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10년, 아내가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일기(8)
도시 친구들의 생기 없는 눈빛...아내로부터 독립 방법 찾는 중

기사승인 2022-10-01 09: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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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으로 이주한 지 10여 년이 됐는데 지난해에야 아내가 서울에 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전까지는 아내도 나처럼 농촌에 사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아내는 그 사실을 전에도 나에게 이야기했었다고 하는데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내가 아내의 뜻을 명확하게 안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 각자 자기가 편안하고 좋은 곳에 살아야 하는데 한 사람은 서울이 좋고 한 사람은 농촌이 좋으면 같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신이 서울에 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또박또박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평소와는 달리 에둘러 이야기하거나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마치 나와 헤어지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기세였다.
귀농 10년, 아내가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보이는 해발 500미터 지리산 자락. 도시로 갈 수 없는 이유. 사진=임송

이곳에 내려올 때만 해도 주민등록이 따로 되어 있는 것조차 싫다고 먼저 내려와 있는(아내는 직장 때문에 1년 늦게 내려왔다) 나를 따라 주민등록을 미리 이전했던 사람인데 십수 년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 예전보다 말도 퉁명스럽게 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반대도 잘하고 어떨 때는 내가 말을 해도 건성으로 듣는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예전과 달리 불만이 많은 사람 같다.

그러다 내가 화를 좀 내면 수그러들었다가 내가 풀어진 것 같으면 또 그런다. 화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점점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서울에 살 때 그랬다면 나도 충분히 이해됐을 거다. 서울 살 때는 내가 술도 많이 마시고 밖으로 나돌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집에서 다소곳이 사는 사람한테 그러니 나도 가끔은 좀 억울하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이빨 다 빠졌다고 예전에 서운했던 것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가까이서 지켜보니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내 꼴 자체가 보기 싫다는 것인가. 별생각이 다 든다.

그래서 내가 과거에 당신에게 잘 못 했다고 당신까지 나에게 잘못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도 말해봤지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얘기냐는 표정이다.
귀농 10년, 아내가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집 근처 지리산 계곡의 시냇물. 사시사철 흐른다. 사진=임송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내 또래 남자들의 사정이 다 비슷비슷하다. 비유하자면 예전에는 남자가 말끔하게 차려입고 앞서가고 여자가 아이 업고 뒤따라가는 모양새였는데 지금은 여자가 멋지게 화장하고 씩씩하게 앞서가는데 축 처진 남자가 뒤따라가는 형국이랄까. 가끔 여자로부터 빨리빨리 못 쫓아 온다고 지청구까지 들어가면서.

그렇다고 아내가 하자는 대로 서울로 가자니 이제는 서울이 오히려 낯설다. 익숙하던 건물이나 거리는 이미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고 친구들을 만나 봐도 예전의 생기 있는 눈빛들이 아니다.

그저 김빠진 맥주 같은 머리 희끗희끗한 중늙은이들이다. 예전의 생기발랄하던 내 친구들은 이제는 서울에 없다. 그러니 서울에 올라가도 텅 빈 것 같고 재미가 없다. 거리에 나가도 우리 동네 같지도 않고.
귀농 10년, 아내가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춤추는 소나무. 제멋대로 자랐으나 그 멋대로 자란 아름다움이 눈길을 못떼게 한다. 사진=임송

반면에 이곳에는 사시사철 졸졸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찾아와 열심히 지저귀는 새들도 있다. 철 따라 피고 지는 이름 모를 꽃들,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아침마다 피어오르는 포근한 안개, 제멋대로 구부러진 소나무, 가끔 떠오르는 유난히 큰 보름달이 있어 텅 빈 도시의 거리보다 충만하다.

요즘 들어 아내로부터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때 돼서 밥 차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물건 찾다가 없으면 아내에게 물어봤다. 작업하느라 연장을 쓰고 나면 아내가 치웠고 같이 일하다가 귀찮은 뒷마무리는 아내에게 맡기고 슬그머니 몸을 뺐다.

아이들 얘기며 집 안 돌아가는 사정도 아내를 통해 알았으며 어디를 가든 항상 아내를 동반했다. 부산에 친구가 한 명 사는데 그 친구 왈, “아내가 주말에 아이들 보러 서울에 올라가니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 나나 그 친구만 그렇겠는가. 주변을 돌아보면 아내 치마꼬리 붙잡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는 밥도 혼자서 잘 챙겨 먹고 주변 청소라든가 물건 챙기는 일도 가능하면 아내의 손을 빌리지 않으려고 한다. 아내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는 것도 줄이고 아내와 함께 주변 사람들 흠잡는 이야기도 자제해야겠다. 가능하면 혼자 여행도 가고. 아무리 나이 들어가도 각자 독립적이어야 서로 존중하는 마음도 생기고 그럴 테니까.

그리고 아내는 서울이 좋고 나는 농촌이 좋은 문제는 아직 구체적으로 결론을 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주로 농촌에 살면서 일이 있을 때 서울에 함께 가고 아내는 서울과 이곳을 왔다 갔다 하는 등으로 대안을 찾아 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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