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마약류 셀프처방?…4년간 10만건

461일 동안 향정 5357정 투약한 의사도
환자 명의뿐만 아니라 다른 의사 명의 도용하기도
호주·캐나다는 마약류 셀프처방 금지, 우리 군(軍)도 금지

기사승인 2022-10-06 09: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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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마약류 셀프처방?…4년간 10만건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없음.   사진=박효상 기자

의사와 환자의 이름과 나이가 같아서 셀프처방으로 의심되는 의료용 마약류 처방전이 10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의 마약류 상습 투약 등 오남용 사례가 반복되고 있어 셀프처방 실태에 대해 정확하게 확인하고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연숙 의원(국민의힘)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보고된 의료용 마약류 조제·투약 보고 중에서 처방 의사와 환자의 이름·출생 연도가 동일하게 보고된 사례가 2018년 5월부터 지난 6월까지 4년 1개월간 10만 5601건에 달했다. 처방량은 355만 9513정이었다.

연도별 처방건수는 △2018년 5~12월 1만 4167건 △2019년 2만 5439건 △2020년 2만6141건 △2021년 2만 6179건이었고 올해도 6월까지 1만 3675건이었다. 같은 기간 처방량은 △2018년 5~12월 45만 5940정 △2019년 83만 8700정 △2020년 87만 2292정 △2021년 87만 1442정 △2022년 1~6월 52만 1139정이었다.

최 의원은 “이름과 출생연도까지 같은 동명이인이 존재하더라도 의사와 환자로 만나서 일반 의약품이 아닌 마약류 처방이 이뤄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며, “의사와 환자의 이름·나이가 같다면 셀프처방으로 추정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식약처 자료로 마약류 셀프처방이 추정되는 의사 수는 △2018년 5~12월 5681명 △2019년 8185명 △2020년 7879명 △2021년 7736명 △2022년 1~6월 5698명으로 같은 기간 전체 마약류 처방 이력이 있는 의사 대비 각각 6.0%, 8.1%, 7.7%, 7.4%, 5.6%이다.

한편 마약류 셀프처방 추정 사례가 이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식약처의 점검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식약처는 최근 2년간 프로포폴과 식욕억제제 등 일부 마약류 성분별로 처방량 상위 의료기관 42개소를 점검해 24건을 수사의뢰하였다. 그 중에서 8건은 검찰에 송치됐고, 3건은 수사 중이고, 9건은 내사종결됐다.

식약처가 점검했던 사례 중에는 한 의료기관의 의사가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 치료 등 심리적 안정을 위한 목적으로 2018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자나팜정(알프라졸람), 스틸녹스정(졸피뎀), 트리아졸람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총 5357정 투약한 경우도 있었다. 날짜로 계산하면 461일간 매일 11.6정씩 하루도 빠짐없이 투약했다는 얘기가 된다.
의사 마약류 셀프처방?…4년간 10만건

의사들이 셀프처방만이 아니라 타인의 명의를 도용한 대리처방 등을 거쳐 본인이 투약하는 마약류 오남용 사례는 보건복지부 자료에서도 확인됐다.

최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마약류 투약과 처방 등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의사는 모두 61명이었는데, 의원실 분석 결과 이들 중 7명은 셀프처방, 타인 명의 대리처방 또는 매수를 통해서 본인이 투약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환자 명의를 도용한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의사의 명의를 도용해 총 184회 3696정을 처방받아 투약한 경우도 있었다.

의사 A씨는 지난 2018년 1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본인의 조모 명의로 진료기록을 허위로 작성하고 총 125회에 걸쳐 향정신성의약품인 스틸녹스정을 2308정을 처방한 다음 본인이 투약했다. 또한 비슷한 기간 다른 의사의 아이디로 전자 진료기록부에 접속하여 진료기록을 허위로 작성하고 본인에 대해 스틸녹스정을 59회에 걸쳐 1388정 처방하고 투약했다. 그러나 올해 3월에 내려진 의사 A씨에 대한 행정처분은 자격정지 1개월 15일이 고작이었다.

의사들의 마약류 상습 투약과 오남용은 의사 자체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의사들의 진료를 받는 환자들의 안전도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의료법에서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를 의료인 결격사유로 두고 있는 이유다.

최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에 의뢰해 제출받은 마약류 셀프처방과 관련한 해외 사례를 보면, 의사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마약류 처방을 금지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캐나다는 자신이나 가족에게 마약을 포함한 통제약물을 처방하거나 투여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호주도 의료위원회 행동강령에 의해 의사가 자신 또는 가족을 치료할 수 없어서 처방도 불가능하다.

영국은 셀프처방을 가급적 피하도록 안내하고 있고, 영국 의학협회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객관적인 의료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수해야 할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의사가 본인 및 가족을 대상으로 처방할 경우 가족이 아닌 일반의에게 처방정보를 구체적으로 알려야 하며,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조사와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주에 따라 규정이 상이한데, 코네티컷주는 응급 상황을 제외하고 의사가 규제된 약물을 자신이나 직계 가족에게 처방 또는 투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일리노이주는 개업의가 규제 약물을 셀프처방하거나 분배할 수 없다. 텍사스주는 의학협회에서 셀프처방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학협회 또한 의료윤리강령에서 의사는 일반적으로 자신이나 직계 가족을 치료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우리 군도 지난 2017년부터 마약류는 물론 모든 의약품의 셀프처방을 금지하고 있다. 국방의료정보체계(DEMIS) 시스템에서 처방 군의관과 환자의 군번을 대조하여 셀프처방을 막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마약류 셀프처방을 막을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의원은 “의사들의 마약류 불법투약과 오남용 사례가 반복적으로 확인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껏 셀프처방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마약류 셀프처방을 의사의 양심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의사 본인과 환자 안전을 위해 엄격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셀프처방 의심사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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