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의약품 약국에 반납하라더니… “안 받습니다” 왜?

서울시, 지난해부터 폐의약품 약국 수거 점차적으로 중단
지자체, 공공시설 수거함 설치 확대 했으나 홍보 미흡
환경부 “폐의약품 관리 방안 마련 중…상반기 결론 날 것”

기사승인 2023-01-2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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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의약품 약국에 반납하라더니… “안 받습니다” 왜?
종로구 보건소 문 앞 설치된 폐의약품 수거함. 관계자 말에 따르면 보건소까지 찾아와 약을 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수거 횟수에 대해선 정확하진 않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사진=박선혜 기자  

#서울시 종로구에 사는 30세 양모씨는 그동안 병원에서 처방 받았던 약 중 기간이 오래된 약들을 모아 약국에 반납하기로 했다. 그런데 찾아간 인근 약국에서 “약국에서 이제 약 안 받아요”라며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받는 곳도 있고 안 받는 곳도 있다며 정보마저 중구난방이다. 동사무소, 보건소에 가져다주라는데 다시 들고 나갈 생각을 하니 괜히 허탈했다. 

일반적으로 가정 폐의약품은 약 봉투에 들어있는 약을 뜯어서 한 곳에 모아 가까운 약국이나 보건소에 가져다주도록 권장된다. 하지만 최근 폐의약품 수거 정책이 지자체마다 달라지면서 약국에서 폐의약품을 받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 특히 서울에 있는 약국 대부분은 지난해부터 ‘폐의약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원인은 지자체-서울시약사회 간 갈등…“약국 말고 보건소 가세요”

2009년 환경부와 대한약사회, 지자체는 ‘묵힌 약 제자리 찾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약국이 중심이 돼 오래된 약 중에 먹을 수 있는 약과 먹지 못하는 약을 분리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시민의 폐의약품을 약국에서 받아주고, 지자체가 수거하는 방식이 시작된 것이다.

폐의약품 경우 폐기물관리법 상 생활폐기물이지만 인체 및 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어 유해폐기물로 분류해 지자체에서 수집 및 처리해왔다. 지자체는 보건소에 폐의약품 수거함을 설치하고 시민이 직접 약을 반납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역구마다 하나씩 위치한 보건소는 접근성이 떨어다보니 수거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이에 약사 단체가 의약품 관련 국민 건강에 소명의식을 갖고 폐의약품을 받기로 자청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문제가 발생했다. 약국에서 버려진 약을 받는 것이 ‘권고사항’인데도 어느새 ‘의무사항’처럼 돼버린 것이다. 또한 지자체마다 수거 방침을 달리해 혼선을 빚고, 업무 부담을 고스란히 약국에서 떠맡게 됐다. 

폐의약품 약국에 반납하라더니… “안 받습니다” 왜?
지난해 지자체(왼쪽)와 서울특별시약사회(오른쪽)에서 홍보한 폐의약품 분리배출 안내 포스터. 지자체 포스터에는 약국이 포함돼 있지만 약사회 경우 약국을 제외했다. 

결국 서울시약사회와 지자체 간 갈등이 커졌고, 서울시 약사단체는 점차적으로 약국 수거를 철회하기로 했다. 약국마다 배치됐던 수거함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지자체는 약국이 빠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수거함 설치 장소를 더 많은 공공시설로 확대하고, 제약사나 물류회사, 우체국과의 협업을 통해 수거율을 높이고 있다. 또한 ‘스마트 서울앱’으로 폐의약품 수거함 위치를 공개했다. 다만  홍보가 부족해 여전히 약국으로 헛걸음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 위치한 한 약국 관계자는 “약국에서 주체적으로 버려진 약들을 받아왔지만 지자체에서는 2~3달에 한번 약을 가지러 왔다. 업무도 바쁜데 폐의약품을 분류하고 처리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한다. 정기적으로 오면 모르는데 깜깜무소식인 달도 있어 답답했다”며 “지금은 단골 경우에만 약을 받아 직접 동사무소나 보건소 수거함에 갖다 주고 있다. 의약품을 버리려면 미리 인근 약국에 전화해 받는지 물어보거나 보건소, 동사무소로 가져다주는 게 좋다. 지자체에서 이 점에 대해 적극 홍보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역 약사회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수거하는 날짜가 다르다. 약이 쌓이고 쌓여 오히려 약국에서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날짜를 정해서 수거하는 곳도 있지만 몇 달이 지나도 수거하지 않는 곳도 있다”며 “지자체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폐의약품 수거가 약국 책임이 돼버렸다. 이에 지자체와 논의가 될 때까지 서울시 약국에서는 폐의약품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폐의약품은 유해폐기물인 만큼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 또한 접근성 측면에서도 약국의 역할이 큰 것은 사실”이라며 “약국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지자체에서는 폐의약품 수거를 해결하기 위한 인력, 장비 등을 더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청 관계자는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지자체마다 각자의 인프라를 통해 폐의약품 처리에 노력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폐의약품 약국에 반납하라더니… “안 받습니다” 왜?
약국에 배치되던 폐의약품 수거함. 지금은 서울지역에서 폐의약품 수거함이 있는 약국을 보기 힘들다.   독자제공 

환경부, “합의점 찾으려 노력”… 상반기 기준안 마련

정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지난해부터 지자체와 약사회 사이에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그 동안 지자체마다 달랐던 폐의약품 수거 관련 조례를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환경부 관계자는 2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울권은 지자체와 약국 사이에 폐의약품 처리 관련 합의가 안 된 상황임을 알고 있다”며 “저희 부에서는 주민의 건강 안전성이나 편의성을 도모해 약국에서 약을 수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지자체와 약국 사이에 협의점을 찾고 있다. 지난해 말 폐의약품 수집 및 처리 관련 초안을 마련했고 지자체와 한 차례 논의를 나눴다. 지자체는 초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대한약사회 의견도 수렴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초 환경부 감사가 있어 폐의약품 처리에 대한 감사원 의견도 함께 받을 계획”이라며 “이후 상반기 중 열리는 사회관계장관회의에 최종 안건을 올려서 결론이 나는 대로 지자체에 새로운 기준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제시한 초안에는 기존처럼 약국에서 폐의약품 배출을 원칙으로 하되 약국 외 공공시설에도 수거함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약국의 부담을 덜기 위해 지자체는 주기적으로 수거를 해야 하고, 지자체가 자주 수거할 여력이 안 돼 약국과 협의가 어렵다면 폐의약품을 종량제 봉투에 버리되 해당 종량제 봉투는 무조건 소각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하지만 해당 안이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려 당분간은 폐의약품 배출 및 처리에 대한 제재나 홍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민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본부에서 폐의약품 배출 방법을 홍보해주고 싶어도 지자체마다 방법이 다르다 보니 일괄적인 홍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약을 버릴 때는 미리 자신이 거주하는 시군구별 폐의약품 배출 방법을 찾아보길 권한다”고 첨언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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