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달려라 방탄

기사승인 2022-06-18 06: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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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달려라 방탄
그룹 방탄소년단. 빅히트 뮤직

무(無)로 돌아갔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옛 투 컴(Yet To Come)’ 뮤직비디오는 줄곧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을 배경으로 한다.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지도, 다른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모두 아무 색 없는 흰 옷을 입고 앉아 있다. 특별한 안무나 합을 맞춘 제스처도 없다. 멤버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저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아무 것도 아닌 상태로 존재할 뿐이라는 듯 노래를 부를 뿐이다. 마치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찾은 것처럼.

사실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다. 방탄소년단은 ‘옛 투 컴’ 가사에 자신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그 어느 때보다 직설적으로 담았다. “언젠가부터 붙은 불편한 수식어 최고란 말은 아직까지 낯 간지러워”라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현 위치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인의 심경을 털어놓는다. 거짓말이라고 할 걸 알면서도(You’ll say it’s all a lie) “난 변화는 많았지만 변함은 없었다 해”라고 이전과 그대로인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Best moment is yet to come)라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확신한다. 최근 몇 년 간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그룹에 머문 시선을 자신들 개인에게 돌린 후, 다시 미래를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뮤직비디오엔 사실 팬들만 알 수 있는 상징이 가득하다. 2015년 공개한 ‘화양연화 on stage : prologue’ 영상에서 손을 동그랗게 말고 바다를 보던 포즈를 정국이 사막에서 똑같이 재현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식이다. ‘봄날’, ‘피 땀 눈물’, ‘런(RUN)’ 등 과거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공간과 소품, 포즈를 계속해서 소환한다. 데뷔곡 ‘노 모어 드림(No More Dream)’에 등장했던 노란색 버스로 달려가 올라타는 후반부에서 멤버들의 표정은 반가움과 환희로 가득 차 있다. 방탄소년단과 성장을 함께해 온 팬들은 ‘옛 투 컴’ 뮤직비디오를 보고 지난 시간들이 하나씩 떠올라 울컥했다는 댓글을 연이어 달았다.

다시, 달려라 방탄
‘옛 투 컴(Yet To Come)’ 뮤직비디오 캡처

‘옛 투 컴’이 포함된 방탄소년단의 앤솔로지 앨범 ‘프루프(Proof)’의 구성은 방탄소년단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더 명확히 담고 있다. 지난 13일 유튜브로 공개된 ‘프루프 라이브’(‘Proof’ Live) 영상에서 직접 설명했듯, ‘프루프’는 지금까지 방탄소년단의 일대기를 담은 CD와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CD와 팬들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CD까지 총 3장으로 구성됐다. 다른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방탄소년단, 멤버들 자신들이 아는 방탄소년단, 그리고 팬을 위하는 방탄소년단까지 그동안 작업한 48곡을 세 가지 시선으로 설명했다. 단체 활동을 멈추고 개인 활동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내다보는 이정표 같은 앨범이다.

방탄소년단은 ‘옛 투 컴’과 함께 수록된 신곡 ‘달려라 방탄’과 ‘포 유스(For Youth)’에서 데뷔 전 살았던 논현동을 세 번이나 언급한다. “가끔 그날의 꿈 꿔. 몸서리치다 눈 떠”라며 악몽으로 기억하기도, “10년 전 논현동을 서성이던, 너무 쉽게 울었고 너무 쉽게 웃던 때”라고 아련한 어린 시절로 기억하기도 한다. ‘옛 투 컴’ 뮤직비디오 속 노란색 버스처럼 방탄소년단에게 논현동은 아무 것도 없던 그 때로 돌아가게 하는 열쇠다. 방탄소년단은 누구도 올라서지 못한 최고의 순간 대신 맨 처음 아무 것도 없이 출발했던 과거를 계속해서 소환하며 되새긴다. 그리고 앞을 본다. 방탄소년단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개인 활동 시작은 그들이 직접 세운 새로운 이정표의 첫 걸음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래야 했던 방탄소년단의 선택은 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까. “우리가 걷는 이 길이 모두 다 길이 될 테니”라는 가사와 더없이 편안해진 ‘옛 투 컴’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의 표정은 자신들의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힌트일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달리는 방탄소년단을 만날 시간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