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가 수지에게 남긴 것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7-05 06: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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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가 수지에게 남긴 것들 [쿠키인터뷰]
배우 수지. 쿠팡플레이

“유미를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욕심 났죠.” 이렇게 선명한 욕심을 드러낸 건 처음이다. 배우로서 도전해볼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목표로 돌진했고, 이뤄냈다. 쿠팡플레이 ‘안나’로 첫 단독 주연 작품을 선보인 배우 수지의 이야기다. 

‘안나’는 지난달 24일 1, 2화가 공개되자마자 곧장 화제의 중심에 섰다. 작품의 재미와 함께 언급된 건 수지의 연기다. 수지는 극 중 유미에서 안나로 이름을 바꾸고 살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지난 29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수지는 뜨거운 반응에 “오히려 놀랐다”며 소감을 전했다. 행복하게 웃는 얼굴이 환히 빛났다. 부담을 이겨내고 얻어낸 값진 성과에 어느 때보다도 기뻐 보였다.

“부담감이 커서 떨쳐내려고 더 노력했어요. 결과나 평가를 너무 신경 쓰지 않으려 했죠.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안나’에만 집중했어요. 좋은 반응들이 많아 즐겁지만 이런 분위기가 아직 낯설게 느껴져요. 이렇게 칭찬을 많이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거든요. 보상받는 기분이면서도,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안나’가 수지에게 남긴 것들 [쿠키인터뷰]
쿠팡플레이 ‘안나’ 스틸컷

작품과 캐릭터를 위한 수지의 노력은 대중에게도 통했다. 1, 2회 공개 직후 “수지의 인생작”, “수지가 곧 유미였다”는 극찬이 잇따랐다. 수지는 유미의 작은 감정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표현해냈다. 캐릭터 해석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다. 그는 ‘안나’를 위해 심리상담가에게 유미의 감정 상태에 대해 묻곤 했다. 그때 깨달은 것들을 고스란히 연기에 쏟아부었다. 

“때로는 숙제 같았어요. 유미는 공감하기 쉬웠지만, 안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거든요. 안나의 진심이 헷갈리는 순간 역시 있었고요. 그럴 때면 상담 선생님께 유미의 이런 심리가 진심일지 여쭤보곤 했어요. 제가 느끼는 감정이 맞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모호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저의 혼란이 안나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유미 시점으로 일기도 썼어요. 나중엔 그냥 수지의 일기가 됐지만요. 하하. 그래도 연기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유미는 말보다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그래서 수지는 유미로서 상황을 계속 곱씹으려 했다. “당시엔 괜찮았는데 집에 가서 자려고 누우면 생각나는 것들 있잖아요.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곱씹는 사람이 유미이자 안나라고 생각했어요.” 수지는 유미의 주요 감정 중 하나를 불안으로 잡았다. 자기 생각에 빠져 불안에 허덕이는 사람. 그렇게 수지는 차근차근 자신만의 유미와 안나를 만들어갔다.

‘안나’가 수지에게 남긴 것들 [쿠키인터뷰]
쿠팡플레이 ‘안나’ 스틸컷

“유미는 보이는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에요. 늘 불안하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유미와 안나로서 느끼는 불안을 표현하기 위해 제가 가진 불안을 들여다봤어요. 불안을 끄집어내서 표현해야 한다니, 새삼 연기자가 참 재밌는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죠. 저 역시도 늘 불안을 느껴요. 인터뷰를 나누는 이 순간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느끼는 불안이 어떤 종류고, 유미의 어떤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생각했어요. 제 자신에게도, 유미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죠.”

수지는 다각도로 유미 역을 준비했다. 수어 연습은 물론 결혼식 장면이나 의상 콘셉트를 정하는 데도 열을 올렸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유미를 연기할 땐 재미도 느꼈단다. 주차장 안내 요원일 때가 가장 영혼 없어 보였다는 기자의 말에 수지는 “내가 보는 내 얼굴이 딱 그 모습”이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뭔가를 표현하려 하기보다는 현실로 느껴지길 바랐어요. 피로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던 시간이었죠.” 유미를 연기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본 그는 치열했던 어제와 마주했다. 멈추지 않고 달려왔던 나날들. 수지는 이제 여유를 안다. 

“예전의 저를 생각하면 안쓰러워요. 너무 열심히만 했거든요. 지금도 열심이지만, 그땐 모든 걸 다 해내려고 했어요. 물론 그 덕분에 좋은 운이 따라주기도 했지만요. 30대엔 좀 더 멋있어지고 싶어요. 10, 20대엔 저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달려오기만 했어요. 이젠 천천히, 제 속도대로 여유를 갖고 일하려 해요. 예전에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뜻하지 않은 길에서 더 좋은 것들을 만난다.’ 제게는 연기가 이래요. 우연히 만난 길인 연기를 잘 해나가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앞으로의 제게도 무궁무진한 일이 일어나겠죠?”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