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에도 반복되는 ‘인방 프로모션’…해답은 없나

국내 게임업계 관행으로 자리잡은 ‘인방 프로모션’
최근 엔씨소프트 ‘리니지2M’서 ‘인방 프로모션’ 논란으로 트럭시위
관건은 불공정 이슈 해결

기사승인 2022-08-17 06: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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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에도 반복되는 ‘인방 프로모션’…해답은 없나
엔씨소프트 '리니지2M' 프로모션 논란을 비판하는 트럭시위.   연합뉴스

국내 게임업계에서 관행처럼 여겨지던 이른바 ‘인방(인터넷 방송인) 프로모션’에 대한 일반 이용자들의 반발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2M’에서 해당 논란이 불거지면서, 인방 프로모션의 지속 여부에 대한 논의가 게임업계 전반으로 퍼지는 모양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게임업계에는 유명 크리에이터를 통해 신작을 홍보하는 이른바 ‘인방 프로모션’이 주류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인방 프로모션은 게임 관련 크리에이터에게 광고비를 주고 게임을 플레이한 영상을 올리게 하는 형태다. 게임사는 이러한 마케팅을 통해 인터넷 방송인들의 팬을 자연스럽게 게임 이용자로 편입시킬 수 있고, 크리에이터는 게임사의 지원으로 방송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마케팅 방식과 관련해 일반 게이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광고비를 받은 크리에이터가 게임 내 캐릭터의 성장을 도와주는 유료 아이템을 구입해 다른 이용자들과 격차를 벌리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이다.

논란에도 반복되는 ‘인방 프로모션’…해답은 없나
‘리니지2M’을 총괄하고 있는 백승욱 엔씨소프트 본부장(가운데)이 지난 5일 특별 방송을 통해 프로모션 논란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리니지2M 유튜브 화면 캡처

‘리니지2M’로 폭발한 ‘인방 프로모션’ 불만

게임업계에 따르면 ‘리니지2M’ 이용자들은 지난 5일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 앞에서 프로모션 사태를 규탄하는 트럭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초 확률형 아이템 문제를 계기로 게임 업계에 연쇄적인 트럭시위 파동이 일어난 후 1년여 만이다.

이번 트럭시위는 지난달 말 한 유튜버의 폭로로 시작됐다. 유튜버 A씨는 “‘리니지W’ 방송을 대가로 엔씨소프트로부터 프로모션을 받아왔는데, 리니지2M 방송을 해도 방송횟수로 인정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앞서 엔씨는 “리니지2M 관련 유튜버 프로모션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A씨의 폭로 이후 이용자들은 “사실상 리니지2M 프로모션 방송을 했고, 이를 소비자에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뒷광고 아니냐”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거세지자 엔씨 측은 5일 특별 방송을 통해 프로모션 진행 건을 인정하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리니지2M을 총괄하는 백승욱 본부장은 “‘리니지W’ 프로모션 당시 ‘리니지2M’ 게임을 자발적으로 스트리밍한 분들에 한해 최소한의 방송을 인정한 사실은 맞다”고 인정했다.

백 본부장은 “다만 ‘리니지2M’ 프로모션 목적이 아니라 리니지W 방송 조건으로 인해 기존 리니지2M 유저들이 즐겨보던 방송이 축소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런 결정이 리니지2M 프로모션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며 “해당 조항도 지난달 29일 이후 삭제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엔씨의 사과에도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용자들이 불만을 제기한 부분에 대해 “게임 유저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2019년 정식 서비스부터 현재까지 리니지2M을 플레이하는 3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솔직히 어느정도의 ‘숙제방송(프로모션 지원을 받았음을 표기하는 방식)’은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번 리니지2M 건은 기만행위라는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논란에도 반복되는 ‘인방 프로모션’…해답은 없나
유튜브에 '숙제방송'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영상들.   유튜브 화면 캡처

 

‘인방 프로모션’ 자체는 합법이지만…불공정 논란은 어떻게?

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의 프로모션 논란에 긴장하는 모양새다. 대다수의 국내 게임사는 인방 프로모션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발히 사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을 위해 과금을 해야 하는 ‘페이 투 윈(Pay to Win)’ 성향이 짙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서 이러한 마케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에 따르면 ‘뒷광고’로 불리는 비밀 홍보는 현행법으로 규제 대상이다. 바꿔 말하면 일정 방송 횟수를 채우고 광고임을 알리는 표현을 넣고 광고비를 받는 인방 프로모션은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다는 얘기다.

보통 프로모션 계정 유형은 △특수 능력, 장비가 있는 슈퍼계정 △결제한 돈을 되돌려 주는 페이백 △일정 방송 횟수를 채우면 광고비를 지급하는 숙제방송 식으로 나뉜다. 앞의 슈퍼계정과 페이백은 게임 내 큰 논란이 일어날 수 있어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대신, 숙제방송 방식이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숙제방송조차도 불공정 논란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방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임은 대부분 MMORPG다. 대부분의 국내 MMORPG는 장비강화와 ‘확률형 아이템’ 기반의 장비 뽑기를 주된 비즈니스 모델(BM)로 삼고 있다. 사실상 게이머 비중의 다수를 차지하는 무·소과금 이용자들은 프로모션 지원을 받는 크리에이터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신작의 경우 이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신작 출시 초반 대다수의 게임 크리에이터는 뽑기 콘텐츠를 진행한다. 게임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인권카드’를 뽑기 위해 최소 수십만 원 이상의 재화를 투자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방송을 즐겨보는 시청자들은 해당 콘텐츠를 재밌게 볼 수 있지만, 크리에이터를 모르는 게임 이용자는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임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2학년 최 모군은 “MMORPG뿐 아니라 최근 출시되는 대부분의 게임은 뽑기를 통해 장비를 얻어야 한다”면서 “용돈을 받아 쓰는 입장에서 사실상 ‘현질’을 하는 것은 불가능이라 유료 재화를 아끼고 아껴서 뽑기를 하는데, 게임 방송인들이 10연속 뽑기를 막 10번씩 하는 모습을 보면 허탈감도 든다”고 말했다. 최 군은 “PvP(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콘텐츠에서 한 번 인터넷 방송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덱이 화려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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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CI.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게임업계 내부서도 “인방 프로모션 방식, 변화 필요해”

쿠키뉴스 취재 결과 대부분의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지난해 몇몇 게임사에서 시작된 트럭시위가 화률형 아이템 이슈로 인해 국내 게임업계 전반으로 퍼진 것처럼, 이번 프로모션 논란 역시 비슷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일부 게임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인방 프로모션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단순히 인지도가 높은 BJ나 스트리머에게 홍보를 의뢰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홍보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게임사에 근무 중인 한 관계자는 “결국 인방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은 매출 순위와 직결되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논란이 있는 크리에이터를 섭외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면서 “몇몇 게임에서는 프로모션을 지원받은 방송인이 일반 이용자를 조롱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말로 해당 게임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인플루언서에게 프로모션을 제공하면, 이용자들도 어느 정도 납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조금 더 세심하게 접근해야 이용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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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머 자체 후원시스템을 도입한 넥슨 '히트2'.   넥슨


게임사와 정치권도 대안책 마련에 집중 

게임사들은 논란이 끊이질 않는 인방 프로모션을 대체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안에 대해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자체를 포기하기에는 사실상 어려움이 있으니, 이용자들의 불만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방식이다.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의 맏형 격인 넥슨은 오는 25일 출시되는 신규 MMORPG '히트2'에 플레이어 본인이 지정한 스트리머를 후원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갖춘 스트리머가 참여 신청을 하면 간단한 심사를 거쳐 후원 시스템에 등록되는 구조다. 게임사가 스트리머 선정에 관여하지 않기에 불공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다.

스트리머가 게임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게 유도한다는 점에서도 업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기존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경우 계약 기간이 종료되거나 일정 기간이 지나 화제성이 떨어지면 스트리머의 영상 콘텐츠 숫자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넥슨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스트리머 후원 시스템은 다른 게임사의 작품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논란에도 반복되는 ‘인방 프로모션’…해답은 없나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상헌 의원실

정치권에서도 인방 프로모션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게임산업과 관련된 여러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일반 게임 이용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프로모션 계정을 게임 내에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실은 “현재 프로모션 계정을 이용한 홍보 방식은 법률상 불공정광고(거래)의 경계선에 위치한다”고 “뒷광고라고 불리는 비밀 프로모션은 현행법으로 규제 대상이며 홍보 내용을 공개하더라도 도가 지나칠 경우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해 게임의 수명을 단축시키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적어도 플레이 상황에서 상대방이 프로모션 계정임을 알 수 있도록 명확히 표시하면 게임 내 경쟁에서 졌어도 박탈감이 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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