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번호 어떻게 알았지’...‘띠링’ 스팸 수준 선거 문자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마구잡이식 번호 수집
지인 연락처 넘기기·모임 연락망 공유 천태만상
“안 되는 거 알지만 일단 이겨야”
연고 없는 지역 후보자 홍보 문자 받는 사례도

기사승인 2022-05-27 06: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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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번호 어떻게 알았지’...‘띠링’ 스팸 수준 선거 문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를 나흘 앞둔 23일 서울 중구 청계천에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설치한 투표 참여 독려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1 서울 은평구에 사는 30대 직장인 박진수씨는 하루에만 수십 통의 선거 관련 문자를 받는다. 전혀 연고가 없는 충남도지사 선거 후보자 홍보 문자부터 대전 유성구 후보자까지 지역도 다양하다. 처음에는 의미 없이 넘겼지만, 이러한 문제가 선거기간 내내 계속되면서 문자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한 적이 없는데 어디서 어떻게 알고 연락한 건지 이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2 경기도 수원에 사는 취업준비생 최준원씨도 마찬가지다. 최근 스펙쌓기 위해 토익 공부를 시작하면서 매일 도서관을 찾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문자에 짜증이 난다. 알림을 무음으로 해놓을 수도 있지만 면접 등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고 있어 마냥 꺼놓을 수만 없다. 너무 화가 나서 개인정보법 위반이 아니냐고 따져 묻기 위해 신고 문의했지만, 복잡한 절차에 그냥 체념했다.


6·1 지방선거를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가운데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후보 간의 선거 홍보전도 과열되고 있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문자메시지(SMS, 이하 ‘문자’)를 통한 홍보가 커지는 가운데 시민은 때아닌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기가 사는 지역에 한정해 선거 관련 문자가 발송됐지만, 얼마 전부터는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 후보들의 문자까지 전해진다. 한 두통 문자 정도야 넘길 수 있지만, 치열해지는 선거전만큼이나 문자 수신이 빈번해지면서 스팸 문자로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거 캠프 관계자는 “선거판에서 마구잡이식 번호 수집과 문자 발송은 이미 일상화된 일”이라며 “개인정보에 민감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 캠프에서도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을 인지하지만, 눈앞에 닥친 선거에서 일단 이기고 보자는 생각에 대부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뿐 아니라 반대쪽에서도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더 걱정 없이 번호를 수집하고 뿌려댄다”고 부연했다.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 후보자 선거 문자가 수신되는 사례를 언급하자 “선거 캠프에서는 그 지역 유권자들의 번호를 수집해서 집중적으로 문자 홍보전략을 펼치려고 하지만, 번호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개인 휴대전화에 담긴 지인 연락처부터 각종 모임 연락처, 주고받은 명함까지 마구잡이로 수집되고 활용된다”며 “다른 지역 유권자는 빼고 선별해서 문자 발송하는 게 맞지만, 그만큼 비용과 수고로움이 크고,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지도 몰라 그냥 단체 발송해버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내 번호 어떻게 알았지’...‘띠링’ 스팸 수준 선거 문자
지역을 불문하고 보내지는 선거홍보 문자들.   사진=제보자

공직선거법, 선거 문자 ‘개인정보 침해’ 방지 규정 ‘無’
개인정보침해센터 신고 가능하나 절차 ‘복잡’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선거기간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행위는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한다. 업체를 통한 자동 문자 발송 시스템을 이용할 시 1인에게 최대 8번까지만 보낼 수 있다. 자동발송이 아닌 개인 휴대전화로 보낼 땐 횟수 제한이 없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자동정보통신을 통한 문제 발송은 수신 거부를 명시해야 하고 횟수 제한이 있지만, 자동발송이 아닌 경우에는 횟수 제한이 없다”며 “공직선거법에는 개인정보 수집 방법에 대한 규정이 없어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해 사용하는 행위를 선관위에서 별도로 규제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문자를 보내는 횟수가 아닌 개인정보 침해 우려다. 지역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발송된 문자는 시민의 개인정보가 동의 없이 무작위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정보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선거운동이란 명목으로 간과하긴 어렵다.

‘개인정보보호법’을 소관하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구제 방안을 갖고 있긴 하다. 인터넷진흥원이 운영하는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를 통해 피해 사실을 입증해 처벌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간단치 않다. 우선 발신처에 직접 연락해 어떠한 경로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취득했는지 묻고 제대로 답하지 못할 때는 이를 근거 삼아 센터에 접수할 수 있다. 이때 녹취자료 등을 포함해 신고해야 한다.

선거운동 명목으로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활용할 경우에는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고 법조계는 경고했다.

법무법인 스퀘어 허광 변호사는 “개인 휴대 전화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그 처리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의 개인정보만을 적법하고 정당하게 수집해야 하고, 그렇게 수집한 정보라 하더라도 목적 외 용도로 활용해선 안 된다”면서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처리와 관련하여 정보 주체의 동의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어 만일 정보 주체의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경로로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경우 개인정보법위반으로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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