최근 삼성물산에 주주 서한을 보냈다. 자사주를 소각해 주가를 관리해달라는 요청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 주식 27만3439주를 가진 박 대표는 ‘주식 농부’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주 서한에서 삼성물산에 대해 “주주들은 오랫동안 주가 저평가에 직면해 있다”면서 “변화를 위한 첫걸음은 바로 자사주 전량 소각이다. 이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쓰이도록 마련해 두었던 곳간을 비우고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주주 행동주의는 기업의 가치가 제값을 찾도록 목소리를 낸다. 기업의 가치가 오르면 주가도 올라 소액 주주들의 이득으로 돌아온다.

주주 행동주의가 더 커지려면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이채원 의장은 “한국 시장이 저평가된 것은 일반 주주를 위한 투자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탓”이라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상법 382조 3항 ‘이사회 충실의무’에서 ‘이사는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 의장은 “현재 상법 382조 3항에 명시된 내용을 ‘회사와 주주를 위해 일한다’라고 조항을 바꾸면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의장은 인수합병(M&A)을 추진할 때 시가합병배정이 아닌 공정가로 합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A사와 B사가 합병할 때 A사의 주식을 시가로 싸게 평가하면 이를 가진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셈이다”라면서 “미국에서는 법원에서 회계법인 한두 곳에 의뢰해 공정 가치를 구한다. 가치를 가격으로 환산해 이 금액으로 합병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대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 이익의 독점을 줄이기 위한 ‘의무공개매수제도’ 역시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M&A 목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때 일정 비율 이상의 매수를 의무화하는 제도다. 이는 지배주주의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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