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어도 못 한다…분리수거 사각지대 원룸촌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2-05-31 17:3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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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어도 못 한다…분리수거 사각지대 원룸촌 [쿠키청년기자단]
서울 광진구 한 빌라 입구 옆 건물 외벽에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 부피가 큰 종이 상자는 골목을 침범할 정도다.   사진=김시원 쿠키청년기자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한 자취촌. 이곳 30채의 빌라 중 18곳에는 쓰레기 분리배출 시설이 없다. 분리배출 시설이 없는 건물 앞에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쌓인 쓰레기의 높이와 면적은 어림잡아 승용차 한 대. 건물 외벽에 위태롭게 기댄 쓰레기는 바람이 불면 무너질 듯 보였다. 비닐에서 쏟아져 나온 쓰레기가 길에 나뒹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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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비닐 안에 페트병, 비닐, 종이, 플라스틱이 등이 섞여 있다.   사진=김시원 쿠키청년기자
대부분의 인근 주민은 생활 쓰레기를 일반, 재활용, 음식물 세 가지로만 분리해서 배출하고 있다.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는 구분되지만, 소재별 분리는 거의 되지 않는 것이다. 주민이 온갖 재활용이 뒤섞인 쓰레기를 내놓으면 건물 관리자는 이것들을 다시 큰 비닐에 모은다. 종이, 페트병, 캔 등을 전혀 분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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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배출 시설 뒤에 있는 비닐에도 여러 쓰레기가 뒤섞여있다.   사진=김시원 쿠키청년기자
간간이 분리배출 시설이 마련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이 이틀간 배출하는 쓰레기양을 감당하기에는 용량이 부족해 보였다. 소재도 세분되어 있지 않았다. 그 탓인지 보관시설 옆에는 온갖 종류의 재활용 쓰레기가 뒤섞여 담겨있었다. 종이, 플라스틱, 라벨을 제거한 페트병을 분리하고 있는 곳은 30곳 중 겨우 한 곳이었다.

청소 대행업체는 일주일에 세 번 골목을 돌며 쓰레기를 수거한다. 업체가 수거한 쓰레기는 재활용 선별장으로 간다. 이곳에서 재활용 쓰레기들을 일차적으로 모아 선별한 후, 최종 재활용 업체로 보낸다.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가 컨베이어 벨트 위로 쏟아지면 작업자가 비닐, 페트병, 알루미늄 캔, 파지(종이), 플라스틱 등을 선별한다. 광진구 재활용 선별업체 쓰레기를 관리하는 미주자원의 관계자는 “주택이나 빌라에서 배출하는 재활용 쓰레기는 다 섞여 있어서 (분류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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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긴 늦은 시간, 청소업체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김시원 쿠키청년기자
분리수거 없이 선별장으로 보내지는 재활용 쓰레기도 문제지만, 주민이 겪는 불편도 심각하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자취 중인 김현경씨는 “이전에 살던 곳은 건물 앞 전봇대에 모든 쓰레기를 줄지어 놓았다. 바람이 불면 쓰레기가 건물 주차장을 잠식하기도 했다. 시설이 없다 보니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기 위해 쓰레기를 담을 봉투를 구하는 것도 번거로웠다”고 말했다.

거주지역에 분리배출 시설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폐기물관리법시행규칙에 따르면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은 재활용보관시설 또는 용기를 설치해야 한다. 동별 100가구당 1조의 시설을 설치해야 하며, 건물 1동에 100가구 미만이어도 1조 설치가 의무다. 수량은 5개의 함(종이류, 금속류, 유리병류, 플라스틱류, PET 류)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는 2015년에 개정된 내용으로,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설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설치 대상에서 벗어난 건물들은 1층의 남는 공간을 대부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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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옆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사진=김시원 쿠키청년기자
재활용 쓰레기를 비닐에 섞어 버리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폐기물관리법시행규칙은 ‘보관시설 또는 용기의 용량을 충분히 하여 폐기물이 넘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한다. 다만, 자치구의 지역적 여건을 고려하여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그 구분·설치 기준을 달리할 수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 사무국장은 “(주택가에서는 쓰레기를) 집 앞에 내놓아야 하는데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단독주택의 경우에는 투명 페트병을 따로 분리하는 것도 잘 안 되고 있다. 정책을 알리고 시민의 참여를 높일 방안이 필요한데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서울시 자치구의 재활용 정거장 설치 사업의 경우 “재활용 쓰레기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며 “배출된 쓰레기를 판매하고 이익을 얻는 수익구조가 없어져서 정거장 설치 참여율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분리배출함을 설치할 장소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설치한 이후 관리가 필요한데 관리자가 없으면 되레 무단투기 장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화양동에서 자취 중인 김예원씨는 “배출 요일, 방법까지 정해져 있긴 하지만 안 지키는 사람이 많다. 단속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관리·감독은 건물주의 재량에, 분리배출은 거주민의 양심에만 맡겨진 환경이다. 재활용 선별업체 관계자 또한 “(빌라촌이나 주택가에) 분리수거함이 생기면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그보다 재활용 쓰레기 배출에 대한 인식부터 제대로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시원 쿠키청년기자 svv0316@gmail.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