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증원’ 없이 필수의료 살리기 나선 정부

복지부, 필수의료 지원대책 최종안 발표
공휴일·야간 및 고난도 수술 추가 보상
보건의료노조 “의사 수 늘리겠단 언급만… 지원책 실효성 부족”

기사승인 2022-12-08 17: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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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수 증원’ 없이 필수의료 살리기 나선 정부
사진=박효상 기자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팔을 걷는다. 의료계와 합심해 ‘필수의료 지원강화 대책’ 최종안을 내놨다. 고위험·고난도 수술과 분만·소아 치료 등 필수의료 분야에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해 보상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필수의료 대책 중 하나로 거론됐던 ‘의대 정원 확대’ 내용은 언급에 그쳤다. 복지부는 추후 의정협의체를 통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8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 공청회를 개최하고 이같은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복지부는 이번 대책의 목표로 ‘전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 중증·응급, 분만, 소아진료를 제공받는 체계 구축’을 내걸었다. 그러면서 추진 방향으로 △지역완결적 필수의료 제공 △적정 보상 지급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를 제시했다.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해당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긴급수술을 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이송했지만 결국 숨진 사건이다. 복지부는 적기에 치료받지 못한 사례가 반복되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와 협의체를 구성해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고 대책을 내놨다. 박수현 의협 대변인은 8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필수의료로 분류되고 근무 여건이 어려운 과에 대한 수가를 올릴 수 있도록 건의했다. 또 형사적인 책임 때문에 특정과 기피현상이 있기 때문에 의료분쟁 특별법 등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대책에서 의사 공급 부족에 대한 대책은 제외됐다.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대해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재논의하기로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공청회에서 “의정 합의에 따라 의료계와 의대 정원 확대를 가능한 조속하게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의정합의체를 통해 약속한 사안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번 대책에 포함되면 안 된다”면서 “2021년 이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로 인구 대비 의사 수가 늘어나고 있다. 분배에 대한 문제이지, 인원 자체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해뒀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언급은 있지만 의지 있게 추진할지는 비판적”이라며 “의사 눈치를 많이 보는 정부기 때문에 의료계와 진정성 있게 협의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정책수가 인상은 여태껏 계속 실패했던 방식이다. 인상해봤자 병원 수익으로 들어가지, 의사들이 필수의료과로 지원하진 않을 것”이라며 “필수의료를 강화한다고 말은 하면서 실제론 민간병원들 돈 더 주는 방식이다.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의사 수 증원’ 없이 필수의료 살리기 나선 정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열린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복지부

공공정책수가 도입… 주말 응급수술 가산률 175% 인상

필수의료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지급하기 위해 ‘공공정책수가’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진료량을 늘려야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의 행위별 수가제를 보완하고,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 별도 수가 체계를 마련해 건강보험 보상을 지원하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야간·공휴일 등 응급·중증 수술에 대한 보상을 대폭 강화한다. 뇌동맥류, 중증외상 등 야간·공휴일 응급수술 및 시술에 대한 가산률을 100%에서 최대 175%까지 높인다. 응급전용입원실 관리료도 신설한다. 응급실에 내원한 중증 환자가 응급전용 중환자실에 입원할 때만 적용되던 관리료를 응급전용 입원실에 입원하는 경우에도 지급하기로 했다. 

난이도나 자원투입 수준을 반영해 수가 기준도 세분화한다. 특히 고난도·고위험 의료행위에 대해선 추가 보상이 이뤄진다. 같은 질환에 대한 수술이라도 고난도 수술방법을 적용할 경우 추가 보상이 적용되는 방식이다. 심뇌혈관질환 분야 수술·처치에 먼저 적용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의료 취약지의 분만 진료에 대해서도 정책수가를 추가로 지급할 계획이다. 광역시를 제외한 전체 시·군·구의 산부인과에는 현행 분만수가의 100%를 ‘취약지역수가’를 추가 지급한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관련 분쟁·보상 부담을 고려해 현행 분만수가의 100%를 ‘인적·안전 정책수가’로 내준다. 감염병 위기 상황에는 현행 분만수가의 100%를 더해 지급한다. 

중증 소아환자의 진료 기반을 유지·회복하기 위한 시범사업도 실시한다. 소아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의 적자를 사후 보장하는 방식을 시범 도입한다. 또 소아 환자의 재택치료와 단기 입원에 대한 보상도 강화하기로 했다.

불필요한 응급실 전원 없도록… 지역완결적 필수의료 추진

복지부는 ‘지역완결적 필수의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환자가 골든타임 내 거주·소재지 인근에서 24시간·365일 필수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는 포부다. 권역 내 거점 병원의 진료역량을 강화하고, 취약지 진료접근성을 강화해 지역완결적 체계를 달성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운영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전면 개편한다. 현재 권역응급의료센터 40개를 50개 내외의 중증응급의료센터로 탈바꿈해 중증응급환자를 최종치료할 수 있는 기관으로 재편할 계획이다. 예방·재활 사업 중심이던 권역 심뇌혈관센터 14개소도 고난도 수술 등 전문치료 중심으로 기능을 개편한다.

또한 병원 간 협력 네트워크를 활용해 응급질환별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사전에 파악해 신속하게 의뢰·전원을 가능하도록 ‘응급전원협진망’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병원 간 전문의 순환교대 당직체계’도 운영한다. 그간 병원마다 질환별 전문의가 1~2명인 경우 24시간 당직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에 앞으로는 전문의가 요일별로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 순환교대 당직체계를 가동한다. 

분만·소아 진료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신생아 집중치료 지역센터’를 지역 모자의료센터로 통합 개편한다. 중증도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고 치료를 연계하도록 했다. 아울러 소아암 지방 거점병원 5개소를 신규 지정해 집중 육성한다. 기존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등과 연계해 치료와 회복을 위한 협력 진료를 활성화한다. 

의대 정원 확대 빠진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 대책

필수의료 지원대책으로 의대 정원 확대 등이 거론됐으나, 복지부는 우선 현재의 인력수급 범위 안에서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지역·과목 간 균형배치를 통해 인력 유입을 극대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 당직, 근무시간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필수의료 분야에 헌신한 의료인 대상 가칭 ‘한국의 의사상’도 도입한다.

지역과 과목 간 인력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방병원과 필수과목 전공의를 우선 배치하기로 했다. 아울러 수도권 인력 쏠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수도권 병상 수급을 관리하는 ‘중앙병상관리위원회’를 운영해 관리한다. 이는 내년 발표되는 ‘병상수급 기본시책’에도 담길 예정이다.

의대 교육과정에서 필수의료 임상수련 강화, 외상·소아심장·감염 등 특수 전문 분야 의사 양성을 위한 실습 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간호인력 역시 간호대 실습지원 확대 등을 통해 신규간호사를 지속해 양성하고, 규칙적 교대근무제 확립 등 처우개선을 통한 장기근속을 유도할 방침이다.

조 장관은 “중증·응급, 분만, 소아 외에도 의료인력 부족 등 진료기반 약화로 인해 집중 지원이 필요한 분야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이번 대책 발표 이후에도 중증‧희귀 난치질환, 중증응급 정신질환과 의료인력이 희소한 재건성형, 수지접합 등 지원이 필요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추가 대책을 수립해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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