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기간 늘린다고?… 있는 것도 못 쓰는데

육아휴직 1년→1년6개월 확대… 배우자 출산휴가도 연장
한국 육아휴직 기간, OECD 회원국 대비 긴 수준
전문가들 “육아휴직 기간 늘리기보다 제도 실효성 높여야”

기사승인 2022-06-30 05: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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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기간 늘린다고?… 있는 것도 못 쓰는데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저출생 대책으로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이를 두고 현장에선 노동 현실에 맞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장에서 육아휴직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은 탓에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6일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저출생 대응 방안으로 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현행 10일인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도 연장할 방침이다. 

그러나 육아휴직 기간 연장이 저출생 대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육아휴직 기간은 이미 세계적으로 긴 편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대 세계정책분석연구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세계 각국이 법으로 보장하는 육아휴직 기간은 여성, 남성 각각 평균 18주와 16주다. 한국 여성은 세계 평균의 1.8배, 남성은 3.3배 긴 휴직 기간을 이미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육아휴직 기간을 연장하는 데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육아휴직 제도를 실제로 쓰기 어렵다는 데 있다. 2020년 고용노동부 실태조사 결과 육아휴직제도 자체는 41.4%가 ‘잘 알고 있다’고 답변했지만, 제도의 활용 가능 여부에 있어서는 절반 이상인 52.7%가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거나 전혀 활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전혀 활용할 수 없는 사업체의 주요 요인은 직장 분위기와 문화였다.

실제로 민간기업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0%대에 그쳤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같은 해 6월 기준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0.42%로, 공무원 4.5%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 부모들도 육아휴직 기간 확대를 마냥 반길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을 쓰기가 만만치 않은 탓이다.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는 A씨(32‧여)는 “회사 규모가 작다보니 육아휴직을 쓰면 업무 공백이 크다. 한 명이 육아휴직을 가면 남은 팀원들의 업무량이 늘어나 눈치도 보인다”며 “특히 돌아오면 내 자리가 없을 것 같아 불안해 육아휴직은 그림의 떡”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결혼식을 올린 B씨(29‧여)는 “회사 선배가 육아휴직을 쓰고 불이익을 받은 경우를 봤다. 그런데 육아휴직 때문이라고 증명할 방법이 없어 억울해 했다”면서 “일에 욕심이 있는 편이라 남편과 아이를 낳을지 말지 상의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기업에 근무 중인 C씨(33‧남)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육아휴직을 쓰는 남자도 있긴 하다. 다만 승진 누락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며 “과장은 달고 육아휴직을 써야 안정적이라며 출산 계획을 미루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는 것보단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육아휴직 연장과 함께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원칙적으로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는 것을 반대한다”며 “육아휴직이 길어질수록 직장 복귀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경력단절로 이어질 가능성 높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육아휴직 기간 자체는 OECD 회원국 대비 높은 수준이다. 육아휴직을 연장하기 보단 육아기 근로제도 단축제도 같은 탄력근무 활성화를 통해 직장 복귀가 가능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육아휴직 제도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컨설팅이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기업들이 앞장서서 육아휴직 기간을 늘렸다. 가족친화경영을 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지속가능경영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인식을 가지도록 하는 지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육아휴직을 못 쓰게 압박하는 등 기업 갑질 근절을 위해 처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현재 육아휴직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육아휴직을 이유로 불이익을 줬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근로자한테 해고나 그밖에 불리한 처우를 하면 처벌하는 규정은 있지만 그 원인이 육아휴직인지 아닌지 입증하기 힘들다. 그래서 처벌규정을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육아휴직을 규정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대해 신청 당사자인 근로자가 입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불이익을 신고했을 때 사업주가 육아휴직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게끔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식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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