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발칙한 질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쿡리뷰]

기사승인 2022-12-08 06: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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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발칙한 질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쿡리뷰]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공연 장면. 빌라도(지현준, 왼쪽)와 예수(마이클 리). 블루스테이지

죽음을 앞둔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한다. 그의 기도는 포효에 가깝다. “내가 죽어 얼마나 더 대단한 걸 갖게 되나요. 얼마나 더 위대한 걸 이루시나요.” 그는 신이 내린 운명, 즉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내 죽음의 의미를 보여 달라’며 고통스러워한다. 예수의 제자 유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 자신은 이용당했을 뿐이라며 원망을 토해낸다. 유다는 절규한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야, 오해 마. 나 돈 따위에 팔렸다고 착각 마. 저주받은 내 이름, 유다.”

예수 죽음 일주일 전을 다룬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지난달 10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했다. 성경을 파격적으로 해석해 1971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부터 화제를 일으킨 작품이다. 뮤지컬계 두 거장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작사가 팀 라이스가 20대 시절 함께 만들었다. 한국에선 1980년 극단 현대극장이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처음 소개했다. 정식 라이선스 공연은 2004년 초연됐다. 작품은 예수와 유다를 통해 신을 향한 발칙한 질문을 던진다. 이 죽음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작품 속 예수는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슈퍼스타다. 하지만 자신의 가르침을 잘못 해석하는 군중 때문에 늘 괴롭다. 예수 행세를 하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향락을 즐기는 이들 때문에 분노하기도 한다. 구원을 달라며 예수를 따르던 이들은 그가 체포되자 순식간에 등을 돌린다. 심지어 “당신의 쇼는 끝났어”라며 눈에 불을 켠다. 광기에 빠진 군중 사이에서 예수는 죽음과 구원의 의미를 고뇌한다. 전지전능한 신이라기보단 고독한 인간에 가깝다.

신에게 발칙한 질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쿡리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성경에서 예수를 밀고해 돈을 챙기는 유다는 한층 복잡한 인물로 재해석됐다. 그는 혁명가다. 마리아가 예수를 위로하려 값비싼 향유를 발라주자 “가난한 자들을 위한 당신이 어찌 이럴 수 있나”라며 대립각을 세운다. 그렇다고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가 죽음을 계획한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알아챈다. 그를 사제들 손에 넘긴 뒤에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밖에 예수를 견제하는 세 사제,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 못해 갈등하는 빌라도, ‘똘끼’ 넘치는 이스라엘 왕 헤롯 등 조연들도 존재감을 뽐낸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되는 송스루 뮤지컬이다. 강렬한 록 음악을 중심으로 블루스, 발라드, 가스펠 등 다양한 음악을 만날 수 있다. 배우 윤형렬이 과거 “오선지 밖에 음표가 그려진 노래가 태반”이라고 말했을 만큼, 노래 난이도가 높다. 네 번째로 예수를 연기하는 배우 마이클 리는 고음과 샤우팅도 연기 일부임을 증명한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예수가 느꼈을 고독과 고뇌를 짐작하게 한다. 배우 백형훈은 뜨거운 유다를 보여준다. ‘마음속의 천국’ ‘유다의 죽음’ 등 주요 넘버를 파워풀하게 소화해내며 유다를 혈기왕성한 인물로 표현했다. 예수 역에는 배우 임태경, 유다 역엔 배우 윤형렬, 한지상, 서은광(그룹 비투비)이 함께 캐스팅됐다.

러닝타임이 2시간15분(인터미션 포함)으로 다른 대극장 뮤지컬보다 짧다. 무대도 단출한 편이다. 하지만 허전하거나 심심하진 않다. 비범하고 개성 강한 음악과 탄탄한 서사, 배우들의 격렬한 연기 덕분이다. 조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과 인물 내면을 표현했다. 홍승희 연출은 “새롭게 만드는 무대 세트와 빛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했다”며 “여기에 인간 내면을 표현한 앙상블들의 역동적인 안무가 더해져 좀 더 특별한 무대를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내년 1월15일까지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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