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찾은 대학 상담센터… “4개월 뒤에 오세요” [속앓는 20대③]

대학생 100명 중 18명 자살 고위험군… 취업·학업·대인관계 고민
교육법상 ‘대학 상담센터’ 필수기준 아냐
예산·인력 확보 ‘시급’… “정부 관심 가져야”

기사승인 2022-12-07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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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 한 대학교수가 낸 책이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적이 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사회가 청년의 아픔을 대하는 태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청춘의 고민을 여전히 자연치유 될 성장통쯤으로 여긴다. 그러는 사이 마음병을 앓는 20대가 크게 늘었다. 
우리사회가 청년의 심적 고통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곪고 있는 청년들의 상처를 세심하게 어루만져주길 희망한다. 그런 마음으로 [속앓는 20대] 4편을 준비했다. <편집자 주>

벼랑 끝 찾은 대학 상담센터… “4개월 뒤에 오세요” [속앓는 20대③]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졸업반인 임다희(가명·24)씨는 취업 걱정에 대학 상담센터 문을 두드렸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3개월에서 4개월 정도는 기다려야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은 탓이다. 임씨는 “4개월 뒤에 내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르고, 당장 급한데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나”라며 상담을 포기했다.

오윤지(가명·22)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업을 받다가 대면 수업으로 전환된 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상담센터를 찾았지만 예약 대기에 지쳐 상담을 포기했다.

오씨는 “2주 정도가 지났는데도 연락이 오지 않아 지쳐서 상담 받기를 포기했다”며 “당장 도움을 받고 싶어 교내 상담센터를 찾았는데, 기다리고만 있을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김윤석(가명·23)씨도 “예약 대기까지 2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 애인과 헤어지고, 가족과 불화를 겪는 등 속앓이를 했는데, 당시엔 도움을 받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다만 기다림 끝에 받은 상담 자체는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김씨는 “돈을 내지 않아도 돼서 좋다”면서 “집 근처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 있었는데 당시 경제적인 부담도 상당했다. 대학 입학으로 서울로 상경하며 병원을 옮겨야 하나 고민했는데, 마침 학교에서 지원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시내 주요 대학이 운영하는 상담센터를 이용하려면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4개월까지 기다려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박정윤 중앙대 학생생활상담센터장(심리학과 교수)은 “가능한 한 달을 넘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지만 접수 후 상담을 받기까지 3~4달 이상 걸린다”면서 “고위기 학생의 경우 고위험군 판별 스크리닝 면접을 거쳐 따로 연락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대 학생상담센터 관계자 역시 “대기를 걸면 2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 인력이 적은 것도 있지만, 신청 인원이 많아져서 대기가 길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과거에 비해 상담을 원하는 학생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이 관계자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아지기도 했고, 마음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에 익숙한 학생들이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며 대인관계, 학업적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박 센터장은 “과거에 비해 상담 수요가 늘어나기도 했고, 심각성도 높아졌다. 자해를 초등·중학교부터 시작한 학생도 있는 등 자해 빈도가 높다.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상담을 병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진로, 취업 문제로 가장 많이 온다. 대인관계나 우울, 불안 등 심리적 문제로 찾기도 한다”며 “생각보다 불면증, 우울증, 강박증을 가진 학생들이 많다. 1년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며 상담을 받고 있는 학생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대학교학생상담센터협의회(전상협)가 올해 발간한 ‘2021 대학생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29.9%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경미한 우울은 13.9%, 중한 우울 9.7%, 심한 우울 6.3% 순으로 나타났다. 자살 고위험군 비율도 18.1%로 확인됐다. 

심리·정서적 안정에 장애가 되는 요인으로는 ‘취업 경쟁 및 고용불안 등 취직 문제’가 27.8%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성적 걱정, 시험불안, 학습동기 저하 등 학업문제 15.1% △친구, 선후배, 교수 등 인간관계의 어려움 13.7% △학비, 생활비 등 경제 문제10.5%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생활의 어려움 9.9% 등 순으로 나타났다.

벼랑 끝 찾은 대학 상담센터… “4개월 뒤에 오세요” [속앓는 20대③]
중앙대학교 학생생활상담센터 상담실.   사진=김은빈 기자

전일제 상담원 1~2명 대부분… 인력·예산 확보 시급

대학생들의 마음이 멍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상담센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엔 상담 인원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상협의 ‘2020 전국대학교 학생상담 기관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124개교 상담센터의 전일제 상담원이 1~2명에 그치는 대학이 58.9%에 달했다. △전문대 1~2명 △거점 국립대 2~6명 △국립대 1~5명 △사립대 1~9명 등의 분포를 보였다.

상담센터 인건비 총액은 평균 8013만원으로 집계됐다. △전문대 4139만원 △거점 국립대 1억400만원 △국립대 1억3190만원 △사립대 1억1595만원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중앙대 상담센터는 센터장 1명, 8명 상담사, 행정 담당 직원 1명으로 구성됐다. 세종대의 경우 전임상담사 3명, 시간제 상담사 6명, 인턴 상담사 3명이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 모두 상담 업무 뿐 아니라 행정업무, 심리 연구 등 부가적인 업무가 많아, 야근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전한다. 

심지어 상담사들은 모두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이다. 상담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선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해야 하는데, 근무 2년이 넘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계약을 종료해야 한다. 학생 상담을 진행하다가 계약기간이 끝나면 상담 교사를 바꿔야 할 가능성도 열려있는 셈이다. 상담사의 처우 문제는 상담의 질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교육법상 대학 교육기본시설 기준에 상담센터는 필수 시설이 아니다. 대학 평가기준에만 포함된 탓에 구색만 맞춰놓은 대학들도 많다. 

교육부의 예산 지원 사업이 한시적인 탓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교육부의 사립대학 상담센터 지원예산은 ‘대학혁신지원사업비’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사업이 연장되지 않으면 투입됐던 상담사도 함께 계약이 종료된다. 

게다가 대학생 정신건강 전수조사조차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교육부 부령의 ‘학교건강검사 규칙’은 학교보건법을 근거법령으로 한다. 학교보건법에는 고등교육법에 따른 학교, 즉 대학도 포함돼 있으나 제4조의3 정신건강 케어에서는 고등교육 영역이 제외돼 있다. 결국 정부의 정신건강 전수조사 대상은 초·중등 학생에 한정돼 있다.

벼랑 끝 찾은 대학 상담센터… “4개월 뒤에 오세요” [속앓는 20대③]
세종대학교 학생생활상담소.   사진=박선혜 기자

“양질의 상담 제공 위해선 교육당국 관심 가져야”

대학 상담센터는 대학생들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만큼 충분한 상담사 인원·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종대 상담센터 관계자는 “지금보다 상담인력이 늘어난다면 학생들이 대기하는 시간도 줄고, 중요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심리 지원을 적절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지금도 상담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며 “상담이 1:1로 진행하는 만큼 인력 투입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지각했다고 취업 못 하는 거 아니냐며 전전긍긍하는 학생도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시키는 공부만 하고, 부모가 길을 정해주는 삶을 살다가 대학에 오면 사회에 갑자기 내던져졌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마음건강을 살피고 사회에 나가면 더욱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교육부에서 대학평가기준으로만 상담센터를 취급하는 것은 소극적인 방법인 것 같다”면서 “대학 상담센터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지원해주면 대학생들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장회 전상협 회장은 “학생 수 대비 상담 전문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상담센터는 법적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꼭 설립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탓에 대학에선 정규직 상담인력 채용을 주저하기도 한다. 특히 학교에 따라 예산 규모도 다르다 보니 전문대의 경우 형식상 존재하는 곳도 많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대학 평가기준에 대학 상담센터 상담 실적만 포함되다 보니 생기는 문제도 있다. 학생참여율과 같은 양적 지표를 따지다 보니 양질의 상담 보단 기계적 상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전임 상담사 1인당 학생 수, 대학회계 총액 대비 학생상담센터 지원 예산 비율 등 지표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당국과 대학이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예산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대학에선 새 건물을 짓거나 보수공사하는 데는 돈을 많이 쏟는다. 우선순위의 문제”라며 “10.29 참사 때도 대학 상담센터를 찾았지만,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대응하기 어려웠다. 교육당국이 학생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인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울증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가 더 심해졌다”며 “대학과 교육부에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상담센터 관련 별도 지원 사업은 현재로선 없다”며 “대학에 혁신지원사업비로 7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지원하는데, 이를 상담센터 등에 적극 활용해달라고 요구한 상황”이라고 했다. 또한 “대학생 정신건강 전수조사는 대학에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박선혜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벼랑 끝 찾은 대학 상담센터… “4개월 뒤에 오세요” [속앓는 20대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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