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첫 질병청장, 영욕 뒤로하고 퇴장 

정은경, 4년 10개월 만에 방역 수장 자리에서 물러나

기사승인 2022-05-18 13: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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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7일 백경란 성균관대 의대 교수를 새 정부 첫 질병관리청장으로 임명했다. 자연스레 지난 5년간 방역 사령탑에 있었던 정은경 前 질병청장이 물러났다. 정 전 청장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방역일지를 써 온 사람이다. 그런 만큼 그의 재임기간을 되돌아봤다. 

대한민국 첫 질병청장, 영욕 뒤로하고 퇴장 
질병관리본부장으로 임명된 후 처음으로 국정감사에 나선 정은경 전 청장. 2017년 10월.   사진=박효상 기자

대한민국 초대 질병관리청장…K-방역 영웅

어제(17일) 퇴임한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은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에서 일한 이력이 있는 의사다. 1995년 질병관리본부(당시 국립보건원)에 들어온 뒤에는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 질병관리본부 만성질환과장, 질병예방센터장, 긴급상황센터장 등을 거쳤다. 2017년 7월에는 질병관리본부장으로 승진해 첫 여성 질병관리본부장이 됐다. 

질병관리본부장 재임 중이었던 2020년 9월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됐다. 정 전 청장은 대한민국 초대 질병관리청장을 맡았다. 중앙방역대책본부장도 여전히 그의 몫이었다. 

질본이 질병청으로 승격하는 데에는 정 전 청장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그는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1월 질병관리본부의 중앙방역대책본부가 확대 운영되면서 브리핑을 통해 국민들에게 코로나 관련 소식을 전했다. 대구·경북에서 확진자 수가 급증하자 머리 감을 시간도 아끼겠다며 단발을 했다. 이때 3T(검사, 추적·격리, 치료) 전략을 바탕으로 하는 K방역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드라이브 스루, QR코드 기반 전자출입명부, 생활치료센터 등의 방역체계를 구축해 세계의 주목도 받았다. 이 와중에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이 공개되면서 검소한 씀씀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질수록 흰머리가 늘고 얼굴이 홀쭉해지면서, 사람들은 정 전 청장의 과로를 걱정했다. 이런 일화들이 조명받으면서 질본이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20년 9월 11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오송 질병관리본부 청사 상황실을 찾아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정 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문 전 대통령이 청와대 밖에서 정부 요인의 임명장을 준 것은 처음이었다. 

질병관리청은 명실공히 감염병 관리·통제 컨트롤타워가 됐다. 정 초대 청장은 취임 이후에도 빈틈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2020년 12월 골절로 인해 충북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는데, 입원 6일 만에 ‘수도권 코로나19 상황 점검회의’에 깁스를 한 채로 참석했다. 2021년 1월부터는 ‘전 국민 대상 백신 접종’이라는 과제를 이끌면서 포털업체와 협력해 ‘잔여백신 당일예약’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상반응 우려로 백신 접종률이 지지부진하자 백신 안전성을 적극 홍보하고, 신고 및 보상체계를 확립했다.

이러한 활약에 국내는 물론 외신들도 반응했다. 미국 블룸버그신문에서는 정 전 청장에게 ‘바이러스 사냥꾼’(Virus Hunter)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2020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100인에 들어갔고, 같은 해 BBC가 뽑은 ‘올해의 여성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 첫 질병청장, 영욕 뒤로하고 퇴장 
질병관리청장 임명 이후 첫 국정감사에 임하고 있는 정은경 전 청장. 2020년 10월.   사진=박효상 기자

“정치 방역”… 갖은 비판 중심에 서기도

박수만 받은 것은 아니다. K-방역의 아이콘이었던 만큼, 문재인 정부 코로나19 방역정책에 대한 비판도 정 청장을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신 확보와 예약 관리에서 당국의 미흡함이 드러났을 때가 있었다. 거리두기 완화 계획을 알린 후 확진자가 폭증했을 땐 “방역당국이 너무 일찍 희망적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특히 지난해 말 이른바 ‘백신패스’로 불린 방역패스가 시행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빗발쳤다. 그럴 때마다 정 전 청장은 코로나19 브리핑을 통해 사과를 했다. 

대선 국면이 다가올수록 온갖 음모론이 득세했다. ‘정치 방역’ 공세도 이어졌다. 정 전 청장은 임기 마지막 날인 17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정부 측 제안을 설명하는 것으로 공식 업무를 마쳤다. 그는 이날도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정책이 ‘정치 방역’이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정 전 청장은 “과학방역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임사에서 “질병관리청은 국민 건강과 사회 안전을 위해 존재하며, 과학적 전문성을 핵심으로 하는 중앙행정기관”이라고 강조하며 정치 방역은 없었음을 에둘러 밝혔다.

“오늘 저는 질병관리청장 소임을 마칩니다. 지난 4년 10개월간 기관장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늘 든든하고 행복했습니다.(중략) 2년 이상 지속되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방역과 예방접종에 적극 참여해주신 국민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보건의료인과 방역 담당자들의 헌신과 노고에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부족함이 많았지만, 항상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는 코로나19 방역 최일선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덕분에 챌린지’ 수어를 하며 질병청을 떠났다.

신승헌 기자 ssh@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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