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밀집 상황, 학교 아닌 유튜브로 배웠다”[안전전쟁②]

2030대 “학교에서 군중 밀집 시 대처법 배운 적 없다”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선진국, 실습 위주 안전교육

기사승인 2022-11-29 06: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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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밀집 상황, 학교 아닌 유튜브로 배웠다”[안전전쟁②]
쿠키뉴스DB

“군중 밀집 상황에서의 행동요령이요? 단 한 번도 배운 적 없죠. 학교에서 화재·지진 대비 훈련받아본 기억밖에 없어요”
(20대 직장인 임모씨)

이태원 참사처럼 통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선 인파가 순식간에 몰리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피해를 본 시민 중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을까. 기자가 만난 20~30대 청년들 대부분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20대 직장인 이모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제일 처음 온라인에서 ‘압사 위기 시 대처 방법’을 검색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파에 휩쓸릴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걱정됐기 때문에서다. 

이씨는 “다중 밀집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대피해야 하는지 교육받은 적이 없다”며 “초중고교를 다닐 때 받은 심폐소생술이 제일 기억에 남지만, 실제 상황에선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이태원 참사로 유튜브 등을 통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스스로 찾아 배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직장인 임모씨 역시 “학창시절 단 한번도 군중 밀집 시 행동요령과 관련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매일 지하철에서 압사 위기를 겪다보니 참사 후 인터넷으로 대처법을 검색했다”고 했다. 

일부는 ‘압사 위험에 대한 교육이 의미없다’는 식의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20대 대학생 박모씨는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하나하나 교육을 하다보면 모든 사건사고마다 아이들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도 이태원 참사가 ‘교육 부재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안전의식 향상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 만큼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안전교육을 생활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독립교과로 초등 1, 2학년때 ‘안전한 생활’을 배운다. 이후 학년은 체육시간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등을 통해 교육이 진행된다. 그마저도 2024년 적용되는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안전한 생활이 사라진다. 중·고교에선 건강 안전 분야를 다루는 보건 교과가 선택 과목으로 분류돼, 일반적으로 응급상황 대처법 등 관련 안전교육은 체육시간 등을 활용하는데 그친다. 2016년부터 학교 현장에는 학기당 51시간 이상의 안전교육이 의무화됐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학교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33시간까지 단축할 수 있게 했다. 심폐소생술(CPR)을 포함한 응급처치법 교육은 모든 학생과 교직원에게 의무화됐지만 이론 위주의 영상 시청으로 대체하는 게 대부분이다. 

실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등학교 재학 중 응급처치 교육을 받고 4년이 경과하지 않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응급처치 내용을 모두 숙지한 학생은 163명 중 19명(11.7%)에 불과했다. 

20대 대학생 김씨는 “초중고교를 다닐 때 받은 심폐소생술이 제일 기억에 남지만, 실제 상황에선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김씨 역시 이번 이태원 참사 이후 온라인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스스로 찾아 배웠다고. 

“군중 밀집 상황, 학교 아닌 유튜브로 배웠다”[안전전쟁②]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인파 사고 예방법과 심정지 환자 응급처치법. 사진=행정안전부 안전한TV 유튜브 캡처

안전교육 반복 학습돼야…필수교과에 ‘안전’ 담은 해외국가들  



갑작스럽게 위험에 처했을 때 대처 방법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참사 이후 ‘학교안전교육 7대 표준안’에 대응 매뉴얼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 학생들이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교육으로 강화해야 한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해외 선진국이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안전교육을 필수교과로 채택하고 실습 위주의 안전교육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2015년 발간한 ‘OECD 주요국의 유·초등학교 안전교육 실태 및 한국교육에 주는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은 학교별로 학부모와 자녀를 위한 안전교육 자료를 개발해 정규 교육과정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주에 따라 각 지역이 특성에 맞춘 안전 교육을 추가로 실시한다. 태풍이 자주 일어나는 중남부 지방 학생의 경우 태풍 발생 시 행동요령에 대한 교육을, 지진이 많은 캘리포니아주의 학생들에는 지진을 대비한 안전교육에 더 집중한다. 

일본의 경우 안전교육을 법률에 명시해 초·중·고교 정규 교육과정에 반영했으며 대학에서는 자율적으로 방재매뉴얼을 작성해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각급 학교에서는 학교안전위원회가 구성돼 있고 안전교육 자료를 교사용 안내서와 학생용 안내서로 구분해 학습보조 자료로 활용한다. 프랑스의 경우 교육법에 초·중학교에서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진영민 전국시·도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안전교육이 정규) 교과까지는 안되더라도 조금 더 확대해야 한다”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에 나가면 긴급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즉각 대처를 해야하는데 이런 것들이 실제로는 잘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전교육은)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고 이런 전문가들의 교육을 통해 교직원들도 간접적으로 교육을 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 학생과 가장 밀접한 교사들에 이런 (안전교육)업무는 잡무로 치부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전문가의 계획에 따라 학생 맞춤형 안전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소방안전교육 등에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학교장을 소방안전관리자로 선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