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150년 전 원작에서 가져온 것 [‘작은 아씨들’ 다시 보기]

기사승인 2022-09-24 06: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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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150년 전 원작에서 가져온 것 [‘작은 아씨들’ 다시 보기]
영화 ‘작은 아씨들’(감독 그레타 거윅) 스틸컷

1868년 미국에서 자신들의 가난한 신세를 한탄하던 네 자매가 2022년 한국에 도착했다. 미국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원작 소설 ‘작은 아씨들’의 메그, 조, 베스, 에이미는 오인주(김고은), 오인경(남지현), 오인선, 오인혜(박지후)라는 이름을 갖고 완전히 새로운 배경, 새로운 이야기로 되살아났다. 원작을 동명의 12부작 드라마로 옮긴 정서경 작가는 “소설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담아 감히 제목을 ‘작은 아씨들’로 짓고 싶었다”며 “세상의 많은 작은 아씨들 이야기에 우리 이야기도 보태고 싶었다”고 했다. 이제 절반을 지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속에 원작 소설 내용과 설정이 어떻게 녹아있는지 정리했다.

드라마가 150년 전 원작에서 가져온 것 [‘작은 아씨들’ 다시 보기]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오인주(김고은). tvN 홈페이지 캡처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주와 메그

원상아(엄지원)의 제안으로 인혜와 효린(전채은)을 돌보는 인주처럼, 원작 메그도 다른 집에서 말썽쟁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메그가 한 벌뿐인 드레스를 부끄러워하며 “새 드레스와 비교되어 더 낡고 축 처지고 초라해보였다”고 생각하는 대목에선 인주가 왜 거금이 생기자마자 좋은 코트부터 샀는지 이해하게 한다. “메그가 신은 굽 높은 구두는 마치 남의 신발처럼 심하게 작아서 메그의 발을 조이고 아프게 했다”는 문장은 드라마 초반부 진화영(추자현)과 신현민(오정세)이 인주의 구두를 언급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넌 돈도 지위도 사업체도 없는 남자와 결혼해서 지금보다 더 힘들게 일하면서 살겠다는 거구나”라는 대고모와 “저 둘이 짝이 되는 게 싫지만 받아들여야지 어쩌겠어”라는 조가 함께 메그의 결혼을 반대하는 모습은 드라마 속 고모할머니 오혜석(김미숙)과 인경이 인주의 과거 결혼을 반대했던 이야기와 비슷하다.

드라마가 150년 전 원작에서 가져온 것 [‘작은 아씨들’ 다시 보기]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오인경(남지현). tvN 홈페이지 캡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인경과 조

세 자매의 고모할머니 오혜석(김미숙)과 억지로 시간을 보내는 인경처럼,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운 할머니 옆에 몇 시간 동안 꼼짝도 못하고 붙어 앉아 비위를 맞춘다”는 원작 조도 같은 상황을 겪는다. 자매들이 연기하는 연극 대본을 쓰고, 기고한 소설이 당선돼 신문에 실리는 등 글재주 있는 조의 모습은 인경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한스럽다”며 비속어를 즐겨 쓰고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행동하는 조는 신념이 강하고 정의로운 인경의 원천으로 보인다. 드라마 속 인경이 부유한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는 하종호(강훈)와 친구로 지내는 모습은 원작에서 로리와 가장 먼저 친해져 자유롭게 할아버지 로런스 집을 드나드는 조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드라마가 150년 전 원작에서 가져온 것 [‘작은 아씨들’ 다시 보기]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오인주(김고은). tvN 홈페이지 캡처

상류층을 꿈꾸는 인혜와 에이미

일찍 미술에 재능을 보여 예고에 들어간 인혜처럼, 원작 에이미도 찰흙 만들기부터 세밀화, 유화, 초상화, 풍경화 등에 몰입해 예술 감각을 뽐낸다. 원작은 에이미를 상류층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고 “재력과 지위, 부유한 이들의 업적, 우아한 태도를 좋아해서 그런 것들을 갖춘 이들과 어울리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이 대목은 “언니들처럼 사는 것보다 효린이네 하녀로 살고 싶어”라며 야심을 숨기지 않는 인혜가 언니들과 대립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미술 유학을 꿈꾸는 인혜의 모습은 원작에서 숙모 캐럴과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그림을 공부하는 에이미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드라마가 150년 전 원작에서 가져온 것 [‘작은 아씨들’ 다시 보기]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오혜석(김미숙). tvN 홈페이지 캡처

죽음의 그림자를 남긴 인선과 베스

어린 시절 희귀병으로 사망한 인선이 모두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것처럼, 원작 베스도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때는 행복으로 가득하던 이 집에, 죽음의 그림자가 맴돌았다”고 표현하는 원작 문장은 드라마에서 인혜가 떠올리는 죽음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에이미가 성홍열에 걸렸다가 살아난 후 후반부에 숨을 거두는 원작과 달리, 드라마에선 인선이 어린 시절 죽고 나중에 인혜가 같은 병에 걸리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원작에서 아픈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집을 떠난 어머니에게 자매들이 편지를 보내는 대목은 드라마에서 자매들이 영상 통화로 어머니 안희연(박지영)에게 인혜의 상황을 전하는 장면으로 나온다. 드라마에서 고모할머니 혜석이 인혜의 병원비를 내주듯, 원작에선 대고모가 면역이 없는 에이미를 잠시 데려가 돌보는 것으로 도움을 준다.

드라마가 150년 전 원작에서 가져온 것 [‘작은 아씨들’ 다시 보기]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원상아(엄지원). tvN 홈페이지 캡처

겉과 속이 다른 체스터 집안과 원령 가(家)

인혜가 효린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파티에 인경이 오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원작에서 이웃집을 방문하는 조에게 에이미는 “체스터 집안은 무척 우아한 사람들이니 언니도 행동거지에 유의해야 돼”라고 말한다. 드라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박재상(엄기준)과 상아 가족은 원작에서 자매들의 이웃으로 등장하는 체스터, 튜더 집안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귀족을 흠모하는 에이미와 달리 “난 튜더를 존경하지도, 좋게 보지도 않아”, “그 사람은 잘난 척이 심하고 누이들을 무시하잖아”, “로리가 그러는데 행실이 좋지 않대”라고 말하는 조의 모습은 재상을 적대하는 인경의 모습과 겹친다. 바자회에서 에이미의 그림이 인기가 많은 것을 시기해 자신의 딸이 팔던 꽃병 판매대와 자리를 바꾸게 한 체스터 부인은 인혜의 그림을 효린의 그림으로 만들어 상을 받게 한 상아를 떠올리게 한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