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코앞인데 ‘공적 돌봄’ 걸음마 단계

혼자로는 감당할 수 없는 돌봄의 무게
“CCTV 속 폭언 당하는 어머니”…서비스 질적 차이도
요양기관 99% 민간…요양보호사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신음
“요양보험 아닌 국가재정으로 돌봄 공공성 강화를”

기사승인 2022-08-18 06: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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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코앞인데 ‘공적 돌봄’ 걸음마 단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박효상 기자

한국이 유례없는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오는 2024년에는 65세 이상의 노인 비율이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노인 돌봄은 여전히 가족과 민간이 짊어진 상태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870만7000명(16.8%)이었다. 국내 고령인구 비율은 2019년 15.1%, 2020년 16%, 2021년 16.8%로 매년 증가추세다. 한국은 1970년부터 2018년까지 약 50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됐다. 

노인 돌봄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요양서비스 제공자, 이용자 가족, 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여 노인 돌봄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돌봄 공공성 확보와 돌봄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 ‘돌봄공공연대’는 17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쉼 없는 노인돌봄-돌봄에는 방학이 없다’ 연속 라운드테이블 두 번째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장기요양보험제도가 공적 사회 보험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노인돌봄체계는 가족 및 비공식적 돌봄에서 국가 중심의 공적 돌봄 체계로 전환됐다. 그러나 제도 도입 초기 장기요양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기반이 완비되지 않은 채 민간 주도 서비스가 형성되면서, 장기요양서비스의 민간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한국 사회 노인돌봄과 요양은 99%가 민간 주도다. 2020년 기준, 전체 장기요양기관 2만5384개소 중 국공립기관은 244개소로 1%에 못 미친다. 민간 운영 시설은 이익을 남기고자 하고, 따라서 비용에 취약하다. 돌봄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대상자는 서비스 질에 불만을 토로하고, 제공자는 낮은 처우에 신음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초고령사회 코앞인데 ‘공적 돌봄’ 걸음마 단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이날 토론회에서는 부모가 돌봄이 필요한 경우, 가족이 돌봄을 위해 본인의 일상을 포기하거나 부모를 시설로 보내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토로가 나왔다. 또 어쩔 수 없이 시설에 보내면 마치 불효자라는 듯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고도 했다.

20살 때 쓰러진 아버지를 돌봐 온 조기현 작가(‘아빠의 아빠가 됐다’ 저자)는 “지금은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가 계신다. 그 전에 집에서 모실 때에는 아버지를 케어하느라 일을 하면서 돈을 모을 수가 없는 구조였다.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에는 또 속하지 않았다”면서 “남들처럼 뭔가를 배우고 싶은데 배울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잠깐 외출을 하는 일이 생겨도 집에 달아놓은 CCTV를 수시로 확인하느라 정신 없이 살았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가면서 조 작가는 비로소 숨통이 틔였다. 조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는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보냈다는 걸 안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아버지가 집에 있을때는 만나는 사람이 아들 한 명이었지만 요양병원에 가니 다른 입소자, 의료인들과 어울리면서 더 활기가 생기시더라. 이 모습을 보고 지역사회 내에서 노인 돌봄이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기요양 제도 수혜자 가족인 정경은씨는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고 있다. 형제가 5명인데 그 중에 결혼 안 한 딸 2명이 있어서 어머니를 케어하는 게 가능하다”며 “형제 자매가 없었다면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어머니를 돌보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돌봄을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돌아가고 짜이게 된다. 형제간에 다투는 일도 생길 수밖에 없다”며 “어떤 시점에는 어머니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내야 할텐데 그 시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민간과 국공립 시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질적 차이점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정씨는 “한번은 민간 시설에서 요양보호사가 오셨다. 몇 달 뒤 이상한 낌새가 있어 CCTV를 설치했다”며 “알고 보니 요양보호사가 어머니에게 폭언하고 충분한 의료적 조치를 하고 있지 않더라”고 털어놨다.

요양서비스 제공자이자 이용자 가족인 전지현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국공립 시설에서는 어르신 식사시간, 운동시간에는 침대에서 내려 오시게 한다. 일부러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일부 민간시설은 하루종일 침대에서 내리지 않고 침대에서만 생활하게 한다. 반면 시구립은 다르다. 그래서 시구립 요양원을 대부분 선호하고 2, 3년 기다려서 입소하기도 한다”고 했다.

요양보호사 처우 역시도 민간과 국공립 시설에 따라 다르다. 전 사무처장은 “방문서비스는 업무와 비업무를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면서 “민간에서는 이용자는 곧 돈이다. 이용자의 ‘니즈’를 맞추는 게 최우선이 되고 요양보호사 처우나 근로조건을 뒤로 밀린다”고 했다.
초고령사회 코앞인데 ‘공적 돌봄’ 걸음마 단계
지난 5월 요양원 대면 면회 일시 허용으로 입소자와 가족이 손을 잡은 모습.   사진=임형택 기자

전 사무총장은 “어르신 만나면 ‘살림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을 드린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이해를 못하신다”며 “한달에 한 번 가족이 집에 오는 날은 식사를 차리게 한다. 대걸레 자루가 있는데도 꼭 엎드려 걸레질을 하게 한다. 마늘을 100쪽을 넘게 까서 김장을 하거나 제사 음식을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는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조 작가는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실 때 자주 면회를 가자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거의 1년 반 이상을 보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아버지를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요양병원 내부 상황을 알 수 없는데서 오는 불안감, 그리고 이 불안감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다는 데서 오는 고립감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들은 대체인력이 없어 코로나19에 확진 된 채 일하고, 1명이 한 층(17~30명)을 케어하거나, 7일 동안 퇴근하지 못하고 복도에서 잠을 자며 연속 근무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전 사무처장은 “요양원에서 면회가 장기간 금지되면서 어르신들이 힘들어 하신다. 자식들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평소에는 안 그러셨던 어르신이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며 “이러다보니 주변에 번아웃을 호소하는 요양보호사들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현 상황의 근본적 문제는 국가 재정으로 노인 돌봄을 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김정아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국장은 “한국 사회는 노인 돌봄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국가 재정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보험수가는 이용자들이 온전히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시설, 기관 운영은 국가가 직접 운영하고 국가 재정을 쓰는 게 맞다. 서비스 질이 올라가고 요양보호사 처우가 좋아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월20일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노인돌봄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는 전체 장기요양기관 중 국공립 장기요양기관이 차지해야 하는 목표 비율을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수립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를 확충하고 이를 통해 국가 주도의 공적 노인돌봄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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